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사랑하라

피차 사랑하라 (벧전 1장 22-25절)


일반적으로 \'사랑\'이란 헬라어 단어의 뜻은 네가지 정도로 표현되어지고
있습니다.
형제나 친구사이에 사랑을 말할 때, 그것은 \'필레오\'입니다. 그리고 남녀간
의 사랑을 말할 때, 그것은 \'에로스\'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
는 사랑은 \'스트로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건없이 주어지는 완전
한 사랑을 가리켜서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이 네가지 사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베드로 사도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피차 사랑하라\'
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왜 그토록 \'사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단어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말씀\' \'기도\' \'믿음\'\'사랑\' 주로 이런 단어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토록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이 단어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거나, 혹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을 말하면서도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
게 생각해보지 않고 지나갈 때가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왜 우리들이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베드로 사도는
그 이유를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22절)
요즘은 각 가정에서 자녀들을 많이 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이 \'형제
애\'에 대해 모르면서 자라납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여섯명의 형제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가 많다 보면 불편한 것도 많
이 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자라면서 자기의 것을 가져 본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형들이 쓰던 것을 물려 받았습니다. 그것도 두
단계를 거쳐서 왔기 때문에 그 목사님에게 올 때는 아주 형편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간혹, 분명히 형들이 잘못을 한 것 때문에 형들에게 대들었다가 동생이라
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님께 혼이 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차라리 형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한 적도 있었구요.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형이 있다는 사실이 그 목사님에
게 큰 힘이 된 적이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언제나 형들 때문
에 피해를 보는 피해자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목사님이 정말 어려움을
당할 때면 형들은 항상 목사님 편이 되어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형제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야곱과
에서의 경우입니다.
야곱은 간교한 꾀를 가지고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도 속여서 형에게 돌
아갈 축복을 가로 챘습니다. 그리고 먼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
게 됩니다. 돌아오면서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과연 형 에서가 자기를 받아
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시종들을 보내어 먼저 가게하고 동태를 살펴봅니다. 그
런데 형 에서는 야곱을 어떻게 합니까? 비록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축복을
가로챘지만 야곱은 자신의 동생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을 반갑게 맞이
합니다. 형제이기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
면 당장 달려가서 죽였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제이기에 과거의 잘못
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사랑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모두가 형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그 분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우리 모두는 형제입니다.
형제로서 만나게 됩니다.
어떤이들은 교회에서 \'집사 대 집사\'로 사람을 만나려고 합니다. 어떤이들
은 \'장로\'로서 성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로 만나야 합니다.목사도 여러분의 형제로서 만나야 하고, 권사님
도 여러분의 형제로서 만나야 하고, 집사님도 한 형제로서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사랑이 넘쳐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형제를 욕하고 헐뜯으면 결국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헐뜯는 것이
됩니까? 부모를 욕하는 것이 됩니다. 또 나아가서는 자신을 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형제는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힘을 합치는 자들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놓인 사람들입니까? 고난 가운데 있습니
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럴 때 힘을 합치지 않고 뿔뿔이 헤어진다면 이들의 앞날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힘을 주어 말합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분이 여러분의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되 뜨겁게 사랑을 하라고 합니
다. 여기서 \'뜨겁게\'라는 말은 \'지칠 때까지\'란 뜻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
에 대해 \"지치고 나면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
다. 육신이 지쳐서 기력을 다할 때까지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사랑은 대단히 \'열정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나이 드신분
들의 사랑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윽한
사랑에 이를 때까지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22절에 \'사랑\'이라
는 단어가 두번 나오는데 첫번째 나오는 \'사랑\'은 \'필레오\' 이고, 두번째
\'사랑\'은 \'아가페\' 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것
은 형제에 대한 사랑이 점점 성숙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침
내 그 사랑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까지 나아가
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부장교회 속해 있는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고 계시는지
요? 그리고 그 사랑이 점점 성숙되어져 가고 있는지요?

