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머린 인간

하나님을 버린 인간 <롬1:18-23>

▶ 만물은 하나님의 표현이다.

여러분은 예술가와 예술품의 관계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미술가와 미술품
의 관계, 조각가와 조각품의 관계, 음악가와 노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셨
습니까? 모든 예술품은 예술가의 표현입니다. 예술가는 예술품 속에 자신
을 표현합니다. 자신의 정서를 드러냅니다. 자신의 눈물을 담아냅니다.
자신의 기쁨과 열정과 사랑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의 슬픔과 분노를
담아냅니다. 그러므로 작품을 본다는 것은 작가를 보는 작업입니다.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서 당신을 보
여주십니다. 오묘하고 질서있는 세계를 통해서 당신의 신비를 표현합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그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
다.\"(시19:1)
위대한 곤충학자 파브르에게 제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박사님은 과학자로
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을 믿습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
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파브르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또한 보고 있네. 믿는 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할 때 말
하는 것이지만, 나는 날마다 곤충 한 마리 꽃 한 송에서 하나님을 본다네.\"
이 말은 파브르 박사가 곤충과 꽃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그 창조자인 하나님
의 정신세계를 보고 있음을 묘사해 주는 말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말없이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 하늘이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해 낸다.
본문 말씀18절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을 통해서 인간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
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
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이란 말을 직역
하면, \'불의 안에서 진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거짓
진리를 일평생 붙들고 죽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쓴 것입니다. 이것
이 불의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러한 불의를 향해서 나타납니다. 참된
가치와 진리가 아닌 것을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불의를 향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합니다.
헬라어에서 하늘은 복수와 단수의 개념이 다릅니다. 복수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영계의 하늘로서 천국을 나타냅니다. 단수는 자연계의 하늘을
가리킵니다. 본문에는 단수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가지 자연
재해와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
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자연재해를 당합니다. 갑작스러운 홍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뜻하지 않은 화재로 고통 당하기도 합니다. 지진이 일
어나서 엄청난 피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런 바람 때문에 해일이 일어
나서 큰 인명의 피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가라
앉고, 예고치 않는 화재가 일어나서 놀라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소식
을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 진노는 또 최후심판에 대한 경고이다.
한국교회 초기에 유명했던 김익두 목사님이 전도하실 때의 일화입니다. 하
루는 어떤 청년이 김 목사님의 전도를 방해하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대
들더랍니다. 그는 자기가 애써 길러놓은 농작물에 벼락이 내렸다고 말하면
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유 없이 곡식에 벼락을 때리는 것이냐며 따졌
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사람을 억울하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김목사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 소학교
는 나왔지? 공부할 때 너희들이 장난하고, 떠들고 선생님 말씀 안들을 때,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지휘봉으로 흑판을 때리지 않더냐? 그 흑판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냐? 아니다. 그것은 경고다. 계속 떠들고, 말 안들으면 이 흑
판을 때리는 것과 같이 때리겠다는 경고이다. 마찬가지로 농작물에 벼락을
내리신 것은 너에 대한 경고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라\" 이 말을 듣고 청년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진노의 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고입니다. 회개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들을 통해서 썩어 없어질 진리를 움켜잡고 하나님의 진
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벧후3:9)
창세기6과 7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
시의 세상은 사람들의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노아에
게 홍수심판의 계획을 알리셨습니다.그리고도 회개를 기회를 주시기 위해
서 수 차례 경고하시고 그리고도 120년 간이라는 오랜 기간을 참으셨습니
다. 그러나 인간은 먹고 마시고 노는 향락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멸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서
운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여리고를 함락하기 전 하나님은 40년동
안 가나안 민족이 회개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최후
의 7일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진행하는 행로를 가로막고 오
히려 대적하다가 결국 멸망당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은 오래토
록 기다리시다가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멸망의 도
시 폼페이는 그 유적들의 음란한 증거들을 통해서 저들의 죄악상을 침묵으
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를 말해줍니다.
