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된 제사장

사사시강해(48) \"고용된 제사장\"


 

2003. 12. 3 / 수요설교 / 삿 17:7-13 / 권다니엘 목사 /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소년이 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 우거하였더라 [8] 이 사람이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서 행하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뇨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 하므로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11]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사사기 17:7-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에브라임 지파의 미가 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신상을 만들어 아들 미가의 집에 둡니다. 그리고 미가는 자기 한 아들을 제사장을 세워 신당을 섬기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남을 보면서,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찌라도 세상의 우상 풍습과 혼합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구나 하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와 유사한 맥락 속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가가 떠돌이 레위 소년을 자기 집의 정식 제사장으로 삼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미가는 때마침 거할 곳을 찾지 못하고 베들레헴을 떠나 방황하던 레위 소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은 열과 의복 한 벌, 그리고 식물을 주기로 약조를 하고 그를 데려다가 자기 집의 제사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대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당시 레위인들의 무지를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미가의 집에는 우상이 세우져 있었습니다. 신상이지요.  그리고 그 우상을 섬기는 집 즉 신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이 아닐찌라도 누구든지 그 집에 가보면, 이 집이 우상을 섬기구나, 신당이 있구나, 신상이 있구나 척 눈으로 보고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출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레위인은 그 집에 들어가보고, 그 집에 거하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10절 하반절, 레위인이 들어갔더니,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도대체 무엇이 우상이고, 무엇이 신당이고, 우상이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있고, 이것을 이 집이 섬기고 있고,  내가 이 우상을 섬기는 신당의 제상이 되고...  전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도대체 레위인이 이렇게 무지해 질 수 있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렇게 무지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범하고도 그것이 죄인줄을 모릅니다. 심각성이 없습니다. 내가 불의를 행하고도 이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 하시고, 이것에 대한 징계가 얼마나 큰 가를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말씀을 아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2. 당시 레위인들의 자세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레위인으로서의 직분을 사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레위인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거룩히 구별된 자들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온 이스라엘이 타락한다 할찌라도 여호와의 신앙을 보존해야 할 책임을 지닌 신앙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거할 곳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돈 몇 푼에 신앙의 양심을 팔아 버리는 가 하면, 레위인 가운데서도 오직 아론 자손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제사장 직분을 외람되게 수행을 했던 것입니다.
  (출 28:1-3) “[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3]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오늘 날에도 우리의 주변에는 자기의 사명을 망각하고 세상과 타협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삯꾼 목자가 얼마나 많으며, 또한 자격과 자질도 없는 자가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가증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3.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세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당면한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을 푸대접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레위인들은 직임상 하나님께서 기업을 허락하지를 않으셨습니다.
   (수 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따라서 레위인의 생계는 다른 지파 사람들이 담당을 해야만 했습니다.
   (민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적으로 레위인들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이에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하여 유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레위인들이 유랑하게 되니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타락은 더욱 더 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백성들로부터 생계 보장을 받지 못한 레위인은 그들 본연의 임무를 버려야 했고, 레위인들의 종교적 지도를 받지 못한 백성들은 영적 타락의 수렁으로 점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 그렇지는 않지만 주의 종들에 대한 성도들의 예우와 인식이 점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닮아가고 있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교역자에 대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 교역자들 자체의 타락된 모습에 성도들이 실망하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교역자를 업수이 여겨 저들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이려움을 겪게 하는 것이, 곧 자기에게 돌아갈 하나님의 은혜를 삭감하는 일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레위 소년은 이제 미가의 집에 고용된 제사장이 됩니다.
[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레위인으로서의 자기의 공적인 신분을 잃어 버리고 미가를 위한 사적 소유물처럼 되고 맙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닌 미가의 사람이 되어 우상숭배의 의식을 집행합니다. 거짓된 예언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가를 버리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간사함을 드러냅니다.
   (삿 18: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이처럼 미가 뿐만 아니라 레위인 자신도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사사 시대의 전형으로 언급되어 그 불법성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세속화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타락을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과 신분을 바로 알고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