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지파의 이주


사사기강해(50) \"단 지파의 이주\"


  2003. 12. 17 / 수요설교 / 삿 18:11-31 / 권다니엘 목사 / 

   단 지파가 자기들이 정착해야 할 곳이 어느 곳이 적당한지 탐색하려 보낸 다섯 용사로부터 라이스의 땅이 정착지로는 매우 적합하다는 희망적인 보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600명의 용사를 선별하여 라이스의 정복에 나섭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도중에 발생한 사건과 이후 그들이 정착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600명의 용사들은 라이스의 정복에 앞서 일전에 다섯 정탐 용사들이 머물렀던 미가의 집에 이르러 레위 소년 제사장과 미가의 집에 있는 신상을 탈취해 갑니다. 그리고선 라이스를 정복한 후에 단 사람들을 이주시켜 성읍을 중건합니다. 그리고 그 땅이름을 \'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후 그 곳에 신상을 세웠으니 이때로부터 불레셋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그곳은 우상숭배의 온상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경계해야 할 메시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종교적 욕심주의입니다.

   다섯 사람의 정탐꾼들은 단지파의 600명의 군사들을 미가의 집으로 이끕니다. 지금 단지파는 영토 확장을 위한 싸움을 하기 위해 가는 길입니다. 가는 길에 위치한 미가의 집은 그냥 지나쳐야 합니다.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미가의 집을 지나치지 않고 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다섯 사람의 머리 속에는 미가의 집에 있는 물건들이 탐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미가가 만든 신상, 에봇, 드라빔 그리고 그것을 관장하는 레위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섯 사람의 욕심이 단지파를 자극하여 그것들을 강제로 탈취하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미가의 집에 있는 것은 단지파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단지파는 거리낌없이 미가의 소유물을 빼앗아 버립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은 죄악입니다. 도적이요 강도입니다. 다섯 사람의 욕심에 단지파는 제동 걸지 않았고 오히려 기꺼이 동참합니다.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나중에 미가가 좇아와서 강력히 항의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단지파의 강퍅함이 참으로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21-26절). 남의 유익을 구(求)치 않고 자기 이익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아주 멋진 종교적인 슬로건으로, 빼앗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마치 600명의 군사를 앞세워 미가의 집에 있는 신상과 레위 소년 제사장을 빼앗은 것처럼,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끼리 일어나고 있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2. 종교적 형식주의입니다.

   단 자손은 미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긴 신상들과 제사장 제도를 마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보증과 같이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신상이 있고, 제사장이 있으면 종교적인 의식을 할 일반적인 요건이 갖추어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사를 지낼 수가 있고,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삿 17: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도대체, 그 신상은 어떤 신상이며, 레위 소년 제사장은 어떤 제사장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내용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구색만 갖추어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형식만 갖추어지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우상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버려야 하지요.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을 빼앗아 오고, 이 우상을 섬기는 미가의 개인 제사장 레위소년까지 빼앗아왔으니 어구처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인 겉모습이 곧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고 착각을 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종교는 타락할수록 내용보다는 외적인 형식주의에 치우
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 안에서 이 종교적 형식주의가 들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형식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3. 종교적인 상업주의입니다.

   미가 개인에게 고용된 제사장이었던 레위 소년은 다시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고용됩니다.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이 레위 소년은 본래 자격과 사명감이 전혀 없이 떠돌아 다니던 자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그는 미가의 필요와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제사장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이제는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한 단 지판의 제의를 수락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됩니다.

  1) 자격이 없는 목회자
  2) 사명감과 소명의식이 없는 목회자
  3) 욕심에 이끌려 다니는 목회자
    어쩌면 이러한 분들은 이 레위 소년과 같을 지도 모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명예와 물질과 욕심에 빠지면, 교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 레위 소년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장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는 단지파 전체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무서운 죄악을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 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4. 종교적인 축복입니다.

   단지파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하면서도 그 길이 매우 형통했습니다. 즉 그들은 물적 자원이 매우 풍부했던 라이스 땅을 불과 600명의 군사로 정복할 만큼 쉽게 그 땅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꼭 축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내 버려두고 계신 것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악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을 해도 때로는 형통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종교적인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은 일시적인 축복이고, 유기적인(내버려두는) 축복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 형통함이 곧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시 73:12-20)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37:1-2. 7-10) “[1] [다윗의 시]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간교한 사단의 미혹을 간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을 바로 보고, 경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결함을 유지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