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1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어쩌면 바로 입장에서는 애꿎은 봉변일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대체 여호와라는 신이 누구기에 난데없이 나타나서 자기의 노예를 다 내놓으라고 하면서 자기를 핍박한단 말입니까? 여호와라는 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애굽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나타난 다음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남의 나라에서 노예로 지내려면 노예가 될 만한 일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 포로로 잡혔다든지, 빚 때문에 팔리는 경우라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노예가 될 만한 일을 한 것은 고사하고 애굽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구국공신의 후손들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바로의 권익을 침해하는 부당한 명령이 아니라 왜곡되었던 것들을 바로잡으려는 것입니다. 1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찌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내리니 이스라엘의 해방이 임박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바로가 결국 이스라엘을 다 보낼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종으로 부리는 것이 바로에게 견디지 못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장 표현이 특이합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다 \'쫓아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애굽에서 살지 못할 형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설령 이스라엘이 계속 애굽에 머무르고 싶어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할 때의 일입니다. 야근을 하는데 직장 동료가 푸념을 했습니다. \"야, 먹고살기 정말 힘드네.\" 그 얘기를 듣고 제가 거들었습니다. \"먹고살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먹지 않고 사는 것보다는 쉽잖아. 잔말 말고 일 하자고!\"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 믿기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 것은 힘듭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도 힘들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은 더 힘듭니다. 남자가 남자답게 사는 것도 힘들지만 남자가 여자답게 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1:2>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우리 나라가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이 1945년 8월 15일의 일입니다. 만일 1945년 8월 13일이나 14일쯤에 하나님께서 어떤 교회에 나타나서 \"내가 너희 나라를 해방시켜주겠노라. 너희는 가서 일본 사람들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도록 하라.\"라고 하시면, 그 교회 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잃었던 나라를 되찾는다는 감격에 사로잡혀서 은, 금 패물 얘기는 까마득히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이 되는 마당에 귀금속을 욕심 낼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앞두고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애굽을 나설 적에는 그냥 가지 말고 애굽 사람들에게 은, 금 패물을 구하여 그것을 얻어서 가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은 참 구차하게 보입니다. 노예로 지내다가 자유를 얻는 마당에 금붙이, 은붙이를 챙기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문제가 되겠습니까? 당시 애굽 사람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은 금은 보화를 잔뜩 쌓아놓고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홉 번이나 반복된 재앙으로 인해서 핍절할 대로 핍절한 사람들입니다. 애굽 온 하수가 피로 변하기도 했고 사방에 개구리가 들끓기도 했습니다. 이와 파리에게 시달리기도 했고, 가축들은 돌림병이 돌아서 다 죽었습니다. 또 독종이 발하여 고통을 받기도 했습니다. 애굽 개국 이래로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우박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고, 그나마 남은 것은 메뚜기 떼가 다 먹어버렸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캄캄한 암흑 속에서 꼬박 사흘 동안 지옥에서의 공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 뭐가 있다고 은, 금 패물을 얻어가라는 것입니까? 특히 은, 금 패물을 얻어갈 시점에는 애굽의 모든 장자가 다 죽는 열 번째 재앙마저 있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형편이라면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이 하다못해 양이라도 한 마리 보태주고 가는 것이 어울리지, 은, 금 패물을 달라고 하여 얻어 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출애굽\'은 글자 그대로 하면 애굽에서 탈출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수들이 감옥에서 놓여나는 것처럼 구차한 형편에서 자유만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우리가 얻은 구원은 구사일생으로 겨우 목숨만 건지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고 풍성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신앙이 어느 만큼 귀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지옥 형벌을 면제받는 정도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허락하신 모든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은, 금 패물은 애굽 사람들에게 있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당시 그들은 이미 아홉 가지 재앙에 시달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결정적인 재앙 한 가지를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전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은, 금 패물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입니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은, 금 패물이 필요합니다. 이제그것으로 성막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은, 금 패물을 취하라고 하신 것은 성막을 만들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은 그 은, 금 패물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패역을 범한다는 내용이 뒤에 나옵니다. 11:4-5>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찌라 애굽의 모든 장자가 다 죽는 것이 열 번째 재앙입니다. 아홉 가지 재앙을 내리면서도 생명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하나님께서 결국 생명에까지 손을 대셨습니다. 애굽에 속한 사람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심지어는 생축까지도 처음 난 것은 다 죽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왕의 신분으로 살아가는지,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지, 진노 아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는 애굽에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비천한 신분을 나타냅니다. 아마 애굽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수다한 노예가 있었을 텐데, 그들까지도 장자는 다 죽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놓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잔인한 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애굽 사람들의 장자가 다 죽는 것만 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애굽 사람이 아닌 사람들마저 단지 애굽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장자가 다 죽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 사실을 놓고 하나님을 너무 이기적이고 가혹한 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을 천국에 보내는 것은 하나님 마음 대로라고 하지만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해서 \'멀쩡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지 않은 벌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중한 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십시다. 