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는 자의 시련(야고보서1:12-18) 영국의 조지왕이 특별 전시실에 같은 원료와 타일로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같은 유액을 발랐다고 설명되어 있는 두 개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윤기와 생동감이 있어서 누가 보아도 예술적 가치가 넘치는 반면 또 하나는 이상하게도 전혀 그런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불에 구운 것과 굽지 않은 것의 차이였는데 불이라는 시련이 인생을 얼마나 윤기 있고 생동감 있게 만들며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전시했다고 관리인은 왕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는 말씀으로 시작하는 야고보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후 새로 생긴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한 야고보 선생이 믿는 여러 사람을 향해서 쓴 편지입니다. 이 야고보 선생은 좀 특별하신 분입니다. 돌에 맞고 몽둥이에 맞아서 순교했을 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서 몸을 보살피는데 양쪽 무릎이 모두 볼록하게 튀어나와 완전히 기형이 되어버려서 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야고보 선생이 평생 이렇게 기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야고보 선생이 교회의 기둥으로서 직분상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결코 나서지 않고 늘 뒤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행15:13-23). 그의 권세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야고보 선생이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야고보서 입니다. 5장 108절로 되어 있는데 그 108 절 중에서 54 가지의 명령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2절에 하나씩 명령 즉 부탁을 하십니다. 그런데 야고보 선생의 부탁한 내용들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쉬움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야고보의 입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야고보서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쁘게 여기고, 살면서 지혜를 얻지 못하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기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배타적인 기도로 내가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을 두고 두 사람이 서로 결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내가 응답을 받게 되면 나머지 사람은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은 배타적인 기도입니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께서도 조금 난감하신 부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시험에서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꼭 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일종의 배타적인 요청이요 기도입니다. 그리고 비 배타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에 나오는 지혜에 대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들어갈 학교의 정원은 어쩔 수 없으시지만 지혜는 얼마든지 가지고 계시므로 누구든지 요청하면 마음껏 주십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이런 저런 어려움이나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꾸짖지도 아니하시고 얼마든지 풍성하게 주신다고 권면하십니다(5절). 그리고 간혹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가 있는데 이 때 비굴해지거나 추해지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9절). 아울러 있는 사람들에게 권면하시기를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10-11절).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겸손하라고 부탁하시고 계십니다. 이어서 어려움이 있으면 유혹이 있을 수 있는데 유혹이 있을 때마다 어쩌면 자기 욕심으로부터 나올 수 있으므로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잘 살펴보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14절).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잘 들어주는 대신 말은 좀 적게 하라고 부탁하십니다(19절). 사람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잘 듣되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25절). 이 말씀은 야고보서 전체의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머리는 크지만 가슴이 큰 사람이 없고, 손과 발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실천하면서 사십시오. 오늘 한국 교회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어서 경건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경건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흔히 사람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점잖게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지만 오늘 본문은 이와는 다른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경건이란 첫째 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양을 갖추어도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경건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경건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경건에 대하여 다른 하나는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26-27절). 오늘 본문에서는 야고보 선생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신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엇이며 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두 번째는 “성숙한 신자들이란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볼 것은 믿는 사람들의 시련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다른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이유를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살려고 애썼는데도 시련이 있을 때는 잘못 살았거나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더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 이 시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더 높이 더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면 성숙하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그런 시련이 없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자식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경험하고 아는 바에 의하여 그들에게 정말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가르치고 꾸짖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성숙함이 그 무엇보다도 좋고 귀한 것인지 아시기 때문에 이것을 주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의 독특한 삶은 좋은 일이 있으면 당연하게 좋지만 만약 좋지 않은 일이 있을지라도 그것으로도 좋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약 지금 나에게 닥쳐온 이 시련을 아신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한 과정이고 통로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필경은 나를 이런 성숙의 단계까지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했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보지 않고 이 일이 지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나를 어느 정도 세우실 것인가? 이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시련이 있으면 시련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련이 끝나고 나면 무엇을 주실 것인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따라서 이 때 부터는 고통이 없어집니다. 여러분, 인내란 무엇입니까? 인내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인내란 이 일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성숙시킬 것이며 나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 이런 기대를 가지고 넉넉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깜깜한 굴속에서도 터널 밖을 쳐다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크게 두 번째로 성숙한 사람이란 어떠한 모습을 가진 사람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첫 번째,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므로 내게 필요한 것, 내게 좋은 것들을 그 분이 먼저 아시고 항상 나를 그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욕심 부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욕심 부리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해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욕심 부리지 아니합니다. 두 번째, 성숙한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든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를 통해서, 때로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던 아내를 통해서 내 사업의 일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세상 경험이 없다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나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고 서로 자기 말만 하기 때문에 말을 잘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아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체로 마음이 허전한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자기 가슴속이 허전하기 때문에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자꾸 말을 하는데 자기 자신조차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자신이 마치 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자기 가슴속이 꽉 차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넉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숙한 사람들은 말을 별로 많이 하지 않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성숙한 사람이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성숙한 사람은 높고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화를 내거나 큰소리 내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싫고 밉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이런 자신이 싫어지므로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 쏘아붙이면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투사(投射)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화를 내면서 큰 소리 치지만 실은 자신이 점점 황폐해져 갑니다.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상대방에게 화를 낼 것으로 자신을 치유해갑니다. 그러므로 \'가진 자는 더 받아서 넉넉하게 된다\'는 주님 말씀이 응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성숙한 사람들은 믿는 것과 행함이 같다고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믿을 때는 하나님께서 계시지만 행할 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잘 배우고 잘 들었지만 막상 이것을 삶으로 실천하려고 하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셔서 하신 설교에 많은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에도 똑같은 설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교인들이 목사님께 항의 섞인 질문을 하자 목사님의 대답은 실천할 때까지 계속 첫 주와 같은 설교를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일화이지만 생각해야 할 바가 많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속에 예수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불쌍한 사람들을 보시고 내 속에서 울고 계시는데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추위에 세계 곳곳에서 추위에, 배고픔에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만큼 주님을 더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당당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을 심판 할 여러분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흘러간다면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거룩함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성숙한 사람들이란 세상에 함께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록키 산맥의 수목 한계선은 약 3,000m 라고 합니다. 