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장

출애굽기 8장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바로가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자기 노예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과 바로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 내내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된 본분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비단 바로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라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당연히 바로입니다.
그 바로는 결국 하나님께 심판 받았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은 우리 외부에 있는 그 어떤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입니다.
우리의 죄가 아니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바로를 심판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있는 죄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 심판 받을 죄와 타협하여 자기 안에서 죄를 키우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장 처음 내린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었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애굽 사방 천지가 개구리로 들끓게 됩니다.
개구리가 침상을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떡 반죽 그릇이나 화덕에까지 들어갈 정도로 많은 것은 분명히 재앙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꼭 개구리라야 재앙인 것은 아닙니다.
쥐가 그렇게 많아져도 재앙이고 까마귀가 그만큼 많이 있어도 재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개구리를 택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에는 \'헤크트\'라는, 개구리 모양의 신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애굽은 나일강 때문에 시작된 나라입니다.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그 일대가 비옥한 옥토가 됩니다.
강이 범람한다고 하면 우리는 물난리를 먼저 연상합니다만 나일강 일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입니다.
강이 범람하면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기게 되고, 물웅덩이가 생기면 거기에 개구리가 번식합니다.
사방에서 개구리가 울어대는 것이 애굽 사람들에게는 풍요를 약속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애굽 사람들은 \"올해도 풍년이구나. 우리가 섬기는 신이 또 우리에게 풍년을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개구리 소리만 들으면 자기들이 섬기는 신 헤크트를 자랑하던 애굽을 개구리를 통해서 징계하셨습니다.


8:6-7>
아론이 팔을 애굽 물들 위에 펴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술객들도 자기 술법대로 이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내린 개구리 재앙으로 애굽 천지가 개구리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애굽의 술객들은 \'그 정도는 우리도 한다\'라는 식으로 자기들도 개구리를 불러왔습니다.

이 얘기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얘기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는 중입니다.
애굽 사방이 개구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개구리 때문에 골치 아픈데, 없애지는 못할 망정 자기들도 덩달아서 개구리를 동원하면 어떻게 하자는 얘기입니까?

술객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대적할 힘이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들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개구리를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인데, 하나님께서 있게 하신 것을 무슨 수로 없앤다는 얘기입니까?
고작 한다는 일이 개구리를 더 불러오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힘은 없으면서 하나님께 굴복하기는 싫은 것입니다.

천국을 다스리는 분은 당연히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누가 통치합니까?
하나님께서 천국을 다스리는 것처럼 지옥은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단도 장차 지옥에서 심판 받을 텐데, 사단이 무슨 수로 지옥을 통치합니까?
지옥도 천국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사단을 하나님과 거의 대등한 힘이 있는 존재로 묘사한 대중 매체(오맨 등의 영화가 대표적이다)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천국의 대표, 사단의 지옥의 대표로 설정하여 둘 사이의 대결을 그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단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님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능력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까지 사단의 활동을 묵인하신 것입니다.
사단 역시 하나님의 권능 앞에 굴복 해야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흉내는 낼지언정 하나님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단이 속성이 술객들이 개구리를 없애는 대신 더 불러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견디다 못한 바로가 개구리들을 전부 없애주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다며 결국 항복을 선언했습니다(8절).
그런데 바로의 얘기가 이상합니다.
언제 개구리를 없애면 좋겠느냐는 모세의 얘기에 내일 없애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9-10절).
바로는 개구리의 등쌀을 견디다 못하여 항복하는 중입니다.
개구리의 \'개\'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없애달라고 하지 않고 내일 없애달라고 했습니다.
개구리들과 더불어 하루를 더 지낼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때 바로의 얘기에 대해서 모세는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10절)\'라고 대답했습니다.
내일 개구리를 없애달라는 바로의 얘기대로 해서 바로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오직 참 신인 것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얘기에서 바로의 속셈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자기가 얘기한 시점에 개구리가 없어지는지를 통해서 개구리들이 과연 모세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확인해 보려는 것입니다.
개구리로 인하여 견디지 못할 지경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내었습니다.

하여간 개구리를 없애달라는 바로의 얘기처럼 사방에서 들끓던 개구리들이 전부 죽었습니다.
집과 마당과 밭이 온통 죽은 개구리로 뒤덮였습니다.
사람들이 개구리를 모아 무더기를 쌓으니 이번에는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숨 돌린 바로는 이스라엘을 내보내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맙니다.

