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강해26/ 욥의 독백(I) :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욥28:1-28 28장은 참 흥미롭습니다. \'지혜의 송가\'라 할 만치 지혜를 높이 찬양합니다. 또한 채광 작업과 광물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있습니다. 비판적인 학자들은 친구들과의 3라운드 논쟁이 끝난 뒤 뜬금 없이 갑자기 지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본문을 욥의 변론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28장의 지혜에 대한 언급이야말로 저자의 치밀한 의도에서부터 나온 욥의 발언이라고 볼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친구들과의 세 바퀴 논쟁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공전이 계속됐습니다.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피폐해졌을 뿐 뭔가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욥이 왜 이 부당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친구들도 설명해주지 못했고, 하나님도 침묵하셨으며, 욥 자신도 갈수록 의문만 쌓이고 갑갑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논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국면 전환이 절실해졌습니다. 뭔가 분위기를 일신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욥으로 하여금 지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듭니다. 지금까지의 치열한 논쟁이 한계에 부닥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지혜의 부재\'에서 온 것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리하여 욥은 친구들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면서, 그리하여 그들과의 논쟁을 접으면서 보다 근원적인 질문, 즉 자기가 당면한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에 결정적인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지혜의 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오직 지혜를 얻는 길만이 현재의 벽을 뚫고 어떤 결정적 해결의 길로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28장은 욥이 잠시 멈추어 서서 지금까지 진행되어져온 논쟁을 반성하는 동시에 자기가 지금까지 씨름해온 실존적 질문이 앞으로 어떻게 타개될 것인가에 대해 전망을 하기 위한 모색의 시간이요 전환점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28장의 주제는 선명합니다. 인간이 지혜를 찾아 헤매지만 지혜는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광물과 보석을 캐내기 위하여 갖가지 수고를 다하며 마침내 찾아내고야 맙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게 채광하듯이 고생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지혜는 금은보석을 사고 팔 듯이 할 수 없으며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고 어떤 값을 지불해도 살 수 없는 것이 욥이 찾는 지혜라고 한다면, 그 지혜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욥의 대답은 주님을 경외하고 악에서부터 떠날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28절). \'하나님 경외,\' 즉 수직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신앙과, \'악에서부터 떠남,\' 즉 수평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덕성을 다 붙들 때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이것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한 욥 1: 1, 1: 8, 그리고 2: 3절과 만나는 말씀이기에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1. 찾기 어렵고 사고 팔기도 어려운 지혜(28: 1-19) 1-11절에서 욥은 그 당시 채광과 제련 기술에 대한 지식을 동원하여 지혜 찾기를 광물 캐내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광부들은 광물, 즉 금이나 은, 철, 구리, 청옥(사파이어), 사금, 등을 찾아내기 위하여 별의 별 방법과 기술을 고안하여 기필코 찾아냅니다. 땅 속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땅이 집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고 또 그 땅속이 아무리 캄캄해도 거기에 갱도를 파고 줄을 타고 외롭게 매달려 광물 찾기에 골몰합니다. 심지어 그 땅 속에는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있지만 그 위험을 다 무릅쓰고 기어코 각종 진기한 보물을 찾아냅니다. 날쌔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매나 독수리, 사납기 이를 데 없는 사자 같은 맹수도 밟아 본 적이 없는 산과 강의 근원에서 광맥을 찾아내 바위를 깨고 뚫고 산 밑뿌리를 파고 들어가 각종 진귀한 보물을 채굴해내고 맙니다. 이렇게 채광 작업에서 주목되는 것이 \'장소\'와 \'거기에 이르는 길\'과 \'발견\'이라는 세 가지 용어입니다. 보물이 있는 장소는 사람 사는 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4절). 그 광맥에 이르는 길은 솔개나 독수리나 사자 같은 야생 짐승들도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길입니다(7-8절). 그리고 오직 숙달된 광부들만이 그 장소와 그 길을 찾아내 아주 특별한 채굴 기술로 각종 보물들을 발견해냅니다(9-11절). 그렇다면 욥이 광부와 광산과 채광 기술을 통하여 그 힘든 광물 찾기의 과정을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2-14절을 보세요. \"그러나 지혜는 어디에서 얻으며, 슬기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지혜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지혜의 참 가치를 알지 못한다. 깊은 바다도 나는 지혜를 감추어 놓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넓은 바다도 나는 지혜를 감추어 놓지 않았다 하고 말한다.\" 지혜가 광물 찾듯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금이나 은, 철, 구리, 사파이어, 사금, 등등 각종 진귀한 보물을 찾듯이 찾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광부는 광물 있는 장소와 그 곳에 이르는 길을 용케도 알아 각종 채굴 채광 기술을 총동원하여 보물을 잘도 발견해내지만, 지혜는 그 장소도 길도 도무지 발견될 수 없는 깊은 심연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지혜가 땅 속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노력이나 기술로 발견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지혜가 감추어진 장소와 길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적시한 뒤, 욥은 15-19절에서 지혜는 그 어떤 값을 치르고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지혜는 금을 주고 살 수 없고, 은으로도 그 값을 치를 수 없다. 지혜는, 오빌의 금이나 값진 루비나 사파이어로도, 그 값을 치를 수 없다. 지혜는 금보다 값진 것, 금잔이나 값진 유리잔보다 더 값진 것이다.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수정보다 비싸다. 지혜를 얻는 것은 진주를 가진 것보다 값지다. 에티오피아의 토파즈로도 지혜와 비교할 수 없고, 정금으로도 지혜의 값을 치를 수 없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지요! 여기 그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렵고 엄청나게 비싼 귀금속이 모두 13개나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그 당시 통용되던 최고의 보석 카탈로그인 셈이지요. 금, 은, 오빌의 금, 루비, 사파이어, 금, 금잔, 유리잔, 산호, 수정, 진주, 에티오피아의 토파즈, 정금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물들은 서로 비교해서 값을 계산하고 사고 팔 수 있지만 지혜는 값을 따질 수 없고 그 어떤 보물로도 사고 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최고의 가치를 지녔던 13개의 보물과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최고의 보배가 지혜라는 것이지요! 