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강해16/빌닷의 두 번째 공박 : 악한 자는 필경 망하리/욥18:1-21 본문 말씀은 빌닷의 두 번째 발언입니다. 빌닷은 수아 사람으로서 \'하닷의 아들\'이란 이름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로 선대로부터 전해 받은 지혜 학문에 기반을 둔 전통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8장에서 빌닷은 인과응보론이라는 전통 학문에 기초해서 하나님께서 온전한 사람은 복 주시고 악한 사람은 벌 주신다는 단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이런 논리는 더욱 과격하고 철저하게 두 번째 발언에서도 유감 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욥이 자신의 무죄성을 일관되게 주장하자 더욱 더 신경질적으로, 그리고 원색적으로 욥을 악인으로서 공박합니다. 흥미롭게도 첫 번째 발언에서 언급되었던 욥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희망(8: 5-7)이 두 번째 말에서부터는 일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엘리바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점차 설전이 격렬해지기 시작하자 친구들은 첫째 바퀴 때와는 달리 아예 둘째 바퀴부터는 욥이 악인이라는 사실을 기정 사실화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만큼 친구들의 입장도 강경해졌다는 것이지요. 빌닷의 요점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반드시 벌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신 까닭에 욥은 악인이 필연적으로 당해야 할 응벌을 운명처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1. 욥을 향한 빌닷의 적개심(18: 1-4) 빌닷은 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결백성을 주장하는 광경을 지켜보고서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2-3절을 보세요. \"너는 언제 입을 다물 테냐? 제발 좀 이제라도 눈치를 채고서 말을 그치면, 우리가 말을 할 수 있겠다. 어찌하여 너는 우리를 짐승처럼 여기며, 어찌하여 우리를 어리석게 보느냐?\" 세 친구들이 한 통속이 되어서 욥을 죄인으로 몰고 가도 욥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고통 받아야 할 만큼 죄가 없다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결백성을 주장했습니다. 이제 빌닷은 이런 욥을 향하여 입을 닥치라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응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기들을 어리석은 짐승처럼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힐난합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것이지요. 2. 영구추방으로 끝나는 악인의 운명(18: 5-21) 고난 당하는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빌닷의 전통적인 종교 윤리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세상은 선한 사람이 복을 받고 사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 도덕적 질서가 빈틈 없이 작동하는 윤리적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고통받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욥이 악인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자기 죄를 뉘우치고 행실을 고쳐 주님께 돌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런데도 욥이 이것을 줄기차게 거부합니다. 빌닷은 이러한 욥의 옹고집이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를 뒤집는 죄라고 분개합니다. 그러면서 악인은 필경 망하고 만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서 회개치 않는 욥의 멸망당할 운명을 예단합니다. 빌닷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멸망시키시는 방식을 우주로부터의 영구 축출이라는 비유를 통하여 이야기합니다. 먼저 5-6절을 보세요. \"결국 악한 자의 빛은 꺼지게 마련이고, 그 불꽃도 빛을 잃고 마는 법이다. 그의 집 안을 밝히던 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환하게 비추어 주던 등불도 꺼질 것이다.\" 빛과 등불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누리는 번영과 축복을 상징하는데 악인은 집안의 불빛이 꺼지듯이 누리던 번영과 축복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10절을 보세요. 여기서 빌닷은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도구들, 즉 그물, 함정, 덫(창애), 올가미, 밧줄(동일 줄)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욥과 같은 악인은 제 꾀에 빠져 스스로 그물에 걸리고 함정에 빠진 우둔하고 포악한 사냥꾼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11-14절에서 빌닷은 악인이 결국은 장막, 즉 집에서 쫓겨나 \'무서움의 왕,\' 즉 죽음의 세계를 통치하는 왕, 불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에게로 끌려간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성한 몸으로 죽음의 왕 앞에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13절을 보세요. \"그의 살갗은 성한 곳 없이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 죽을 병이 그의 팔다리를 파먹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욥의 형편을 그대로 적시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독한 악성 피부병을 앓는 욥이 갈 곳은 결국 죽음의 세계 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이제 15-19절에서 빌닷은 악인의 최후가 철저한 망각으로 이어져 그와 관련된 일체의 기억이 말살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집에 남아 있지 않으며, 그가 살던 곳에는 유황이 뿌려질 것이다\"(15절). \"이 땅에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느 거리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17절). \"그의 백성 가운데는, 그의 뒤를 잇는 자손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집안에는 남아 있는 이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19절).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잊혀진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이 악인은 단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과 흔적, 후손들까지도 단절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욥이 10명의 자녀들을 잃어버린 현재를 생각할 때 악인의 후손이 끊어진다는 지적은 다분히 욥을 겨냥한 독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자기 의식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도 악인에 대한 일체의 기억이 소멸된다는 것이지요. 역모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3족을 멸할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흔적을 도말시켰던 조선 시대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 말씀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대역죄를 범한 죄인은 그 개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에 대한 죽음, 그의 기억 일체에 대한 죽음 등으로 이어져 완전멸실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결국 악인은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하는 이 도덕적 우주로부터 영구 추방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20절에 보면 이와 같은 악인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소식을 접한 사방 사람들이 두려워 떨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역모죄에 연루되어 온 족척이 다 죽임을 당하고 마침내 효수되어 거리에 시신을 매달아 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와 똑같은 것이지요. 빌닷의 결론은 21절입니다. \"악한 자의 집안은 반드시 이런 일을 당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사는 곳이 이렇게 되고 말 것이다.\" 3.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 빌닷은 악인의 최후에 대해서 아주 생생하게 회화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왜 일까요? 충격과 공포심을 주어서 욥과 같은 악인으로 하여금 경계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다가 조나단 에드워즈가 1741년에 했던 「성난 하나님의 손 아귀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그 때 에드워즈가 지옥에 대해서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했던지 청중들은 마치 지옥에 직접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 예배당 기둥을 끌어안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옥 형벌에 대해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충격요법을 썼던 것이지요. 빌닷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서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서 욥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같은 악인의 운명은 욥의 운명입니다. 욥은 악인으로서 집에서 쫓겨나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걸렸고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이 온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죽을 병에 걸렸고 결국 죽음의 왕 앞에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당하게 될 터인데, 그와 관련된 일체의 기억과 후손까지도 영영 끊어지고 말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우주로부터의 영구 추방, 아, 얼마나 참혹한 말인지요! 애매한 재앙을 당해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막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요! 악인은 필경 망하고 만다는 이 원리가 100% 옳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욥에게 마구잡이로 적용해도 되는 것인지요? 빌닷은 확실히 교조주의적인 사람입니다. 무궁무진하고 신비롭고 자유롭기 짝이 없는 하나님을 현세의 응보라는 작은 궤짝에 가두어 두고서는 하나님과 우주를 다 알았다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경직된 신관과 인간관을 가질 경우 창기와 세리 같은 죄인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처참하게 망해서 우주로부터 영구추방 당해야 할 대상들일뿐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악인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기 위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의 견해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편협한 윤리적 잣대로 하나님과 인간을 함부로 재단하면서 인간의 윤리적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절대 자유를 인정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