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살아 나심은?

죽음에서 살아나심은...(고린도 전서 15:12-19)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형 당하여 죽으시고 장사를 지낸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서
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는 것
을 나타내 주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
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 전파도 헛
것이 되며 우리들의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는 순전한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믿을 필요가 없
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 필요성이 없
어집니다. 기독교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불쌍한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종교입니
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영생하도록 해 줍니다. 요한복음 3:15에서 예수님은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
의 기본 교리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시대별로 종교가 생겼다가 없어지기
도 하고 환경에 따라 종교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하였지만 지금까지 꾸준
히 이어온 종교는 불교와 유교와 회교 등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하
여 중국으로 건너와서 아시아 국가에 주로 많은 신자들을 두고 있습니다.
유교는 중국의 공자에 의하여 창시되어 한국으로 건너와서 일반 대중에게
예절을 중시하는 사상으로 심어졌습니다. 이슬람교는 중동지방에서 생성된
종교로서 마호멧을 창시자로 섬기면서 지금도 중동지방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에도 전파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종교
가 내세우는 교리는 모두 다 훌륭합니다. 나무랄 데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
지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이들 종교에는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들은 생명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를 창설한 부처도 죽음으로 인생을 끝냈고 유교의 창시자 공자도
죽음으로 끝났으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멧도 죽음으로 인생을 끝맺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종교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
다. 창시자들이 모두 다 죽음으로 인생을 끝맺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기독교의 창시자 예수님도 분명히 이들처럼 죽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돌무덤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만에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
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만져본 사람도 있고 같이 식사를 한 사람들
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았고 같이 식사도 하였
고 도마는 예수님의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과 허리에 있는 창 자국을 직
접 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500여명이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
았습니다. 더 이상 어떤 증거가 필요합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살아나
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종교인 것입
니다. 믿습니까?
2000년 전 오늘 새벽에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생전에 부활에 대
하여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에는 로마 병사들이 창과 칼을
가지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얼씬할 수 없습니다. 무덤 입구는 큰
돌로 막고 여기에 봉인을 하여 아무도 이곳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습
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에 갔더니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치워졌고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베드
로도 이곳에 와서 무덤 문이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안
치했던 그곳에 흰옷을 입은 천사가 앉아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무덤에 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
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
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5,6). 천사
를 본 군인들은 무서워 떨었고 그래서 얼굴이 백지처럼 희어지면서 죽은 사
람처럼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습
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
서 기독교만이 참 생명의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같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정지된 생명의 회복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정지입니다. 부활은 정지된 생명이 다시 활동하는 것입
니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 드리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살아 계
실 때 유대인들에게는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
하기로 공회에서 결정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체포하여 사형 판결
을 내렸습니다. 예수만 죽이면 모든 것이 자기들의 뜻대로 되기 때문에 속
전 속결로 사형을 시켰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예수님을 붙잡아 심문을 하면
서 밤새도록 재판을 진행하였는데 새벽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사형언도를 받게 했습니다. 이 때가 아침 6시였습니다. 날이 밝아지자 이들
은 일찍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 십자가를 세우고 강도 둘
과 함께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이때가 아침 9시였습니다.
