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첩의 행음

사사기강해(51) \"레위인의 첩의 행음\"


 2004. 1. 7 / 수요설교 / 삿 19:1-9 / 권다니엘 목사 /

    신앙의 타락은 윤리적 타락도 동반합니다. 본문 전장인 사사기18장에서는 우상숭배로 빠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았고 본문 사사기19장에서는 그 당시 사회에 만연된 윤리적 타락을 접하게 됩니다. 인간의 올바른 윤리도 신앙을 근거로 세워집니다. 뿌리인 신앙이 탈선하면 당연히 윤리도 왜곡되어집니다. 사람의 윤리의식이 희미해져 갑니다. 죄에 대한 반응이 무디어져 갑니다. 여기서 윤리란 말씀에 대한 삶의 적용입니다. 즉 삶의 기준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세상가운데서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윤리입니다. 본문은 이 면에 있어서 당시 어느 정도 심각한 위기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본문의 주요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인 에브라임 땅의 레위인이 첩을 둔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종교적으로 매우 불경건했음을 시사해 줍니다.(1절)

   [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이 레위인은 실로에 있는 성소를 찾아 떠돌다가 에브라임 산지까지 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이 레위인이 첩을 취한 행위는 기드온의 경우처럼(삿 8:31) 당시의 도덕적 타락의 비근한 예입니다. 즉 이는 당시 가나안과 주변 국가들 사이에 성행하던 일부다처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주의 결혼제도에 역행하는 그릇된 행위인 것입니다.
   (삿 8:31)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레 21:7)에 의하면 여호와의 집에서 봉사하는 모든 레위인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레위인이 이 같은 여인을 첩으로 맞은 것은 당시의 성직자들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타락 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레 21:7)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종교지도자의 타락, 특히 성적인 타락은 그 사회의 보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종교지도자들까지 무너진 꼴이 되었으니, 일반적인 사회적인 성적인 타락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2. 그 레위인의 첩이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고 도망한 사실은 그 당시 성도덕이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2)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

   여기서 \'행음하다\'라는 말은 \'간음하다\', \'바람나다\'의 뜻입니다. 그 첩은 음행을 한 후에 자기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행음하다\'의 뒤에 \'그에게 대항하여\'라는 뜻의 전치사인 \'알라이우\'가 있는데, 이는 이 여인의 음행이 남편에 대한 불만에서 행해졌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 레위인이 먼저 행음을 했기 때문에 첩도 이에 반발하여 행음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그리고 \'남편을 떠났다\'는 말은 음행으로 인해 양자간에 불화가 생겨 서로 헤어진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음란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서로를 탈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3. 도망한 딸을 넉달동안이나 자기 집에 머물도록 방치한 레위인 장인의 태도는 이스라엘 사회가 죄를 보고도 묵인 방조할 정도로 죄에 둔갑했음을 보여 줍니다.(3-10절)

   이혼의 사유를 보면, 양가의 집안의 어른들이 자기들의 딸과 아들을 가르치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도리어 서로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이것이 이혼이 이루어지는 큰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4. 레위인의 흐리멍텅한 자세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레위인이 자기 첩을 데리고 고향(에브라임 산지)으로 가려고 할때애 그 장인이  그의 떠남을 수차 만류하고 여러 날 대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친절이 그 레위인에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는 두 차례나 일찍 길을 떠나려고 하였으라(5,8), 그 장인의  강권 때문에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레위인의 자세가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1) 레위인은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육체적인 편안함에 끌려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장인의 권유라고 하지만, 레위인의 자세에는 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먹고 마신다\'는 말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4,5,6,8,9)

  (2) 인정에 치우쳤던 것입니다.
       사위와 딸과의 작별하기를 덮어놓고 아쉽게 만 생각하는 레위인의 장인은 그들과 작별할 시간을 약속했다가도 다시 변심하고 가지 못하도록 만류하곤 하였습니다. 레위인은 그 첩과 함께 두 차례나 아침 일찍 떠나려 했었는데도(5,8), 두 번이나 그들을 해가 기울도록 머물러 있게 하는 장인의 인정에 끌려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늦게 떠났으므로 돌아가던 도중 기브아에서 참변(22-26)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행음은 왜 무서운 것일까요?

1. 목회자자들까지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포학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게 되니깐, 뻔뻔해 집니다. 거칠어집니다. 완악해 집니다. 우리아를 회유합니다. 안되니깐 살인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왕의 일을 합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실질적으로 자기가 그러한 죄를 범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1)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습니다. 완전히 거짓말 쟁이가 되게 됩니다. 하나님한테 맹세까지 하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음란이라는 것은 자기와 하나님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정을 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살 수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깐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하게 됩니다.

  2) 지적하는 사람을 죽이고 매장시키려는 무서운 음모를 사단이 주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깐 회개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그 사람을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합니다. 내어 쫓습니다. 완전히 매장시키는 포악한 사단으로 목회자가 변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2. 행음은 가정을 깨뜨립니다.

   행음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들러내시게 됩니다. 이때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그 전에 몇 번의 기회를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들고 회개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드러내시는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가정이 깨어집니다. 자녀들까지 깨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이 회개하지 않고 버티는 자에게 주시는 징벌입니다. 무섭지요. 아내들의 탈선의 이유 중에 하나가 남편의 탈선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징계를 주시지요. 그 아들이 죽습니다.
   (삼하 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이틀만에 죽게 됩니다.

3. 사회를 어지럽힙니다.

   종교적인 성결의 기준이 무너지게 됩니다. 목회자가 무너지면, 누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도덕적인 성결을 외칠 수가 있겠습니다.

   종교가 타락하고, 기독교인들이 타락하면, 더 나아가서 교회지도자들이 세속화되면 사회도 나라도 소망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늘 기도하되 특히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자신도 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정결케하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정결한 신앙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