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34/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첫번째 말씀(1)

욥기강해34/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I)/욥38:1-38


엘리후의 발언이 끝나자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십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하나님이 마침내 욥 앞에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1-2장의 서막에서 욥에 관하여(about)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제 욥에게(to) 직접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욥과 직접 대화를 나누시는 까닭에 하나님과 욥은 객체가 아니라 대화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에 끼어 있던 사탄도, 세 친구들도, 엘리후도 다 사라지고 하나님과 욥만이 남았습니다. 욥의 문제는 하나님 신앙에 대한 문제였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두 차례씩이나(38: 1-39: 30; 40: 1-42: 6) 말씀을 하시지만 욥이 그토록 목말라했던 질문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예컨대 인과응보론이 옳은지 그른지, 의인이 고난받고 악인이 번성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기가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왜 불의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 대신에 아주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질문들--즉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아느냐?,\" \"네가 감히 할 수 있느냐?\"--을 물으십니다. 이 물음은 \"도대체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물론 이 질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기대하시는 대답들은 \"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입니다. 부재와 무지와 무능으로 표현되는 철저한 피조성과 유한성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제 욥은 하나님께 따지고 질문하는 자에서 거꾸로 집요하게 따짐과 질문을 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말씀에서 창조주와 창조성, 그리고 피조물과 관련된 일련의 질문들을 통하여 욥이 피조물로서 조물주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자기의, 즉 독선이 아니라 겸손과 순종을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사실 욥이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나중에는 \"하나님 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이 고통을 당하니 결국 하나님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면서 책임을 하나님께 떠맡기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습니다. 이런 욥의 독선적인 태도에 대해서 엘리후가 상당 부분 손을 봐준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더욱더 철저하게 욥에게 남아있는 일말의 자기의라도 사정없이 깨부수십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은 욥으로 하여금 창조의 신비 앞에 서게 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자인하게 만듭니다. 먼저 오늘 말씀에서 창조 세계의 위대함, 즉 지구의 기초와 설계, 바다의 경계와 통제, 아침 노을의 신비, 바다 속 신비, 빛과 어둠의 관계, 기후와 성좌의 신비, 기상 현상, 등등 우주 자연의 신비와 장엄함을 언급함으로서 욥의 부재와 무지, 무능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내일 살펴볼 말씀에서는 각종 들짐승들과 날짐승들의 본능과 습성을 열거함으로서 짐승들조차 자유롭게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인식하게 만듭니다.

1. 정교한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창조 세계(38: 1-21)

욥기에 있어서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부분은 욥의 발언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저자가 공을 들였기에 문학적으로도 백미에 해당된다는 것이지요. 38: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여기서 여호와, 혹은 야훼, 즉 주님의 구체적인 이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입니다.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구체적 하나님 야훼께서 욥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말씀의 청자로서 욥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 관하여 제 3자 다루듯이 하지 않으시고 욥에게 직접 말씀을 건네신다는 것이지요. 또한 폭풍, 곧 회리 바람은 하나님 현현시에 흔히 발생하는 자연적 신비로서 성경에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출 19: 16-19; 겔 1: 4; 슥 9: 14) 하나님의 응답이 단지 발언으로 된 것만이 아니고 구체적인 임재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야훼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시는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세요.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욥을 향하여 포문을 여신 첫 질문입니다. 과연 너라는 녀석이 누구이기에 잘 알지고 못하고 허탄한 말로 하나님께서 세계를 이끌어 가시는 섭리와 계획에 대해서 의심하느냐는 일갈이지요! 욥이 계속 자기의 옳음만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드니까 하나님께서 질책부터 먼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와 능력을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지금 자기가 주장하는 것만 다 옳고 하나님은 틀리단 말이냐 하면서 욥에게 핀잔을 주시는 것이지요. \'허리를 동인다\'는 말은 싸울 채비를 한다는 히브리적 표현입니다. \"이제 어디 네가 과연 얼마나 지혜가 뛰어나고 잘나서 너만 옳고 나는 그르다.\"고 하는지 한번 하나님과 맞장을 떠보자는 것이지요.

