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7장 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찌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찌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으로 6장이 끝났습니다. 본문은 거기에서 계속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만 장, 절 구분은 인간의 작품입니다. 6장은 27절로 끝맺고 28절을 7장 1절로 했으면 문맥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모세가 마냥 한심하게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실 텐데, 따지는 것이 뭐 그리 많습니까? 하지만 모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하나님께 앙탈을 부리겠습니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강도는 아니었습니다. 금품을 강탈해간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직을 사임하라고 협박을 하고 갔습니다. 나중에 그 강도가 잡혔는데, 알고 봤더니 그 교회의 장로가 사주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장로라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목사가 오죽했으면 장로가 그런 방법까지 동원했을까?\"라는 생각도 가능합니다. 물론 장로가 옳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더욱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장로의 입장을 헤아려볼 수는 있습니다. 설마 한 교회의 장로라는 사람이 사소한 이유로 그런 작태를 꾸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저지른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일을 꾸미기 전에 기도도 했을 것이고 일을 추진하면서도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일을 추진했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극한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안타깝고 속상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모세가 잘한 것은 아닙니다만 모세 입장에서는 그만큼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자주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고 엉뚱한(?) 얘기가 나오겠습니까? 성격적으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탁을 받으면 자기 형편이나 처지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알았다고 하고는 나중에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본래 사람은 남에게 부탁을 받았을 경우에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한 법입니다. 들어주지 못하면 괜히 난처하고 미안하게 됩니다. 선뜻 \'알았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그렇게 대답하지 못하면 부탁한 사람만 난처한 것이 아니라 부탁 받은 사람도 난처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예,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모세는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아마 모세도 어지간하면 알았다고 대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따져도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것을 어떻게 합니까? 대통령 선거를 앞두면 후보자들간의 TV 토론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후보자가 말을 더듬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연한 논리로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더듬거린다면 그 사람에게 있는 식견에 관계없이 그것으로 이미 낙제 점수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바로에게 가기는 했는데, 이스라엘을 보내야 할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더듬으며 횡설수설하면 그게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와 마주 앉아서 토론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가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바로를 굴복시키는 것은 모세의 언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바로가 모세에게 굴복하게 되는 것은 모세의 능력이 뛰어난 때문이 아니라 모세에게 일을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7:3-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찌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이라는 얘기는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낼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조정해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게 한 다음에 그것을 빌미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이냐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다는 얘기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부정적인 쪽으로 돌려놓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경배할 마음이 있는 것은 우리가 본래 그 정도로 괜찮은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본성상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께 대해서 적대적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 마음이 강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여러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열 가지 재앙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린 끝에 결국 바로가 항복하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애굽에 열 차례에 걸쳐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시지 않고 \'여러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몇 번째 재앙을 끝으로 자기들이 애굽을 벗어나게 되는지 모르는 셈입니다. 그러면 (아마 서너 번째 재앙부터는) 매 재앙마다 \'혹시 이번인가?\'하고 기대하다가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접었을 것입니다. 우박이 내려서 애굽의 모든 식물이 해를 입었을 때 바로가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그렇지, 바로 지금이다. 이제 우리는 애굽을 벗어나게 된다.\"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가도 마음을 접었을 것이고, 애굽 온 땅에 흑암이 내렸을 적에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갖는 기대와 비슷합니다. 교회에 어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렇지, 이 일만 끝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기대를 늘 갖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때 가장 먼저 내린 재앙은 애굽 온 하수가 피로 변하는 재앙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기 전에 모세를 통하여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16절)\'라고 하시면서 먼저 바로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굴복시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당면 과제는 어디에 가서 짚을 구해오고 어떻게 하면 벽돌 수량을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를 섬기느냐에 대한 문제가 바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간섭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발등에 떨어진 불을 모면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기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에 작용해서 자기들이 만들어야하는 벽돌 수량을 줄여주고 그럭저럭 갈등 없이 살아갈 만한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바로에게도 별로 미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과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지에만 관심을 두십니다. 결국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나일강이 피로 변합니다. 나일강 유역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나일강이 있음으로 해서 애굽의 발달한 물질 문화가 성립할 수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나일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자기들의 생명이고 젖줄이고 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나일강을 저주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애굽 사람들에게 풍요의 원천이던 나일강이 어느 날 갑자기 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밝히셨습니다. 7: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애굽 사람들도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선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 일에 힘쓴다면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더욱 하나님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