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난 이스라엘


사사기강해(54) \"화가난 이스라엘\"


  2004. 1. 28 / 수요설교 / 삿 20:1-11 / 권다니엘 목사 / 

   베냐민 지파인 기브아 비류들의 잔인하고 더러운 만행이 이제는 동족끼리의 전쟁으로 비화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레위인이 자기의 첩의 시체를 열 두 토막으로 나누어 이스라엘의 각 지파로 보낸 후에 이스라엘 온 지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지파가 모이는 총회를 엽니다. 그리고 레위인으로부터 그 사유를 들은 다음에 이제 베냐민 지파를 징벌하기고 결정을 합니다.
   8절에 보면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만행을 저지른 기브아를 그냥 두지 않고 이에 상응한 응징을 하겠다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단오한 결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몇 가지 사항을 결정합니다.
첫째, 문제 해결 전까지는 귀가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8절),
둘째, 이러한 만행의 장본인인 기브아와 전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9절),
셋째, 이에 소용되는 인적 물적 자원을 충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총회가 모여지고 베냐민 지파인 기브아의 만행에 대해서 모든 지파가 동일하게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수긍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만행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율법대로 공의롭게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이 총회를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이 됩니다.

1. 레위인의 문제(죄악)에 대해서는 다루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레위인은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첩을 들였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죄입니다. 뿐만아니라 기브아에 들어가서 노인의 집에 유할 때, 기브아 비류들이 집을 에워싸고 자기에게 성적인 만행을 자행하려고 했을 때, 자기의 첩을 강제적으로 그들에게 내어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성적인 노리개감이 되든 말든 나만 살면 되고, 나만 어려움을 모면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이기적이고 치사한 사람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첩의 시체를 열두 토막을 낸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는 감춘채 이 열두 토막을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보낸 장본인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동족간의 무서운 전쟁을 일으키는 요인을 제공한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총회에서 레위인의 이러한 문제점을 다루지 않고 단순히 레위인의 말만을 듣고 일어 처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레위인의 증언을 들어 보십시요.
   [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우선 레위인의 말 중에서 기브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은 잘못된 증언입니다.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상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첩을 욕보여서 죽게 했다고 했는데, 기브아 사람들이 그 첩을 강제적으로 끌어내서 욕 보인 것이 아니라, 레위인 자기가 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을 첩을 그들에게 내어 준 것입니다.
  이렇게 레위인은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거짓 증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총회에서는 레위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를 하지 않았으며, 한 쪽의 편파적인 증언만을 듣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문제 처리의 자세는 불공평한 징계를 결정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총회라고 하면 베냐민 지파를 배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총회라고 하면, 이스라엘 전 지파의 참석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의를 제기한 쪽이나 문제을 일으킨 당사자 지파도 반드시 참석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행을 저지른 기브아 거민이 소속된 베냐민 지파가 참석하지 않은 채 총회를 진행했다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3절에는 베냐민 지파가 총회가 모인다 것을 들었다고 나와 있는데, 이 구절로는 베냐민 지파에게 총회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여튼 베냐민 지파로 하여금 반드시 총회에 참석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이 상식을 벗어나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뒤늦게 징계를 결정을 해 놓고 통보하는 식으로 하는 것은 옳지가 못합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니 베냐민이 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삿 20:12-14)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3. 이스라엘 지파가 자신의 문제점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기브아 잡류들의 끔찍한 음행, 그로 인한 살인에 대하여 이토록 분노하고 단호한 징계를 결정하였는데 진작 자신들의 육적, 영적 음행에 대한 성찰과 회개가 따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공개된 육적 음행에 대하여는 벌떼처럼 달려들었지만 정작 자신들 가운데 은밀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영적 음행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점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하에 신당을 짓고 신상들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영적인 음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습니다. 사사기17-18장에 나타난 영적 간음에 대하여는 누구하나 나서서 징계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훗날 사사 사무엘 때에 이르러서야 영적 음행에 대한 민족적인 참회가 일어납니다(사무엘상7장)마는 그때까지는 침묵하고 덮어두고 지납니다. 이는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육적 음행에 대한 징계만 논하였지 정작 선행되어야 할 영적 음행에 대한 회개는 없었던 것입니다. 기브아 거민들의 집단 강간과 살인에 대하여는 \'망령된 행위\'(10절)라고 비난하며 정죄하였지만 자신들의 영적 간음에 대하여는 목소리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은밀한 육적인 음행은 숨긴 채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내 손으로 목을 치리라 분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접하면서 다음의 교훈들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1.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모든 일은 신중하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편견에 사로 잡혀서는 안됩니다.

3. 다른 사람의 잘못보다는 늘 내 자신의 잘못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보다는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회개가 항상 먼저 앞서야 합니다.

4. 절대로 공동체를 분열시키거나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총회에서는 일을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까지 갔던 것입니다.

   교회의 일도 가정의 일도 나라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공동체가 분열이 되거나 붕괴되는 방향으로 일의 처리를 몰고 가서는 안됩니다.

   고전 10:23-24은 공동체의 유익과 덕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고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기 위해서 한 사람 - 내 자신이 바른 자세를 갖는 은총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