왜 이런 하늘로부터의 진노를 보여주십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더 큰
심판이 이르기 전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나타나게 될 최종적
인 심판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우리의 삶을 반추해야 합니다. 그래서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회개할
것을 꼭 돌이켜야 합니다.

▶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웃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
재에 대해서도 부인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볼 수도 없
고 알 수도 없는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가냐고 말합니다. 설사 심판이 있다
손치더라고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
를 하나님 자신이 보여주지 않았으니 그것은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
니다. 이에 대해서 19절과 20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
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
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19,20)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모든 자들에게, 핑계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
도록 만물 속에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신세
계, 즉 그의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의 어느 정도의 정신세계와 그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성을 느끼
게 하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죄인인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특별한 배려를 하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특별계시가 있고 일반계시가 있습니다.
특별계시는 성경이나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인류에게 자신을 드러내시
는 방법입니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통하여 드러내시는 방법입니다. 자연세계
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방법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우주와 그안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질서를 보면 만물을 존재케 하는 근원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하여 그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하늘과 바다, 그 사이에 있는 산과 들, 그것
들을 수놓고 있는 나무와 꽃과 새들, 크고 작은 생물들의 자연스러운 조화
를 심각하게 들여다보십시오. 이러한 세계를 순수한 마음으로 조금만 들여
다보아도 우리는 그 신비한 형태와 존재의 질서 앞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
습니다. 꽃잎이나 나뭇잎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을 연구해도 그 속에 담겨
진 원리와 이치를 다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많아졌
지만 아직도 우리는 나뭇잎 하나 속에 감추어져있는 신비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자연을 대하면 깊은 감회와 놀라
운 신비감에 사로잡힙니다. 자연의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는
어떤 능력을 느낍니다. 어떤 완벽함 속에서 신비한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메추라기가 태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알에서 깨어
난 메추라기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저를 보고는 놀래서 금방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제가 잡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메추라기
가 사람이 나타나면 도망가야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태어난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두 다리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교차시키면
서 뛰어갈 수 있을까요? 그 놈이 언제 교육받았습니까? 또 개가 새끼 낳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 새끼 낳고, 적당한 길이로 탯줄을 끊고 태반
은 먹어 치우더라구요. 누가 이런 거 가르쳐 주었습니까?
기러기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기러기들이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언제나 V자 형으로 대형을 이루어서 날아갑니다. 기러기들은 이렇게
V자 형으로 날아가면서 맨 앞의 자리를 계속해서 바꾸면서 날아갑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렇게 V자 형으로 날아감으로 혼자 나는 거리
보다 훨씬 더 많이 날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앞선 기러기가 날개를 치므로
뒤따라오는 기러기에게 상승 기류를 제공한답니다. 한 마리가 날아갈 때보
다 70%의 힘을 절약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하면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들
이 힘들이기 않고 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선두의 기러기는 계속해서 바꾼
답니다. 그래서 힘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요?
