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하는 사순절(창 50:15-21) 본문은 창세기의 마지막 장으로 요셉과 그 형제들의 화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에게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미워했으며 타박했고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고도 했고 극기야는 장사꾼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팔려온 요셉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유혹을 물리치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옛날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마음만 먹으면 옛날에 자기가 당한 것을 생각하면서 얼마든지 통쾌하게 복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형들도 요셉의 복수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15절에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두려움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20,21절을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사순절 기간을 맞아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악을 당하였습니다.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였으며 매질과 그리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그러나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사순절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며 악을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기간입니다. 철천지 원수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나에게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기간이 바로 사순절기인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마5:43-45)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삶! 그런 삶을 우리도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죄의 은총조차도 누리지 못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입술로 고백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아무리 진한 주홍빛과 같다 할지라도 다 용서하신다는 말씀이 우리 앞에 분명히 던져져 있지만 우리는 그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요셉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는 요셉의 모습은 그의 생애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모습은 다름 아닌 용서의 모습! 그것입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이 지난 날 자신들이 잘못한 일을 놓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오늘 그 형들의 지난날의 잘못을 다 용서하고 있습니다. 용서가 있는 곳! 용서가 가득한 곳! 다. 거기야말로 천국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거기야말로 정말 살 맛 나는 세상입니다. 우리 가운데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최대의 특성 중 하나가 실수!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용서!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분노! 그것은 우리 안에 없어도 됩니다. 정죄! 그것 역시 우리 안에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용서! 그것은 반드시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용서할 수 있는가? 과연 어떤 사람이 용서의 사람이 될 수 있겠나요? 오늘 말씀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우리에게 분명히 주고 있습니다. 먼저 19절 말씀은 두려워서 떨고 있는 형들을 향해서 요셉이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라고 말했습니다. 정죄!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죄 있는 사람이 그 어떤 사람을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정죄! 그것은 우리의 몫일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롬 8:1-2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저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를 정죄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 않습니다. 오늘 요셉의 고백은 그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의식만 있다면 우리도 누군가를 기꺼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하는 이런 의식으로 오늘 우리 안에 용서가 가득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 번째로 20절 말씀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니!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신 말씀을 말입니다. 오늘 요셉의 고백은 자신을 일찍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까지 팔려가게 하신 분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 장래를 미리 보시고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하시기 위해서 요셉으로 하여금 먼저 애굽으로 팔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수라는 말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그것만이 우리 안에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런 의식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내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용서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깊고, 훨씬 높습니다. 사 55:8-9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러기에 하나님의 섭리! 그 섭리 안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정말로 좋으신 계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믿음! 