최고의 과학 기술과 최대의 장삿술로도 도무지 그 값을 매길 수 없어서 아예 사고 파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혜, 얼마나 귀한 지요! 욥의 이러한 주장은 잠언서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낫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잠 16: 16).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이 있지만, 정말 귀한 보배는 지각 있게 말하는 입이다\"(잠 20: 15). 사실 친구들과 욥이 지금까지 벌여온 설전도 말로 지혜를 장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아직 진정한 지혜를 발견하지 못해 소강 상태에 빠진 것 아닙니까? 친구들이 자기에게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지혜는 욥이 정말로 얻기 원하는 지혜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주장은 다분히 친구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2.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28: 20-28) 지혜는 인간에 의해서 발견될 수 없고 그 가치도 인간의 계산으로 따질 수 없다면, 이제 또 다시 제기되는 질문은 지혜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20-22절을 보세요.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에서 오며, 슬기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져 있고, 공중의 새에게도 감추어져 있다. 멸망의 구덩이와 죽음도 지혜를 두고 이르기를 지혜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하고 말한다.\" 지혜의 출처가 오리무중이라는 것이지요. 우주 그 어느 곳, 피조 세계 그 어떤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에서 옵니까? 욥은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단언합니다. 23-24절을 보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을 아신다. 그분만이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오직 그분만이 땅 끝까지 살피실 수 있으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다.\" 땅과 하늘은 창 1: 1절에서처럼 우주 만물 전체를 지칭합니다. 땅 끝까지 살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보신다는 말은 온 우주 전체를 통 털어 지혜로 꿰뚫고 계신다는 말이지요. 지혜의 장소, 그 지혜 있는 장소에 이르는 길, 그 장소와 길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이나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채광과 제련 등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과학 기술로서는 참된 지혜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만물을 두루 다 통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에게 참된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지혜의 원천을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서 찾습니다. 25-27절을 보면, 욥은 지혜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신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네 가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언급합니다. 바람의 강약을 달아 보시고, 물의 분량을 달아 보시며, 비가 내리는 규칙을 세우시며, 천둥 번개가 치는 방법을 정하신 바로 그 때, 즉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을 그 때에 지혜도 함께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와 같은 창조 행위를 통하여, 27절의 말씀처럼 지혜를 보셨고 지혜를 칭찬하셨고 지혜를 튼튼하게 세우셨고 지혜를 시험해 보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공허한 관념이나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체적인 창조 행위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요 1: 1-3절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 로고스, 하나님의 지혜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이지요! 참된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면 이 지혜는 채광 기술이나 장사와 같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없고 관념이나 이론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구체적인 창조 행위를 통한 선물로서 받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결론부인 2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곧 슬기다.\'\" 인간이 지혜 그 자체에 도저히 접근할 수 없지만 가장 근사치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경외\'와 \'악을 멀리함\'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인 차원, 즉 종교 영성적인 차원과, 이웃 사이의 수평적인 차원, 즉 윤리 도덕적인 차원을 함께 아우를 때 인간은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욥기 서두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칭찬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1: 1; 1: 8; 2: 3). 욥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이미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욥 자신이야말로 참 지혜를 간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신학이나 어떤 도그마, 이데올로기에 뿌리박고 있는 아래로부터 온 인간의 지혜, 즉 인과응보론으로 대표되는 친구들의 지혜와 자신의 지혜를 차별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3회전에 걸친 친구들과의 혈전을 끝낸 뒤 욥은 친구들과 달리 참된 지혜의 사람으로서 전열을 정비해 새로운 국면으로 뛰어 들 채비를 갖춘 셈입니다. 인간의 교조적 신념과 이론, 즉 아래로부터 지혜를 찾는 친구들과 달리 자기는 위,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겠다고 각오를 다집니다. 결국 28장은 궁지에 빠진 욥이 27장에서 29장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3.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 필자의 스승 민영진 박사님께서 \'지혜는 소프트웨어이고 우리는 하드웨어\'라고 하신 말씀이 참 좋습니다. 지혜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은 지혜로울 수 있으나 우리를 떠날 경우 다시 어리석어진다는 말씀이지요. 지혜는 우리를 소유할 수 있으나 우리가 지혜를 영구히 사유화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사울 같은 사람이 한 때 지혜롭기로 말하면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였으나 지혜가 떠나가니 어리석기 짝이 없어졌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에서, 야곱, 삼손, 다윗도 지혜롭다가 일순간 다시 어리석어진 적이 있으며 성경 안에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번 지혜로워졌다고 해서 영원히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목회를 해보니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또한 어떤 순간에는 지혜가 있는 듯이 느껴지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형편없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추락할 때도 있습니다. 아, 그리하여 또 다시 깨닫는 진리는 지혜는 죽을 때까지 끝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할 최고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지혜를 사모하오니 지혜를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