저녁에 재판에 회부하여 심문하고 사형 언도를 하고 다음 날 오전 9시
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의 법에는 밤에 재
판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법에서도 밤에 재판을 진행하
여 사형을 언도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법으로 진행된 것
입니다. 마태복음 27:1에 보면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
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두려워했으며 눈에 가시처럼 여겼는가 하는 것을 증
명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예수님을 죽여야 되겠다는 유대인들의 속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지 몇 시간의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해야
만 했습니다. 엉터리 재판 아닙니까. 예수님을 죽인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
은 승리의 환호를 질렀을 것입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자기들의 뜻대로 해
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정지된 생명이 다시 회복되어 살아난 것입니다. 죽음으로 영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었지만 다시 사심으로 영과 육이 다시 결합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한 승리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빼앗아버리면 승리하는 줄로만 알았던 유대
인들은 다시 사신 예수로 인하여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정지된 심장 박동은 죽음입니다. 삶은 계속되는 심장 박동인데 예수님은 심
장 박동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도 결코
정지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 보증해주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은 정지
될 수 있지만 영의 생명은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정지시킬 수 없습니
다. 믿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누가 빼앗는단 말입니까? 아무도 그
렇게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을 읽어보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이라
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
다고 말하고 있는데 예수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생명을
받으면 영생을 얻게 되는데 예수의 이 생명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육체의 생명으로 활동하신 것이 아니라 영체로 활동하
신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하게 되면 영체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영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 생명을 정지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는 이 생명으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까지 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만 있으면 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8:1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처럼 예
수 안에 있는 생명도 결코 죽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원상으
로 회복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범죄함으로 인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다시 회복된 것입니
다. 여러분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의 생명을 회복하시고 하나
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번 부활절을
맞이하여 여러분들도 영생을 확실히 소유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미래의 보장입니다
우리들의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들의 미래가 확실해졌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미래는 언제나 희미합니
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불확실한 가운
데 혹시나 하고 희망을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
면 언제나 불안합니다. 특히 죽음에 대하여는 늘 불안합니다. 생명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말로 우리들에게 가장 큰복입니다. 인간들은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하여 의학을 발전시켰고 생명 공학을 발전시켜서 죽음 문제를 해결
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들의 수명이 연장될 것 같
습니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고 인간 세포를 배양하여 복제 인간
을 만든다고 하고 있고 인간의 각종 장기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
모든 시도는 인간의 수명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보장
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더 나은 기술을 만들어 인간들의 미래를 보장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각종 질병이 나타나서 인간들을 괴
롭힐 것입니다. 지금 유럽에는 소의 광우병이 유행되어 농부들이 고통을 당
하고 있는데 이제는 구제역이 발생하여 전 유럽을 휩쓸고 있어 어떤 농부
는 하는 말이 지금 우리는 재앙을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
인 것입니다. 이제는 전 세계가 광우병과 구제역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
고 있습니다. 혹시나 우리나라에도 광우병과 구제역이 전염되지 않나 하고
심히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
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미래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들의 미래의 생명을 확실하게 보장해 놓으셨습니다. 생명 하나만 확실하
게 보장받으면 다른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
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을 모
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십 수년을 키운 독자를 제물로 바
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
로 아들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결박하여 번제물로 드리려고 칼
을 들고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다른 제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것
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이제는 확실하게 보장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
의 생명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죽이는 줄로만 알았던 아브라함은 하
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
다. 나의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지요. 그러나
보장이 안 된다고 아무렇게나 산다면 미래는 더욱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들의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했는데도 우리는 이를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주의 일도 신
통치 않게 하고 있습니다. 잘못하고 있지요? 영원한 미래가 보장되었으면
더욱 더 열심히 주의 일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불안한 미래 때문에 많은 심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할 수 없어
서 고학력 실업자가 되고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
었으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불안한 미래를 안고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습니
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정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빨리 경기
가 회복이 되어서 좋은 직장을 잡아 일을 해야할텐데 걱정스럽습니다. 여러
분의 앞길에 대한 불확실한 것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있습니까? 앞으로 어
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불안합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도 두려워할 필요
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라는 말을 확실히 믿는다면 두려워할 필요
가 없습니다. 주께서 내 길을 예비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
나님께 여러분의 앞길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
님 그 분이 여러분의 앞길 하나 보장해 주지 못하겠습니까? 주님께 맡기십
시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 나의 하루 하루
는 주님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 길 예비하시네)부장의 교우 여러분들은 예
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여러분의 미래를 확실히 보장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시공의 제약에서 해방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덤이라는 공간이 예수님을 붙잡아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사형시킨 후에 돌무덤에 장사
를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무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무덤 입구
를 큰돌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부족하여 봉인을 했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이 무
덤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오늘 새벽에 무덤을 막았든 돌이 굴러져 있었습니
다. 예수님의 시체는 그 안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무덤을 나
왔습니다. 돌무덤이 예수님을 가두어둘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공간의 제
약을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가두어 두어도 예수님은 갇히지 않
습니다.
