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눅18:9-14)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눅18:9-14)
교회 나오는 분들을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1)누가 칭찬하든지, 비판하든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교인입니다. (2)누가 칭찬하면 열심을 나타내고 누가 비판하면 쉽게 낙심하는 교인입니다. (3)언제나 죄의식을 가지고 나오는 교인입니다. 교회 와서 제구실도 못한다는 죄의식입니다. (4)그저 형식적으로 출석하는 교인입니다. 별 감동, 별 감각이 없이 습관적으로 오가는 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넷 중에 누가 뭐래든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첫 번째 교인은 일등 교인입니다. 그러나 그저 습관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네 번째 신자는 라오디게아 교인처럼 주님 앞에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병든 교인입니다. 문제는 둘째와 세 번째 교인입니다. 만약 둘 중에 누가 더 낫고 못한 자인가를 따진다면 어느 교인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을 오늘 본문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오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하나는 세리입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데 그 태도가 아주 대조적입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서서 따로 기도하기를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나라의 경건한 이들은 오전 9시, 오전 12시, 오후 3시에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세 번씩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그러한 법을 꼭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유대 율법에는 속죄의 날에 금식을 하도록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별한 공로를 얻고자 하는 자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도 금식했습니다. 남들이 보면 일등 교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이 등장하는 데 그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위의 바리새인에 비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자였습니다. 기도나 금식 생활, 십일조나 선한 생활은커녕 민족의 반역자요, 로마의 앞잡이로, 동족의 재산을 토색하고 착취하며, 더 나가서는 간음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감히 성전에 나올 수 없는 자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일등짜리 교인인 바리새인과 추악하기 짝이 없는 세리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바리새인은 백배로 칭찬과 존경을 받을 자이고, 세리는 백배로 책망과 멸시를 받아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이 두 사람 중에 바리새인은 강하게 비판하시고, 오히려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왜 이런 평가를 하셨습니까?
교만은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하는 사람은 이 교만을 가리켜서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죄악의 어머니요 모든 죄악은 그 자식들입니다. 교만은 질투를 낳고, 분노를 낳고, 탐심을 낳습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지나친 자존심이 교만하게 만듭니다. 오늘 성경은 바리새인의 교만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만 의롭고 다른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무시했습니다. 자기 의를 앞세우면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교만은 자기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입니다. 교만은 자신은 즐겁게 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은 괴롭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소위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그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비유를 통해서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교만의 죄악을 폭로하고 계십니다.
교만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의 죄악이다. / 9절 말씀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 비유가 말씀되어진, 베풀어진 대상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자기를 존중히 여긴다. 자기를 귀히 여긴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건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심리학자들도 자존감의 중요성이 인간의 정신건강에 참으로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건강한 프라이드는 죄가 아닙니다. 건강한 프라이드는 병적 프라이드와 구별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귀히 여기는 것은 절대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만 사랑하는 것은 죄입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것! 여기 그 비유가 베풀어진 대상이 누군가하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거기서 끝나지가 않습니다. 자기 이기심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모략하고 비난하고 파괴하기 시작할 때 이것은 자존감의 영역을 넘어선 구체적인 죄악의 모습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이웃과 나 사 이에 벽을 쌓는 죄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웃과 나 사이에 벽을 쌓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11절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절\"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1절에 보시면 바리새인이 기도 할 때 기도하던 위치가 어떻게 되었다고 성경은 강조합니까? 세리들과 따로 자기가 기도하는 자리조차 구별해서 서서 따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습니다. / 교만은 자기숭배(ego worship)의 병입니다. 사탄은 에덴의 하와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하늘 높이 탑을 쌓아 하나님과 대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나르시스의 자기도취를 아십니까?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하여 사랑에 빠지나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만다는 우스운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닐까요? 사랑도 없고 믿음의 실체도 없이 메아리만 남아있는, 소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지럽힙니다. 자기 자신의 주장을 절대화 하는 교만의 질병을 치료받아야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더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마귀가 가장 사랑하는 죄는 \"겸손을 흉내 내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교만은 이웃과 벽과 담을 쌓고 살아갑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따로서서, 죄 짓는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했습니다(11절). 바리새인은 분리주의자들입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세리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저 세리도 구원받아야 될 사람이라고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리를 놓습니다. 불편한 사람들을 서로 화해시켜 주는 다리를 놓읍시다. 나로 인하여 교회공동체가 평안한지 몸살을 앓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고 겸손합시다. 이웃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조심해야합니다. 교만은 자기 위장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주어는 \"나\"입니다. 나는 저들과 같지 아니하고,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 기도를 하고 나는 십일조를 드린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 의를 강조합니다. 기도는 마땅히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여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지나친 자기 강조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는 듯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데도 자기변화가 없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위장이 많습니다. 자기 마음의 열등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자기를 내세우는 기도를 많이 함으로 자기불안을 덜어보려는 자기위장을 강하게 합니다. 기도의 주어는 내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구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진솔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도우심을 입고 회복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합시다. 교만은 기도와 은혜의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결과를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절).
교만은 기도와 은혜의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교만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자기 의를 붙잡고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의 구원의 근거는 오로지 자기의 의입니다.
\"내가 이만큼 잘 했습니다\"이지 \"주님, 저를 구원해 주옵소서\' 가 아닙니다. 자기 의가 앞서면 은혜를 모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기 죄를 보아야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 시민입니다(마5:3).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벧전5:5). 교만은 마귀의 본질입니다. 마귀는 회개가 없습니다.
교만을 극복하는 길 : 세리의 자리로 내려가라
세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가슴을 치며 머리를 들지 못했고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회개는 최상의 기도입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3절).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이웃의 도움도 받아들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웃의 손을 붙잡고 인생의 길을 따듯하게 걸어가는 사람이고, 교만한 사람은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뿌리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웃을 뿌리치고 홀로 고독하게 파멸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15-16절). 하나님은 단순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교만은 영적 암
무모한 우월감, 과도한 자기존중, 자신의 믿음에 대한 오만한 의견, 허영, 자만, 거만, 자화자찬, 허풍, 속물, 자기중심, 똑똑한 체함, 우쭐댐이 친구.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기도와 찬양
사랑하는 사람에게 처음 고백하듯 조금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은 주님께 부끄러운 저의 죄를 고백하게 하시고, 기도와 사랑의 등불 환히 밝히기 위한 기름 제 때 마련 못해 번번이 빌려 쓰는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옵소서. 교만과 허영의 가시나무 자라고 무관심과 이기심의 잡초 무성한 제 마음의 숲에 불을 놓아주옵소서. 항상 용서하는 일에 더딘 제가 주님께 용서 구할 염치도 없어 조용히 무릎 꿇고 눈물만 흘립니다. 늘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용서하시어 저를 무안하게 하시는 주님 큰 귀 열어 놓으시고 사계절 묵묵히 제 앞에 산으로 서 계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