자, 그러면서 하나님은 욥에게 우주 만물이 시작된 태고의 시간과 장소로 화제를 시작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38: 4-6). 여기 보면, 우주의 기초에 관하여 계속 \"거기 있었느냐?,\" \"네가 아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주를 완벽하게 설계하고 측정하고 공정하실 때 욥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며, 그 놀라운 신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욥이나 친구들이 안다는 것이 착한 사람에게는 상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주기 위하여, 즉 인과응보의 법칙이 실현되는 장소로서 이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뿐입니다. 이같이 짧은 지식에 묶여서 우주 창조의 엄청난 계획을 알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8-11절에서 하나님은 바다의 경계를 설정하여서 혼란과 악으로 상징되는 바닷물의 오만스러운 힘을 제어하신 분이 당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15절에서 하나님은 욥이 아침을 명해서 동이 트게 한 적이 없음을 지적하면서 욥의 무능을 또 한번 드러내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13절인데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시간 새벽에 악한 자들을 털어낸 적이 없으며 그들 위에도 새벽빛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창조가 상선벌악과는 무관한 하나님의 자유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지 않습니까? 16-21절에서는 세계의 가장 먼 경계까지, 즉 바다 속 깊은 곳과 죽음의 세계의 깊이, 빛과 어둠의 근원이 시작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창조 세계의 장엄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욥은 바다 속 깊은 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며(16절), 죽은 자가 들어가는 문을 들여다 본 적도 없으며(17절), 세상이 얼마나 큰 지 짐작조차 못한다(18절)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해서도 무지합니다(19절). 그러면서 하나님은 욥의 무지와 무능을 빈정거리십니다. \"암, 알고 말고, 너는 알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살아왔고, 내가 세상 만드는 것을 네가 보았다면, 네가 오죽이나 잘 알겠느냐!\"(21절). 전형적인 반어법이죠! 물론 욥은 창조시에 없었고 창조 세계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질서의 신비를 모릅니다. 그것도 모르는 주제에 왜 그렇게 너만 옳고 너만 잘 났다고 내 세우냐고 힐문하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로 지어진 창조 세계(38: 22-38)

4-21절에서 우주의 네 영역, 즉 땅(4-7절)과 바다(8-11절)와 하늘(12-15절)과 지하, 즉 바다 속(16-18절)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 22-38절에서는 이 영역에 내주하는 피조물의 현상을 다룹니다. 다시 말해 우주의 설계와 건축이라는 주제로부터 우주의 운행과 질서라는 주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눈, 우박, 바람, 비, 이슬, 얼음, 서리와 같은 다양한 기상 현상들을 언급하신 후(22-30절), 별자리의 신비와 기후의 조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31-38절). 계속해서 우주의 기원과 출처에 대한 욥의 부재와 무지, 무능을 폭로합니다.

욥은 눈을 쌓아 둔 창고나 우박 창고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22절). 해가 뜨는 곳에 가 본 적도 없으며 동풍이 불어오는 시발점에 가 본 적도 없습니다(24절). 비가 개울을 만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신비나, 풀이 돋는 이치나 얼음이 얼고 서리가 내리는 원리는 다 욥이 관여한 것이 아닙니다(25-30). 여기서 하나님의 자유를 암시하는 또 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땅, 인기척이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는 이가 누구냐?\"(26절). 무인지경, 비가 아무 쓸데없는 곳에도 비를 주시는 하나님, 창조가 엄격한 도덕 질서 속에서가 아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로 비롯되었다는 것이지요! 별자리를 배치하고 관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 여기에 대해 욥은 무지하고 무능합니다(31-33절). 기후와 관련해서 번개와 폭우 현상, 그리고 강물의 범람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지 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34-38절). 이렇게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인식을 훨씬 뛰어넘는 창조 세계의 비밀과 신비를 욥에게 똑똑히 보여줍니다. 욥의 부재와 무지와 무능을 폭로하는 것이지요! 거기에 없었으면서도, 알지도 못하면서, 하지도 못하면서, 한 마디로 아무 것도 아닌 주제에 왜 홀로 잘난 척 하느냐는 질책입니다!

3.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

욥이 끝까지 자신의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 센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도대체 네가 창조주냐? 내가 창조주냐?\"를 물으십니다. 우주 만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열거하며 욥의 아무것도 아님을 드러내십니다. 따지고 불평하고 탄식했던 욥이 정신이 번쩍 나도록 매섭게 몰아 부치십니다. 사실 욥이 억울한 피해자인 것은 명백하나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되었고 자기만 옳다고 하는 주장, 심지어 하나님께도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 태도는 이해는 되지만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즉 독선의 모습이 어른거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명백히 옳더라도 한 번쯤 자기를 찬찬히 돌아보고 성찰할 줄 아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옳은 것만 가지고 세상일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욥기가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정의 그 이상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잘했으니 여기에 상응하는 상을 받고 이 만큼 잘못했으니 거기에 비례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상선벌악, 즉 인과응보의 법칙 그 이상을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사실 욥이 죄없이 부당한 고통을 받는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한 그 역시 인과응보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욥 역시 이 우주는 하나님의 상선벌악의 계획이 어김없이 실현되는 장소라는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통 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이 인생의 신비를 깨닫기 원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욥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고하고 신비한 고통을 미리 보여주는 책입니다. 예수님도 아무 잘못 없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불평하거나 원망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고한 고통이 정의와 엄격한 도덕 질서로만 움직여나가는 이 세상의 한계를 사랑과 용서의 세계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경배 찬양] 예수 사랑
  • 글쓴이:두나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