우리들은 장소의 제한을 받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이 있습니다. 청소년
출입금지나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입구에 붙어 있습니다. 청소년이
나 미성년자들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출입금지 구역이 많습
니다.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받지만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자꾸만 들어가
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신앙인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장소
가 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들어가면 안 되는 장소가 보입니다. 술집
에는 들어가면 안되겠지요. 춤추는 사교장소에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경마
장에 가는 것도 금해야 합니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곳에 가면 안됩니다. 카
지노에 들어가서 놀음을 하는 것도 안됩니다. 디스코 텍에 들어가서 흔들어
대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장소에 들어가는 것을 금해야 합
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이런 곳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야 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장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어야 합
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도 구애를 받지 말아야 됩니
다. 다른 사람들보다 작은 집에 산다고 불평하지 말고 남의 집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집이 다른 사람의 집보다 작아도 불평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장소에서 감사하며 살아야 평안
이 오는 것입니다. 넓은 장소에 살면 좋겠지요. 그러나 좁은 집이라도 얼마
든지 웃으며 단란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만 있으면 장소가 문
제이겠습니까? 그래서 교인들은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시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제약을 받고 있
습니다. 먹고살기 위하여 열심히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다보니 교회 갈 시간
도 없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에 제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
렇게 일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아무리 눈 코 뜰 새 없이 일한다
고 해도 주일날 교회는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시간마저도 빼앗기며 살면 떼돈 벌 수 있습니까? 생활에 여유를 가지
면서 살아야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데 너무 시간에 좇기면서 살면 사
는 맛이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또한 적당히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살
아야 사는 것 같이 사는 것 아닙니까.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야 사는 재미
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교인들은 주일 하루만이라도 교
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성도의 교
제를 해야 믿음도 자라고 스트레스도 풀리며 생활의 여유도 생기는 것입니
다. 주일에 교회 오면서 꾸미면서 맵시도 내고 자기 자신을 찾는 시간을 가
지는 여유를 즐겨야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예배드리면서 영혼이 힘을
얻고 예배 후에는 편안히 쉬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육신도 힘을 얻어야 합니
다.
부활은 개인의 정지된 시간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것입니다.

넷째, 고난을 이긴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에 체포되어 새벽까지 재판을 받고 오전 9시에 사형
을 당했습니다. 그사이 채찍을 맞고 억지로 가시 면류관을 써야 했으며 십
자가에 못 박힐 때의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 모
든 고통을 참고 계시다가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심
으로 고통을 이기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고
통을 짓누르고 이기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
하면서도 자신을 못박은 사람들은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에 보니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미 고난을 이
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폭도들이 예수님의 육체에 아무리 고통을 가한
다고 해도 예수님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고통이 예수님을 항복시킬 수 없
습니다. 죽음의 고통도 예수님을 가두어둘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성도들에게 많은 힘을 주고 있습니다. 불같은 시험
이 많고 고통도 많은 세상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말해주
고 있습니다. 삶이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 넣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 고통
에 매여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
는 믿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큰 힘을 주기 때문에 고통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성도는 고통을 당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고통
을 우리의 믿음을 연단 시켜 금과 같이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
로는 베드로전서 1:6에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
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래서 우리들은 시험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고통
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혹시 많은 고통 중에 있는
교인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얻어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새벽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도 다시
살 수 있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으면 결코 정지
될 수 없는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고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
며 고난이 많은 세상살이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승리의 찬송을 부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함께 여러분의 삶이 힘
을 얻어 다시 일어나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