그 지점의 나무들의 모습은 곧은 것이 없고 모두 구부러져 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세계의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수목한계선의 나무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찬바람과 눈비에 시달리다 보니 정말로 성숙한 나무가 되어 최고의 명품을 만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시련이 여러분의 영혼을 윤기와 생동감이 있고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약1장 5-8절) 야고보는 목회적인 입장에서 성도들이 당하는 제일 중요한 문제를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시험을 극복하는 법에 대해 언급합니다(2-4절)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시험을 참고 견디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몇 가지의 방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견디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인내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참고 견디는 마음이 있으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시험을 통과한 후에 올 복을 생각하며 참으라는 것입니다. 2) 정복당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험하는 자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 말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음에 물질에 의한 갈등으로 시험에 들었을 때 사단에게 그 마음을 내어주게 되어 예수님을 파는 죄를 짓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주위를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을 저들에게 내어주면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3)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시험이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만났을 때, 이길 수 있는 힘이나,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4)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리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시험은 자연히 소멸되거나 우리를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에 춘추전국시절에 세 명의 영웅이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도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꾸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어느 날 현자가 그들에게 울지 않는 앵무새를 보여주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거든 죽여 버리자\"고 했으며, 다음으로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거든 울게 만들자\"고 했으며, 마지막으로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거든 울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현자는 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그 앞에 절을 했다고 합니다. 역시 시험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때가 올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해도, 기도해도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을 당할 수는 있어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일에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야고보는 곧 바로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 기도에 관해 언급합니다. 교회생활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관심사를 \"기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결국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해야 우리의 영혼이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늘 본문 5절에서 권면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절 말씀은 3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지혜를 구하되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되 믿음으로 구하면 주시겠다” 고 합니다. 첫째,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시련을 만났을 때 시련을 없애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1) 지혜란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말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하십시오. 새벽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주로 듣는 기도를 하고 새벽 기도회를 마친 후에는 주로 탄원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지혜란 선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에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꼭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누구에게 구해야 합니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를 달라고 하면 열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어서는 안되겠기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달라는 대로 다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돈만 버린다면 몰라도 자식까지 망치게 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다음에 훌륭한 인격으로 준비된 다음에는 다 줍니다. 하나님은 사려 깊은 분이기에 준비가 된 심령에게만 주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은 \"후히 주시면서도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사람은 주면서 정죄와 책망의 눈초리를 하면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받는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는 손길 속에 \"자랑하는 마음과 책망하는 눈길\"을 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처럼 후히 주시되 꾸짖지 아니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등록금을 주면서 술이 취해서 자녀들을 모아놓고 훈시하면서 큰 다음에 반드시 갚으라고 하는 아버지에 대해 불쾌한 마음을 갖는다면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절대로 아닙니다. 3. 셋째,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풀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말은 안되면 어떻게 하겠다고 후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그 추구하는 것을 성공적인 작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결혼할 때는 일생을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해야지 한번 해보고 살만하면 살고 아니면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두 마음을 품은 것이기에 그 결혼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업을 할 때는 신중히 결정하고 한번 결정했으면 사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다 안되면 다른 것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면 그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업은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고 항상 탈출구를 염두에 두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은 안됩니다. 여기에서 비약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비약입니다. 즉 일단 맡기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에서는 하나님과의 친교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될 하나님의 은혜나 능력 혹은 선물이나 물질에 주로 관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흔히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부모에게 구하게 될 때, 부모님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부모님께서 주시는 선물의 내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목적만 획득하면 엄마나 아버지는 본 체 만 체 해버립니다. 자신의 관심은 자신들이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 관심하고 있는 선물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의 관계를 소홀히 하게 될 우려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될 때 가끔 선물을 주고받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선물을 사람의 정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에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사랑의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그 사람 자신입니다. 연인 사이에는 꼭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 자신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요 기쁜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즐겁고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응답 받으면서 하나님께 늘 받기만 하니까 우리는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온통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에만 관심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기도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하면 좀 더 복종하면서 살까? 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하는 기도의 제목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이 없으면 기도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의 태도는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선물을 받지 않고 주지 않아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따뜻한 사람이 흐르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정말로 친밀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고 하는 명상집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나로 하여금 피조물보다, 건강과 아름다움보다, 모든 영화와 명예보다도, 부와 예술보다도, 쾌락과 위안보다도, 모든 은사와 은혜보다도,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좋은 것보다도, 나의 주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떠나서 내게 주신 것이나 계시한 것이나 약속한 것이 무엇이라 하더라도 거기서 하나님을 뵈올 수 없고 완전히 만날 수 없다면 그것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이고 불만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듣고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비로소 기도의 중심에 하나님 자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도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에 맞추어 지게 됩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부터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위한 건강이나 부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제는 오직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쓰여지게 하옵소서. 주께서만 나에게 선하고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니, 주께서 가장 선하고 좋은 대로만 하옵소서.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제게 주실 것은 주시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시며,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좀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제는 파스칼의 기도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교를 먼저 생각하고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는 자기의 주권을 하나님께 완전하게 맡기고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에게는 물이 필요하고, 굶주린 자에게는 먹을 양식이 필요하고, 질식된 자에게는 산소가 필요하듯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오직 하나님과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만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 기도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일직선으로 옵니다.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자에게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