인간의 세계는 그 신비를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장육부(五臟六腑) 사지
백체(四肢百體) 어느 것 하나도 불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정말 완벽하게 만
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설계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우리
의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뇌입니다. 뇌는 성인 남자가 1.4kg
여자가 1.25kg 입니다. 뇌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밖에 되지 않지만 몸
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량의 20% 이상을 사용하며 또한 전체 혈액형량의 20%
가량을 요구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세포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 500억 개 정도가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으며, 어떤
신경 세포는 그 하나에 6만개의 다른 세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
게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까?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신체 및 정신 작용
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기 때문입니
다. 이 중요한 곳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첫째 보호구역은 물
로 채워져 있습니다. 왜 물로 채웠을까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입니
다. 옛날 두부장수가 두부를 지고 다닐 때는 충격 때문에 물을 띄어 놓고
두부를 운반했습니다. 둘째는 연막으로 감싸고 셋째는 지주막으로 두르고
넷째는 경막으로 감고 다섯째는 단단한 두 개골로 쌓아놓았습니다. 여섯째
는 두피로, 일곱째는 10만 대군의 머리카락으로 보초를 세워 놓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가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은 무한대입니다. 처음 컴퓨터가 나왔을 때는 저장용량이 20메가였습니
다. 그 다음에 40메가, 120메가, 500메가...이렇게 늘어나서 이제는 기가
단위로 나옵니다. 제 컴퓨터가 10기가 정도인데 프로그램 몇 개 저장하니
용량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10기가를 만드는데 인간문명이
수억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은하계나 별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것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말할 수 없습
니다. 버나드 로벨(Bernard Lovel)이라는 천문학자는 양성자들 곧 프로톤들
(protons)간의 인력이 몇 %만 더 강했더라도 수소 전체가 헬륨으로 바뀌었
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다면 은하계도, 별들도, 생명도 나타나지 않
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s Hoyle)이라는 사람
은 별들 속에 이산화탄소가 형성되기는 하는데 산소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발견한 후에는 자신의 무신론을 포기해 버렸습
니다. 하나님의 원자의 수준이 0.5%만 바뀌어도 생명체 자체가 불가능해진
다고 했습니다. 천문학자가 이것을 발견한 후에는,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을
계산하고 있는 \'슈퍼지성\'(super-caculating intellect)이 있다고 말하였습
니다. 그는 이런 사실로부터 계산한 숫자가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태양으로
부터 지구의 거리는 살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를 두어 떼어 놓으셨다. 만약
지구의 평균 온도가 2~3도만 오른다면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서, 런던과
뉴욕은 바다 밑 60m 깊이로 가라앉을 것이다. 지구의 크기, 그것이 10%만
크거나 작거나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생명도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대하면 다 느낄 수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을 보면 누구나 다 신비감에 사로잡힙니다. 저절로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아름다운 형태와 조화 앞에 경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는 느낌을
누구나 다 같습니다.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과 신성에 대한 느낌은 조물주의 존재를 인정하게 합니
다.

▶ 하나님 의식은 인간본능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과 자연 속에 자신의 어떠하심을 표현하셨기 때문에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식
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본
능입니다.
플푸타크라는 사람은 \"여러분, 성벽이나 문학이나 왕이나 집이나 체육관이
나 극장이 없는 도시들은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신
전이나 신들이 없는 도시는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도시면 도시, 마을이면 마을, 신들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고상한 신이든
지, 그렇지 못하든지 항상 신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쓸데없는 부지깽이라
도 의지합니다. 복조리라도 달아놓아야 안심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신의식
입니다. 본능입니다.
우상이 많다는 것, 이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 의식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 줍
니다. 그래서 칼빈은 \"아무리 야만적인 민족이라도, 아무리 야수적인 종족
이라도 하나님이 있다는 믿음조차 없는 민족과 종족은 전혀 없다. 다른 면
에서는 비천한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들도 약간의 종교감(sense
of religion)은 항상 가지고 있다.\"고 갈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
입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으면 자연을 볼 때 하나님 때문에 더욱 더 감격
합니다.