이때 개구리들이 전부 나일 하수로 돌아가고 모든 일이 감쪽같이 처음으로 돌아갔으면 아마 바로는 한순간 악몽을 꾼 것 같았을 것입니다.
\"와! 그때 정말 끔찍했다.\"라고 하며 그때 생각만 하면 몸서리를 칠 것입니다.
하지만 개구리가 죽어서 악취를 풍기는 것은 얘기가 다릅니다.
사방에서 뛰어다니는 개구리들은 없어졌지만 개구리로 인한 재앙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개구리가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바꾸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인간의 본성은 이만큼 완악합니다.

세 번째로 이 재앙이 임합니다.
땅의 모든 티끌이 이로 변한 것입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것이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물을 저주한 것이라면 땅의 모든 티끌이 이로 변한 것은 땅을 저주하신 사건입니다.

애굽은 우상들의 총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별의별 우상이 다 있습니다.
크눔, 헤크트, 갭, 아피스, 이시스, 코프라, 아몬, 아누키스, 아누비스, 바스레트, 슈, 호루스, 콘수, 몬투, 오리시스, 세크멘트, 세트, 토트, 사티스, 소카리스, 셀케트, 세베크, 네프티스 등이 전부 애굽에서 섬기던 우상 이름입니다.

이 중에 땅의 신이 갭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갭이 자기들을 위해서 땅에서부터 풍성한 수확물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갭이 자기들을 위해서 풍성한 소출을 낸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괴롭히는 이를 낸 셈입니다.

개구리 재앙 때는 애굽이 술객들도 비슷하게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땅의 티끌로 이를 만드는 재앙은 흉내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일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았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19절).
하지만 바로는 그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께 거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것이 죄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네 번째 임한 재앙이 파리 재앙입니다.
애굽 사람의 모든 집에 파리 떼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사는 곳이 고센이었는데, 고센 지방에는 파리 떼가 없었습니다.
파리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지의 여부가 곧 애굽과 이스라엘에 대한 구별이었습니다.
아마 파리에 시달리는 애굽 사람들은 그런 고통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차 신자와 불신자에게 나타나는 구별은 파리 떼 정도가 아닙니다.
파리 떼로 인한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재앙이 불신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불신자들은 출애굽 직전의 애굽 사람들을 오히려 부러워할 것입니다.


8: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견디다 못한 바로가 한 번 더 항복을 선언합니다.
그런데 바로의 얘기가 이상합니다.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되, \'이 땅\'에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행위는 인정하되 이스라엘의 주인은 여전히 자기라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요즘 말로 바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 알았어. 정 교회에 가고 싶으면 가서 예배만 드리고 와. 예배만 드리고 네가 사는 모습은 바꾸지 마.\"라는 뜻입니다.

이런 바로의 얘기에 모세가 동의할 리 없습니다.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한 벌 더 물러났습니다.


8:28>
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주변에서 간혹 \'교회 다니는 것은 좋은데 너무 깊이는 빠지지 말아라\'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교회에 너무 깊이 빠지면 안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옛날 바로의 후손들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좋은데 서울대학을 수석으로 합격할 만큼 잘하는 것은 곤란하다\' \'돈이 많은 것은 좋은데 은행에서 줄을 설 정도로 많은 것은 곤란하다\'라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교회에 다니는 것은 좋은데 너무 열심히 다니는 것은 곤란하다\'라는 말은 설득력을 갖습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얘기에서 설득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논리가 죄로 오염된 탓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고 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믿어도 상관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끔 교회에 나가는 것이 인격 수양에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충성을 기울여도 그것으로 모자랍니다.
우리가 말하는 일체의 헌신은 더 이상 헌신일 수 없습니다.
단언하거니와 우리는 제대로 믿지 못해서 송구스런 사람들이지, 혹시 너무 잘 믿어서 잘못될 것을 염려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할지라도 발목은 잡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 이 세상의 술책이 바로를 통하여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라는 말로 나타났습니다.

이때 바로는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라는 말과 함께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당시의 바로는 사람이 아닌 신으로 인정되는 존재였습니다.
바로를 가리켜서 태양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는 얘기가 다릅니다.
신이 무엇이 모자라서 기도를 해야 하고, 신이 누구로부터 자비를 입어야 합니까?
결국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바로의 얘기는 자기의 무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입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그런 지경이 되었으면서도 이스라엘을 옭아매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더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때문에 재앙을 당하면서도 그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이 땅에서 희생을 드리라\'고 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의 속성이 그만큼 끈질깁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죄는 절대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2차 대전 때의 일입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전쟁의 승패는 판가름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군이 그 즉시 항복한 것은 아닙니다.
항복 문서에 조인할 때까지 저항을 계속 했습니다.

바로의 처지가 그와 같습니다.
자기 앞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이지만 그 멸망을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이스라엘을 잡아놓기 위해서 발버둥을 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