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35/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하나님의말씀


욥기강해35/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II)/욥38:39 - 39:30

욥기를 읽을 때마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놀랍니다. 광물학, 해양학, 기상학, 천문학, 등에 관하여 매우 풍부한 지식을 자랑합니다. 28: 15-19절이 욥기의 보석목록이라고 한다면 오늘 말씀은 욥기의 동물목록이라 할만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자연 세계의 신비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 대표적인 동물 10마리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즉, 사자, 까마귀, 산염소, 들사슴,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 독수리 등의 본능과 습성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십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의 공통점은 다 인간에 의해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야생성입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은 이 야생 동물들을 쉽게 제어하시고 길들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동물 세계의 신비까지 관장하시는 분으로서 욥의 무능과 무지를 대비시키려는 의도를 가집니다. 동물 세계에 대해서까지도 욥의 인간중심적 사고를 통렬히 비판하는 것이지요.

1. 사자, 까마귀, 산염소, 들사슴, 들나귀의 생태(38: 39-39: 8)

하나님은 동물의 왕국에 대한 찬양이라 할 만치 동물 생태계의 신비를 칭송하십니다. 먼저 들짐승 중에 백수의 왕 사자와 날짐승 중 연약한 축에 끼이는 까마귀를 언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강한 들짐승에서부터 연약한 날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 세계를 주관하신다는 의미이지요. 사자가 굶주린 새끼를 먹이기 위하여 교묘한 사냥을 하는데 욥은 먹이감을 계속 조달할 수 없습니다(38: 39). 하나님은 까마귀 새끼들이 필요한 먹이도 마련해주십니다(38: 41). 산염소나 들사슴은 바위가 많은 광야나 황무지에 주로 서식했으므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산염소가 언제 새끼를 낳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들사슴이 언제 새끼를 낳는지, 그 새끼를 어떻게 길러서 광야로 풀어놓는지도 몰랐습니다(39: 1-2). 들나귀는 주로 초지에서 자생하는 짐승으로서 사납고 자유분방합니다. 그리하여 들나귀가 들판으로 집을 삼고 소금기 있는 땅을 살 곳으로 지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39: 5-8). 욥을 비롯한 인간들은 들나귀의 생태에 대해서도 무지합니다.

2. 들소, 타조, 말, 매, 독수리의 생태(39: 9-30)

들소는 집에서 기르는 소와 달리 매우 거칠고 공격적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길들이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들소가 욥의 일을 거들어주거나 외양간에 잠을 자거나 쟁기를 매어 주어서 밭을 갈게 하는 일이 다 무리라는 것입니다(39: 9-12). 타조가 가장 흥미로운 동물입니다. 타조는 몸집에 비해 머리가 작기 때문에 흔히 어리석은 동물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요. 누가 공격해 올 때 시속 50-70킬로미터까지 도망치다가 머리를 모래 속에 쳐 박고서는 이제 됐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새 중에 가장 클 뿐 아니라 타조알도 새알 중에서는 제일 크다고 합니다. 타조는 날지 못하는 새이지만 달리기 속도는 얼룩말보다도 더 빠릅니다. 하나님은 타조가 날개를 뽐내면서도 황새처럼 날지 못하고 누가 밟아서 깨질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알을 땅에 내버려두는 미련한 새라고 하십니다(39: 13-16).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타조의 이중성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나 하나님이 타조를 어리석은 짐승으로 만들고, 지혜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조가 한 번 날개를 치면서 달리기만 하면, 말이나 말 탄 사람쯤은 우습게 여긴다\"(39: 17-18). 타조가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며, 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솜씨라는 것이지요. 타조야말로 어리석음과 강함이 뒤범벅이 된 이중적 짐승이며 욥의 자화상(30: 29)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말이 10가지 동물 중에서 아마 유일하게 길들여진 짐승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도 집에서 기르는 말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기병들이 사용하는 전마입니다. 하나님은 전마의 용맹스러움과 빠르게 질주하는 모습을 매우 생동감 있게 묘사하십니다. 갈기를 흩날리며 \'힝힝\' 콧김을 뿜으며 앞 발굽으로 땅을 마구 파대면서 성난 모습으로 전쟁터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39: 19-25). 마지막으로 매와 독수리는 하늘 높이까지 올라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매서운 눈매로 먹이감을 살핍니다(39: 26-30).

3.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은 들짐승 여섯 마리, 날짐승 네 마리 등 대표적인 동물들의 생태 환경을 생생하게 묘사하십니다. 이들 짐승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말을 제외하고서는--물론 이 경우에도 전마이기 때문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모두 인간이 길들이기 어렵고 자기 나름대로 야생적인 자유를 만끽하는 짐승들입니다. 인간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에 의해 지음을 받고 돌봄을 받는 야생성 짐승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짐승들이 만끽하는 자유의 표상을 통하여 욥이 동물의 세계와 관련해서 가져온 인습적인 사고, 즉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십니다. 동물의 세계까지도 네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이지요!

사실, 사람들은 짐승의 좋고 나쁨을 인간의 목적과 유용성에 합당하게 길들여질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야생 동물들은 언제나 위험과 불안의 대상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역사는 야생 동물들을 포획하고 길들여 인간의 이기적 목적에 맞게 정복하고 착취하는 쪽으로, 즉 사냥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이러한 동물의 왕국에 대한 포획과 살상의 신학적 근거는 주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창 1: 26절과 28절에 의존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본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동물관을 비판하고 교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생물 세계,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지 간에 인간의 유용성과 이기적 목적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와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어리석기 짝이 없는 타조도 기뻐하시는데 하물며 아직 미련하여 자기의만 주장하는 욥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빗대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동물을 비롯한 자연 세계를 인간의 유용성과 이기성이라는 좁은 잣대에 따라 약탈과 착취, 즉 사냥 일변도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좋다고 여기시고 기쁘시게 여기신다는 단순한 사실을 먼저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이사야 선지자가 보여주는 종말론적인 비전은 앞으로 우리가 동물의 세계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를 적시해줍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사 11: 6-9).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사 4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