그런 믿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에서 좇아나는 용서가 우리 안에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새로운 정보나 자극이 들어올 수 있고, 새로운 정보나 자극이 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서서히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변화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전혀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나 개혁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점진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열리고 거기에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분의 삶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기쁨이 생기고, 감사한 마음이 생겨서 가정의 변화를 이룹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열심을 내게 되고 주일 빼먹기를 밥 먹듯 하던 사람이 열심히 참석을 할 뿐 아니라 무엇인가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이니까 지단체가 활발해지고 찬양대가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찬양대가 열심히 노래를 연습하여 부르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면서 듣는 회중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여 그 교회에 활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교회를 내리 덮었던 검은 구름이 걷혀지면서 교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전에 하지 않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침체했던 교회가 개혁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교인의 마음이 열려서 거기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면 그 변화는 훨씬 더 강력하고 빠른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의 20%만 그 마음이 열리고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그 교회 전체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20대 80의 원리라고 합니다. 어떤 성과의 80%는 20%가 이룬다는 것입니다. 팔린 매상의 80%는 20%의 상품과 20%의 고객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원리에 의하면 교회 개혁이나 갱신, 그리고 성장과 부흥과 발전의 80%는 그 교회 교인의 20%가 열린 마음을 갖고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만약 20%의 교인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큰 꿈을 꾸기 시작하면 이 교회는 놀랍게 변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바로 사순절 거룩한 절기에 새벽을 깨우시는 여러분에게 이 열린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에 요동이 일기 시작하면서 여러분에 의해서 교회가 새롭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통해야 산다 숨이 통해야 살고, 말이 통해야 살고, 기가 통해야 삽니다. 사는 것은 통하는 것이고 막히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말이 막히고 마음이 막히면 그것은 살았다 하나 죽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막혀 목숨을 끊고, 어떤 남자는 여자에 막혀 자포자기를 하고, 어떤 여자는 남자에 막혀 삶이 괴롭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일에 막혀 죽을 지경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과 막혀 슬프고 외롭다고 합니다. 막힌 관계를 뚫어 통하게 하자는 것이 길이요, 막힌 세계를 열어 통하게 하자는 것이 진리요, 막힌 숨을 통해 시원하게 살자는 것이 생명이지, 그 무슨 길이 있고 어떤 진리가 있으며 그 어디에 생명이 있겠습니까? 하수도가 막혔다가 뚫릴 때의 기쁨을 아십니까? 돈줄이 막혔다가 그 어떤 손길을 통해 뚫릴 때의 시원함을 아십니까? 길이 막혔다가 길이 뚫어졌을 때 소통되는 자유함을 아십니까? 인간관계에서 막혀 옴짝달싹 못하다가 관계가 뚫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할 때의 맛을 아십니까? 먹은 것이 체하여 답답해서 미칠 지경일 때 누군가가 손을 따주어서 체증이 내려갈 때 살맛을 아십니까? 그렇다고 통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통하는 삶을 살수는 없습니다. 친구와 통하고 싶다면 친구를 찾아가야 합니다. 선생님과 통하고 싶다면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다. 자연과 통하고 싶다면 자연과 친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통하고 싶다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찾아야 합니다. 찾아서 만나고, 만나서 듣고, 들어서 해보고, 해 봐서 터치고, 터쳐서 깨치고, 깨쳐서 통하고,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통하는 것이 십자가요, 그리스도가 나와 통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와 내가 통해서 하나 되어 산다는 것이 내가 갈 길이요, 깨칠 진리요 얻을 생명입니다. 진리를 깨칠 때 마음이 깨어나고 생명을 얻을 때 몸이 깨어납니다. 마음이 깨어 몸과 통하고, 몸이 깨어나 마음과 통하는 것, 몸과 마음이 통해서 하나로 사는 것이 건강입니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건(健)은 빛이요 강(强)은 힘입니다. 빛과 통하고 힘과 통하는 것이 바로 생명이신 말씀(Logos)에 통하는 삶입니다. 막혔다는 것은 통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막힘 앞에 좌절하고 원망하고 포기하고 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사는 것은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법인 신관을 갖고, 자연과 통하는 요령인 자연관을 갖고, 사람과 통하는 기술인 인생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계를 통하는 기술인 관(觀)을 갖고 산다면 막힐 것이 있을까요? 사랑의 기술을 갖고 사람과 통하고, 평화의 요령을 갖고 자연과 통하고, 생명의 법을 갖고 신과 통하는 것이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요, 성령의 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로 진짜 나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살라는 것이 성령의 기도입니다. 머리는 진리로 통하고, 가슴은 사랑으로 통하고, 배는 생명으로 통하는 삶, 이렇게 통해서 하나로 사는 삶, 삼위일체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십자가의 용서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통하고 살게 하신 것이요, 우리 인간들끼리 서로 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용서인 것입니다. 롬 5장 6절 말씀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입었다고 합니다. 8절 말씀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주님의 사람을 입었다고 합니다. 10절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바로 그 때에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입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은 용서가 가득 묻어있는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가 진하게 배어있는 사랑! 그런 사랑이 우리 안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누군가를 정죄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내 삶의 모든 정황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심으로 이제는 우리 가정에서도, 우리 교회 안에서도 용서가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가 가득한 곳! 거기가 천국이고 거기에 기쁨이 있고 거기에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사순절 새벽을 깨우시는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이, 그리고 우리 영암교회가 그런 곳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