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만하게 채우는 영성(요한1:14-16) 영성은 비우는데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성의 다음 단계는 채움입니다. 비움은 채움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얻기 위함이요, 떠나는 것은 새로운 목적지가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은 새로운 무엇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비우신 후에 충만하게 채우셨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요1:14).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골1:19).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백배의 상을 약속하셨습니다. “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10:28-30). 충만하신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 요한은 육신이 되어 함께 거하시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은 어떤 영광이었습니까? \'은혜와 진리의 충만\'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의 표현입니다. 또한 \'충만\' (플레로마토스)이란 말은 \'수나 양에서의 충분하고도 완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충분한 하나님이시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며 그에게는 모든 것이 충분하며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 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만으로 기쁜 것 보다 더한 기쁨은 16절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부족함이 없는 그 주님의 충만하심에서 내가 은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보통의 은혜가 아니라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중단 없는 계속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가 충만한 그리스도로부터 중단이 없는 계속적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사람을 섬기는 사역이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주님의 충만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내려왔습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내려주신 진리와 은혜를 받아서 제자들에게 다시 내려 보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 배운 대로 그들의 제자들에게 내려 보냈습니다. 사역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만들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받아서 되돌려 주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의 출발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받지 않고 주려는데 있습니다. 채우기도 전에 나누어주려는 데서 트러블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사역의 창조자가 아니라 전달자요 은혜 자체가 아니라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내려 보내기 전에 먼저 채워야합니다. 마치 저수지에 물을 많이 저장했다가 각 가정으로 보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사역은 일하기 전에 먼저 은혜를 충만히 받아야합니다. 받기도 전에 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채우기도 전에 나누려는 성급함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문제를 일으키고 탈진 (burn out) 하여 넘어집니다. 커다란 다목적 댐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전에는 내려 보낼 수 없습니다.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주기 전에 많이 채우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충만’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은혜 충만, 진리 충만, 성령 충만, 믿음 충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17-19,2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4:13-15).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예수님의 삶은 균형을 이루셨습니다. 비움과 채움, 버림과 취함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기독교 영성은 균형 잡힌 조화입니다. 비움과 채움의 조화, 텅 빔과 충만의 조화. 받음과 나눔의 조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조화, 섬김과 섬김 받음의 조화가 균형을 이루어야합니다. 균형이 깨지면 외식이 되고 위선이 됩니다. 바리새주의가 되고 교권주의가 되고 신비주의 기복주의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한 쪽으로 기울면 문제가 됩니다. 믿음과 행함도 그렇습니다. 은혜 받고 섬기는 사역도 그렇습니다. 균형 잡힌 몸매가 아름답듯이 균형을 이룬 신앙인이 멋진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신사적 교양미가 넘치게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살기도 했고 무서운 사자처럼 살기도 하셨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살았으나 큰 바위가 되셔서 물의 흐르는 방향을 바꾸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공의는 강물처럼 흘려보내시고 불의와 사탄의 타협에는 단호하게 큰 바위로 버티시며 거절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긍휼을 베푸시고 가까이 하셨으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교권주의자들과는 친구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에게는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으나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진노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비움과 채움의 균형 잡힌 영성이 필요합니다. 균형을 이루기가 가장 힘들지만 균형처럼 온전한 믿음도 없습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수 1:7-8).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 (잠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