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14 / 수요설교 / 삿 19:10-21 / 권다니엘 목사 /
첩을 친정인 베들레헴에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레위인은 장인의 만류로 몇 번씩이나 주저앉아 머물렀다가 드디어는 만류를 뿌리치고 에브라임 산지로 돌아가다가 여부스(예루살렘)를 지나게 됩니다. 종이 여부스에 머물자고 했지만 레위인은 좀 더 가서 기브아라는 곳에 머물자고 명령을 합니다.
이제 그들은 기브아(베냐민 지역)에 들어가서 머물고자 하지만 그들은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 때 한 노인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면서 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노인은 레위인과 같은 에브라임 산지의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했던 것입니다.
머물 곳이 없는 이들은 노인은 자기 집으로 영접해서 유숙시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의 메세지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레위인의 형식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이들이 지나가게 된 여부스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서 베들레헴 북쪽 10Km지점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원래 이 여부스 즉 예루살렘은 여호수아가 정복한 성읍의 하나로서 베냐민 지파의 영토로 소속이 되었으나 이스라엘 사람이 이곳에 살지 않고 가나안 원주민은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냐민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거주하는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그들을 쫓아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여부스에서 유숙하기를 권하는 종의 요청을 레위인은 일언지하에 거절을 합니다. 그것이 가나안 족속인 이방 여부스의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인 여부스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서 베냐민 지파의 성읍인 기브아로 가자고 주장을 했습니다. 레위인은 아마도 자신이 명목상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하룻밤이라도 이방인의 성읍에서 지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첩을 쉽게 구하여 살던 레위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그가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사람이었던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삶은 형편없어면서도, 외식에만 신경을 쓰고, 형식에만 몰두하는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형식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에 보이려고 그를 듯하게 외식을 하지만 실은 그 내면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사람들 말입니다. 지도자들 가운데 이러한 사람들이 많음을 우리는 메스컴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외식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의 야박한 인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레위인의 명령대도 이들은 기브아로 들어갔습니다. 기브라엘 이스라엘 백성중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 이방인의 성읍이 아니라 자기의 동족의 성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영접하여 유숙을 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환대를 기대했던 레위인 일행은 실망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법도에 따르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신 10:17-19)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 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더군다나 19절을 볼 때,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레위인은 먹을 양식과 짚이 충분했기 때문에 단지 유숙할 거처만을 구했는데도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기브아 사람들의 인정이 없고 야박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튼 이같이 나그네에 대한 환대가 소홀했음을 볼 때,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악해지고 자기 중심적으로 변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 세상도 얼마나 야박하고 무정한지요. 아니 더나아가서 무서운 세상입니다. 아는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가족까지 살해하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3. 그러나 이런 중에도 빛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두울수록 작은 빛이라도 더 밝게 빛납니다.
기브아 성읍 사람들의 푸대접으로 말미암에 거리에 나 앉게 된 레위인의 일행을 한 노인이 영접하여 들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그 역시 기브아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밭에서 일하고 저녁 무렵에 귀가하던 도중, 성읍 거리에 나앉은 레위인의 일행을 발견하고 그 좌초지종을 물은 다음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쉬게 합니다.
이 노인은 다른 모든 기브아 사람들과는 달리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딤전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5:10) \"(과부로서 명부에 올릴 자는)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딛 1: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이 노인은 이 레위인일행을
1) 안심시킵니다.
2)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 까지 다 자기에게 맡기라고 말합니다.
3) 짐승까지 먹입니다.
4) 발씻을 물까지 떠다주며 극진히 대접을 합니다.
[20]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야박하더라도 우리들은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행 9:36-40)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다비다라는 여인이 죽었을 때, 그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모든 과부가 베드로에게 도르가가 그들을 위해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보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중보기도입니다. 다비다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사회가 아무리 어두워지고 무정해진다할찌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너희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느냐\'하는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