베냐민 지파의 불복


사사기강해(55) \"베냐민 지파의 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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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2. 4 / 수요설교 / 삿 20:12-16 / 권다니엘 목사 / 
 
   \'만용\'은 앞 뒤 가리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용맹을 의미합니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 힘을 써야 참된 용기입니다. 정의를 거슬려 행동하는 용기는 만용입니다. 만용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만용을 부리다가 헛되이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주먹은 아무 때나 휘두르는 게 아닙니다. 의를 위해 용기를 내어 싸우고 목숨을 버리는 경우는 참으로 고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호만용이나 객기를 부리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냉정하게 닥친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11지파의 모습과 베냐민 지파의 상반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지파들은 동족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레위인의 첩을 기브아 비류들이 죽인 사건을 인하여 이스라엘 총회가 모였지만, 기브아가 속한 베냐민 지파는 그 총회에 참석하지를 않았습니다.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은 무모한 동족간의 전쟁을 원치 않았기에 베냐민 지파에 협조 공문을 보내고, 범죄 당사자인 기브아 비류들을 결박하여 인도해주기를 엄중히 요청합니다.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총회에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피고 레위인의 증언 내용을 자세히 들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흥분을 하였지만 이내 냉정을 찾아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막고자 신중하게 처신을 합니다. 원칙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만 처벌해야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지파들은 즉각 많은 군사들을 보내어 기브아 성읍을 급습하여 복수하려고 하지 않았고 기브아를 관장하고 있는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우선 사신을 보내어 공정한 사건 처리를 위한 협조를 구합니다.
   일을 처리하는 데는 순서와 원칙이 있습니다. 감정에 휩싸여 문제를 처리하려다간 더 큰 오해와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사건처리 방법은 정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려서는 안됩니다. 한 편의 이야기만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흥분해서도 안됩니다. 공동체를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1) 공의로와야 합니다.
2) 공정해야 합니다.
3) 냉정해야 합니다.
4) 신중해야 합니다.
3) 지혜로와야 합니다.

2. 베냐민 지파는 만용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지파의 총회로부터 온 공문을 받은 베냐민 지파는 즉각 강한 반발을 보입니다.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13절 하반절). 의외의 반응을 보인 베냐민 지파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기브아 비류들의 범죄 행위를 감싸 안으려고 듭니다.
   그리하여 기브아 거민들을 보호하기 이해 서둘러 기브아로 무장한 채 모여듭니다.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 라는 말처럼 베냐민 지파는 정도나 원칙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단지 기브아가 자기네 지파에 속한다 라는 이유를 따라 도우려고 나섭니다.
   만행을 저지른 기브아의 비류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는 단지 기브아의 비류들이 같은 지파, 같은 형제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이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인정에 이끌려 행동하였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만용을 부리는 베냐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강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른 양심을 가졌더라면 당연히 이스라엘 총회의 결정을 따르고 아무리 같은 지파라 할지라도 기브아의 비류들을 체포하여 처벌을 받도록 공회(公會) 앞에 내주어야 합니다. 죄를 죄로 보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입니다. 정이나 이해에 얽매어 죄를 죄라고 선언하지 않고 감싸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는 악을 제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곪아터진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범죄한 기브아 비류들을 감싸려고 만용을 부리는 베냐민 지파들로 인해 사태는 더욱 커집니다. 일대 격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원칙에 충실하였으면 쉽게 해결 될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됩니다.
   이렇게 만용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합니다. 만용을 부리고 있는 베냐민 지파가 과연  하나님께 변명할 명분이 있을까요? 있다면 정당한가요? 헛된 명분을 위해 가치 있는 양심을 버린 베냐민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겠습니까?

   베냐민이 이렇게 만용을 부리는 것은 기브아 거민이 자기의 소속 지파이기 때문에 감싸주려고 하기 위함도 있지만,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 연합군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15]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본문에 보면. 모인 베냐민 지파의 숫자는 기브아 성읍의 용사 700명을 포함하여 26,700명이었습니다. 이는 총회에 모인 이스라엘 11지파의 수와는 비교도 안되는 숫자입니다.
   (삿 20: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은 타고난 용맹스러운 기질로 이스라엘 11지파에 대항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물맷돌을 잘 던지는 700명의 왼손잡이를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만용이 베냐민을 더 큰 어려움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잘못했다면, 자기의 공동체속에 잘못이 있다면,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숨기거나 그렇지 않다고 우기게 되면 더 안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믿는 우리들은 인간관계에서도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의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공동체를 헤치는 방향이 아니라 세우는 방향으로 처리해나가는 신중함과 지혜로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