두번째로 우리가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난자들이기 때문입니다.(23절)
여러분! \'거듭났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구원을 받았다
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기쁜일이 있을때는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오래전에 어떤사
람이 신문에 이색 광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음식점을 경영하
는 사람이었는데 그 광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나라 축구팀이 올림픽에서
16강에 진출하면 모든 손님들에게 음식을 공짜로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 축구팀이 이기는 것을 무척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느 때 기뻐하십니까? 우리가 기뻐하는 경
우를 살펴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집을 장만했다든지, 새로 자동차를 구입했
다든지, 자녀가 출세를 하거나, 공부를 잘한다든지, 아니면 세상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는다든지, 대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정말 잠시 뿐입니다. 영원한 기쁨을 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썩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썩지 않
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안산의 어느교회에서 한 아이가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
를 드리고 제직회를 하고 있었는데 몇몇 집사님들이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서 주방에 있었습니다. 그날 메뉴가 \'닭도리탕\'이었습니다. 그것을 팔팔 끓
인 후에 밑에 내려 놓고 다른 음식을 하려고 준비하는데 아이가 그곳에 와
서 놀다가 그 닭도리탕 위에 풀썩 주저 앉게 된 것입니다. 졸지에 아이가
큰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산에서 치료가 불가능해서 서울로
또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간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아이가 거의 실신을 하고 정신을 차리
지 못했습니다. 훗날 그 사건으로 인해 그 아이의 엄마는 결국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년 가까이 지났는데 어느날 그 아이의 엄마
가 다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든지 보는 사람들 마다 다 의아해 했습니다.
그 분의 사연인즉 이러했습니다. 그 아이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 거의 아이
의 생명에 대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아이가 살아나게 되었고 무사히 병원에서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겠습
니까? 아이는 밤마다 아프다고 울고 짜증을 내고, 엄마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결국 아이의 고통을 달래고자 제일 먼저 시작했던 것이 아이에게 찬송을 들
려주고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엄마의 찬송소리를 듣고
성경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그 때서야 마음을 놓고 잠을 자게 된 것입니
다. 그런데 아이의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서 시작했던 찬송과 성경책을 읽
는 일이, 이제는 자신에게 은혜로 다가오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는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그랬는데, 하나님의 말씀앞에 자신을 비춰보는 순간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경읽고, 찬송하다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발
견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제
서야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거듭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
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감사하고, 날마다 기뻐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간증하기를 \"저는 아들을 통
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심정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많이 감격하고, 또 감사를
하셨는지요? 우리가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도 기뻐하면서도 영원토록 썩지
아니할 이 사실로 인해 정말 기뻐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듭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자들입니다.
여기서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살다가 하나님나라에 가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세번째로 우리의 인생이 너무도 짧기 때문입니다.(24절)
사도 베드로가 계속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나그네 인생
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모두가 인생의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입니다.요즘도 \'협궤 열차\'가
운행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뉴스를 들었을때 없어질 것이라고 했
는데 그후 어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협궤열차\'를 이용
한 사람들은 주로 상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건을 잔뜩 실어서 멀리
송도나 혹은 기타 여러 지역에 가서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 열차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오랫동안 함께 그 열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참 친숙하
게 지내십니다. 그래서 역에서 어떤 분이 타면 그 짐이 조금 무겁다고 생각
이 되면 얼른 내려가서 그 짐을 들어주기도 하고, 또 내릴 때가 되면 서로
짐을 머리에 올려 주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인생의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인생열차에 몸을 실었습니
다. 나 혼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타고 있습니다. 그리
고 내리는 시점은 각자가 다를지라도 \'죽음\'이라는 종착지에 모두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눈 감빡할 사이에 다가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종착지에 닿지 않으려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잠깐 있다가
갈, 이 나그네 인생길에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헐뜯느라 세월
을 허비해 버린다면 그 짧은 세월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입시를 앞둔 학생이 단 일분, 아니 일초라도 아껴야 하듯이 정말 한 순간
에 지나가 버릴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엉뚱한 일에
시간을 보낸다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육체는 눈 감빡할 사이에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긴 세월이 아닙니다. \'사랑\'만 하면서 살아도
모자랄 이 짧은 세월에 어찌 우리가 다른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화목한 가정\'에 대해 설교를 하시면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
다. \"여러분 부부가 살다가 보면 때로는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권투선수들이 사용하는 클린치 작전을 쓰시기 바랍니다\"
권투선수가 사용하는 클린치 작전이 무엇입니까? 주로 미스블로우(즉 헛손
질)을 하고 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역습할 기회를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
해 상대의 몸에 바짝 붙어서 상대방을 껴 안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집사님이 그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화가 나 있었습니다. 곧 폭발할 지경에 놓였습니다. 그러자 그 남편은
그 날 목사님의 설교대로 아내에게 다가가서
\"미스블로우 그리고 클린치\"하면서 아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언제 화가 났었냐는듯이 환한 미소로 못이기는 듯 그 아내도
남편에게 안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하기를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왜 사랑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썩지아니할 것으로 거듭난자들입니다. 우리
는 잠깐 스쳐가는 나그네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으로 하나가 됩시다.
이 은혜가 항상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