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2장


출애굽기 12장





12: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출애굽 전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말씀하신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이 애굽 땅임을 굳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애굽 땅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땅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본래 심판 받아야 할 형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부터 복 받을 일만 했고 애굽 사람들은 처음부터 심판 받을 일만 벌인 것이 아니라 본래 같은 곳에 기반을 두고 살고 있는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따로 부르셨습니다.


12: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지금까지 사용하던 달력을 무시하고 애굽에서 벗어나는 날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애굽의 노예로 지내던 지나간 날들에 연연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 날부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계없습니다.
모름지기 예수를 믿었으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시작이 구약에서는 유월절입니다.
히브리력으로 1월 14일입니다.
첨언하면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속죄일은 7월 10일이고, 가장 성대하게 지키는 절기인 초막절은 7월 15일입니다.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유월절에는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데, 먹는 모습이 조금 특이합니다.
본래 히브리 사람들은 비스듬하게 누워서 식사를 하는데 유월절 음식은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습니다.
마치 군인들이 전투 식량을 먹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유월절 음식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었으면 배부르다며 배만 두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애굽을 떠나서 새로운 세계로 가야 합니다.
그 일이 어느 만큼 시급하고 신나는 일인지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급히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문제는 뒤로 미루거나 망설일 틈이 없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다는 얘기는 \"나는 예수 믿는다, 이제는 내 할 일 다 했다.\"가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생활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12:21-22>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이 유월절 예식의 전부는 아닙니다.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양의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애굽의 모든 장자를 멸하실 때에 양의 피가 뿌려진 집은 들어가지 않고 그냥 넘어갈 것입니다.
유월절이라는 이름이 거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자로는 넘을 유(踰) 넘을 월(越)을 씁니다.
넘어간다는 얘기입니다.
또 영어로는 passover라고 합니다.
재앙이 내리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하여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바르는 모습을 애굽 사람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안에서 양고기를 먹는지 개고기를 먹는지, 쓴 나물을 먹는지 상추쌈을 먹는지는 몰라도 집밖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애굽에서 섬기는 신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뿌리는 것도 자기네가 우상을 섬기는 의식과 흡사한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아하! 저 사람들은 자기네 신을 저렇게 섬기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예불을 드리는 것과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같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절에 가는 것과 교회 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자기 취향대로 신을 섬기는 동등한 행위인 줄 압니다.
오직 우리에게만 생명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릅니다.


각설하고 열 번째 재앙을 앞두고 이스라엘은 자기들 집의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뿌렸습니다.
지금까지 무려 아홉 번이나 재앙이 있었는데 그 아홉 번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앙이 알아서 피해갔습니다.
그런데 유독 열 번째 재앙만은 달랐습니다.

첫 번째 재앙부터 아혼 번째까지의 재앙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징계하시기 위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열 번째, 장자들이 다 죽는 재앙은 애굽을 징계하기 위한 재앙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는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알아서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나타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천국에 가려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옥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천국에 가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해서 지옥에 가려면 열심히 예수를 박해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갑니다.
출애굽 직전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양의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만 하나님의 심판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보호가 나뉘는 시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입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이 유월절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양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의 재앙에서부터 벗어난 다음에 그 날을 달력의 첫날로 삼아서 본격적으로 먼길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앙을 \'예수를 믿는다, 안 믿는다\'로만 구별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지, 영원한 멸망에 놓이게 될지가 거기에서 구분됩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것 자체가 곧 신앙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되 어느 만큼 믿는지도 따져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하나님의 진노만 모면하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빨리 가나안을 향하여 가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