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21 / 수요설교 / 삿 19:22-30 / 권다니엘 목사 /
기브아에서 아무도 레위인의 일행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한 노인의 영접를 받고 이제 그 집에서 밤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그 성의 비류들 즉 불량자들이 그 집을 에워삽니다. 그리고 손님인 레위인을 끌러내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그와 상관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관을 하겠다는 것은 성관계 즉 동성연애(남색)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이 되자 그 집주인 노인은 자기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 줄테니 레위인에게는 손을 대지 말하고 합니다. 비류들의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태가 긴박해지자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줍니다. 비류들이 그 첩을 밤새도록 농간을 합니다. 그리고 그 첩은 죽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실고 집에 가서 그 시체를 열두토막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어서 베냐민 지파인 기브아에 대한 복수를 촉구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극한 도덕적인 타락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브아 비류들의 만행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사악한 행위를 재현하기라도 한 듯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방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기브아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위가 얼마나 더럽고 사악합니다. 도저히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음란보다고 조금도 낫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멸망을 받았지요? 이 음란하고 사악한 기브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의 동족들인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로부터 씨가 마를 정도로 무섭게 진멸을 당하고 맙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오늘 날은 어떻습니까? 성개방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추잡하고 악한 음행과 성죄악, 성범죄가 공공연하게 자행될 뿐만 아니라 묵인 방조되고 있습니다. 매스콤을 통해서, TV, 신문들, 인터넷을 통해서 도리어 각종 음란한 행위와 성적인 범죄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무서운 실정입니다. 심지어 동성연애까지고 용인을 하고 동성연애자가 목사로 안수받는 것을 허락하고 있는 실정이 아닙니까?
(레 18:22)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이러한 현 상황을 하나님께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과 진노가 임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시기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시는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노와 재앙이 바로 눈 앞에 다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씨도 남지 않는 무서운 재앙이 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이 메시지입니다.
2. 기브아 노인의 가치관의 문제점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기브아 노인은 착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영접을 하지 않는 레위인 일행을 자기집으로 영접하여 모든 것을 제공하고 유숙하게 합니다. 손님을 잘 대접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신실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류들이 자기 집으로 몰려 들어 손님에게 추악한 범죄를 하려고 하자 자기 딸을 그들에게 내 주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 노인의 태도가 올바릅니까?
레위인을 구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놓기로 한 노인의 생각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옳지 못한 것입니다. 아마 손님을 비류들이 남색으로 괴롭히는 것 보다는 여자들을 내주어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 도덕적인 가치관은 분명히 비성경적인 잘못되 가치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음행은 똑같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동일하고 취급을 하고 죄를 막았어야 했습니다.
물론 비류들에게 책망을 하고 막으려고 하는 노력까지는 좋았습니다.
[23]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그러나 여기서 후퇴해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강력하게 막아야 했던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할 수 없구나 하고 전진하다가 후퇴해 버린다면 그것은 하지 않은 것과 똑같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를 당하신 분들과 거부하다가 나중에 항복해버린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것입니다. 과정도 중요하지막 마지막 결과까지 중요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싸울 때는 피흘리기 까지 싸워야 합니다.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3. 레위인의 자세를 살펴 보십시오.
비류들이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갑자기 손님이 레위인이 자기의 찹을 내어 주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주인이 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레위인이 자기의 첩을 붙들어냅니다. 여기서 불들어낸다는 말은 첩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내 보낸 것을 말합니다. 명세기 종교적인 지도자인 레위인입니다. 어떻게 자기의 첩을 비류들한테 강제적으로 내어 줄 수 있습니까?
이 레위인의 자세는
1. 자기 중심적인 자세입니다.
자기만 살면 된다는 극한적인 이기적인 자세입니다. 자기만이 위기를 모면하려는 더럽고 악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을 버린 사악한 자세입니다.
음란과 음행을 피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엄격하신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3. 자신의 죄를 회개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는 자세입니다.
그는 줏은 자기 첩의 시체를 열 두 토막을 내서 이스라엘 각 지파로 보내서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상을 폭로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자 첩의 시신을 열 두 토막을 낼 정도로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사람의 죄악이 그것도 지도자, 특히 종교지도자의 죄악과 잘못된 태도가 얼마나 무섭고 많은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정결입니다. 우리 모두 정결한 삶을 살도록, 특히 영적인 지도자들이 정결한 삶을 살도록 힘모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