가을날,붉게 물든 단풍나무 숲을 보았을 것입니다. 낙엽이 얼마나 빨갛게
물들었는지 불이 난 것 같습니다. 순간 제 콧날이 찡긋하면서 눈물이 났습
니다. \'아! 하나님은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이 낙엽을 물들이
면 저렇게 실감나는구나.\'라고 탄복했습니다. 내려오는 제 입가에 찬송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찬송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 하나님 지
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
의 권능 우주에 찼네.....숲 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
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라고 노래했습니
다.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느끼고 그 분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자연을 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
하고 즐거워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축복이 넘치시기
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버리면 우둔하게 되어 우상숭배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21절부터 23절까지를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
하고 하나님을 버린 사람에게 미치는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인간에게 미치게 될까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
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1,22)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느끼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
고 감사치도 아니하면,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
다. 여기서 \'허망하여 졌다\'는 말은 허탈해 졌다, 아무 쓸데없어져 버렸다
는 의미입니다. 그 생각하는 것의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지혜 있다고 생각하나 결과적
으로 우둔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둔하게 되어 무엇을 합니까? 우상을
숭배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버린 인생의 정신과 삶이 어떻게
붕괴되어 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먼저 그 생각이
가치 없는 것과 쓸데없는 것에 빼앗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성은
스스로는 지혜로와 졌다고 생각하나, 결과적으로 우둔하게 되어 미신과
우상 속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길일이라는 말, 여러분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손 없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에는 엄청나게 이사들 많이 합니다. 길일만 되면 이사수요가
폭증해서 몸살을 앓는 게 우리나라입니다.
언제가 길일이라고 하는 날,눈보라가 몰아치며 날씨가 무척 추웠습니다.
날씨도 춥고 도로도 얼어서 이삿짐 차가 다니기가 불편해서 전국이
이사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이것이 21세기 문명의 중심에 서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고사를 지내는 일을 자주 봅니다. 프로야구를 시작할 때
선수들과 감독들이 돼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좋은 성적 올려달라고 기원
합니다. 영화를 찍기 전에 상을 차려놓고 예외 없이 엎드려 절합니다. 사업
을 시작할 때, 집을 장만했을 때....예외없이 미신적인 행위를 마다하지 않
습니다. 이것을 민족문화라고 합니다. 여러분 야구 잘하려면 열심히 연습하
면 됩니다. 영화 잘 만들려면 대본 잘 쓰고 감독과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
서 열심히 하면 한 만큼 됩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그 이외의 것
을 기대하는 사람은 불한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시작할 때
만 해도 이런 것 미신이라고 배척했습니다. 민족을 갱신시키는데 전혀 도
움 안 된다고 금하라고 계몽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신을 타파하자는
말하면 문화도 모르는 문맹인이라고 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미신은, 못살고 무식한 동네에서만 활개치는 게 아닙니다. 미신은, 못살고
무식한 동네와 가장 잘살고 유식한 동네에서 동시에 기생하는 묘한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미신이 가장 활개치는 곳은 강남입니다. 요
즘 강남에는 각종의 점 집들이 성업중이랍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그렇게 잘 된답니다. 요즘에는 컴퓨터로 점을 보는 것도 유행이랍니
다. 이것이 가장 잘 산다는 강남의 정신적 현주소입니다.
여러분, 무당 찾아가서 나 정신차리고 사람되게 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 없
습니다. 점 집 찾아가서 우리 아들 깨끗하고 맑은 정신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살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 없습니다. 돼지머리 앞에서 자신의 잘못
을 회개하며 잘 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해 달라고 비는 사람 없습니다. 이들
이 하는 것은 허망하고 가치 없고 헛된 것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돈 잘
벌고, 출세하고, 다른 사람보다 배부르게 살게 해 달라고 할 뿐입니다.
이런 문명 속에서 이성이 진보합니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돌아옵니까?
아닙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린 사람
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돌봐야 합니다. 음식은
가만히 놔두면 썩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폐허가 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계시면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갑니다. 질서가 잡힙니다. 그러나 내 맘
속에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전등에 빛이 없는 것과 같습니
다. 빛이 없으면 어둠뿐입니다. 인생이 어두워지면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하여 우상에게 갑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자연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표현을 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당신을 기억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
을 마음에서 버립니다. 그리고 마음이 허망하여 져서 가치 없는 인생 속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우상이나 따라 섬기면서 육체를 위한 가치를 따라 살다
가 영원한 심판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부장교회 성도 여러분! 자연을
보면서 더욱 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만끽하십시오. 언제나 마음 속에
하나님을 간직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낙으로 여기며 지내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범사에 잘 되는 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