그 병에 걸린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개발되어서 의사가 그 약을 권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병은 무척 위중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새로운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약을 하루에 세 번 시간 맞춰서 복용하십시오.\"라고 했는데, 그 말을 무시하고 약을 먹지 않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 경우에 약을 먹지 않아서 죽은 것은 맞습니다만 약을 먹지 않은 벌로 죽은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죽을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이 밧줄을 던졌는데 밧줄을 못 잡았습니다. 밧줄만 잡으면 살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밧줄을 못 잡은 벌로 죽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얘기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지 않은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지옥에 밀어 넣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지옥에 갈 운명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도 아닌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하느냐?\"라는 얘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애굽 사람들이 아니라 애굽 자체였습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한 전부 다 죽어야 합니다. 다른 민족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사람들까지도 심판 받아 마땅한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애굽에 내린 재앙은 애굽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재앙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재앙이었습니다. 단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애굽은 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장자가 다 죽은 것이 무슨 뜻입니까? 장자는 죽지만 장자 아닌 사람들은 관계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장자가 죽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장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안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망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왕이냐 노예냐, 애굽 사람이냐 애굽 사람이 아니냐, 장자냐 장자가 아니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11:6>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는 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게 됩니다. 대학입학 시험 결과를 발표하면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뉘게 마련입니다. 합격도 아니고 불합격도 아닌 사람들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도 아닌 경우는 없습니다. 둘 중에 어느 한 쪽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본래 이스라엘도 애굽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땅에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모든 잡족들의 장자가 다 죽고, 이스라엘만 보호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 큰 곡성이 있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큰 희열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단견입니다. 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을 때 이스라엘에게는 개도 혀를 움직이지 않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별입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가 다 죽을 때 이스라엘만 따로 보호를 입게 되는데, 따로 보호를 입은 이스라엘의 분위기를 성경은 \'개도 혀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런 표현은 우리가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생소해할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기쁨이나 감격을 설명하는 표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굉장히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하는 얘기로 \'바짝 얼었다\'고 하는 것이 어울립니다. 다음 장에 나올 내용입니다만 당시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뿌리게 됩니다. 그러면 집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할 것입니다. 또 사방에서는 장자를 잃은 슬픔으로 인한 곡성이 들려옵니다. 남들은 다 죽는데 아무리 혼자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싱글거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심각해야 합니다. 애굽 사람들만 장자가 죽어서 심각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원인 모를 심각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구원 얻은 감격으로 들뜬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진지한 분위기로 자기들의 앞날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부교역자 시절의 일입니다. 중·고등부 수련회를 인도할 때마다 항상 하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박3일의 수련회 일정 속에 하루에 한 시간씩 침묵훈련을 넣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말 한 마디 안 하고 가만히 있는 훈련입니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전부 다 지겨워서 쩔쩔 맵니다. 지겨우면 지겨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갖은 공상을 하게 마련입니다. 아무것도 못하게 하면 할 수 있는 것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3일 째 되는 날, 제가 얘기합니다. \"침묵훈련 해보니까 어때? 굉장히 지겹지? 이제 또 한 시간 동안 지겨워야 한다. 침묵훈련을 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잡생각을 다 할 텐데, 이왕 생각하는 것 기왕이면 바람직한 생각도 좀 해봐라.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뿐인데 쓸데없는 잡생각만 하면서 한 시간 보내지 말고 쓸 만한 생각도 좀 해보자. 지금까지는 어떻게 지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집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생각해보고 또 이왕 생각하는 김에 예수 생각도 좀 해보자. 내 신앙에 문제점이 있으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보내보자.\" 제가 그 훈련을 하는 이유가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을 하는 동안에는 생각이 방해받습니다. 우리에게는 때로 침묵이 필요합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바로 그렇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공포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서로 모여 앉아서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자신들의 앞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신 여호와라는 신이 어떤 신인지, 그런 간섭을 받고 있는 자기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 아닌 사람들이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큰 통곡이 있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재앙을 모면한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결의가 있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