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장


출애굽기 18장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가족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모세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때의 모세는 20세 이상의 남자만도 60만이 넘는 이스라엘을 영솔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일사불란하게 모세의 말대로 움직인다고 해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이스라엘은 핑계만 있으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모세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가족을 만났으니 가족으로 인해 얻는 위로가 상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얘기는 전혀 엉뚱한 얘기입니다.


18:8>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의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


모세가 가장 먼저 한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한다는 얘기는 말하는 내용이 그 사람의 머리에 가득 차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가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미국에 다녀오는 것이 별로 얘깃거리가 아닙니다만 예전에는 미국에 다녀온 것이 상당한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미국에 갔다 왔으니 그 목사는 기회만 있으면 미국 얘기를 했습니다.

그 목사와 신학을 같이 공부한 동기들끼리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배 순서를 정하는데 누군가 그 목사는 순서에 넣지 말자고 했습니다.
설교를 맡기면 보나마나 설교 중에 미국 갔다온 얘기를 할 테고, 기도를 맡겨도 기도 중에 미국 갔다온 얘기를 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맡기지 않을 수가 없어서 축도를 맡겼습니다.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그 목사가 축도를 할 차례가 되어서 축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내가 LA에 있을 적에도 함께 하셨던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장인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를 얘기했다는 것은 모세의 모든 관심이 거기에만 있었다는 뜻입니다.


18:10-11>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히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모세의 얘기를 들은 이드로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모세의 얘기를 듣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드로는 미디안 제사장입니다.
그런 이드로조차 모세의 얘기를 듣고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신봉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별로 얘깃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에 빠졌던 사람이 교회 다니기 시작한 것은 얘깃거리가 됩니다.
하물며 교회로 치면 목사에 해당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장로가 교회 다니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얘깃거리가 됩니다.
이드로가 하나님을 고백했다는 얘기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설마 모세의 한두 마디에 이드로가 얼른 하나님을 고백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드로가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반복해서 얘기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아마 모세는 입에 거품을 물고 얘기했을 거입니다.
그리고 이드로는 ‘사위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교회 얘기와 예수 얘기를 해야 합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우리 얘기를 들은 사람이 “그래? 그럼 나도 교회 한 번 가보자.”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 입에서 교회 얘기나 예수 얘기가 안 나오면 자기 머리 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만큼 신앙이 ‘나이롱’이라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이드로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모세는 일일이 재판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 명이 넘었으니 5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300만입니다.
그런 숫자가 함께 지내려면 시빗거리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모세가 그 모든 일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렸습니다.
모세는 모세대로 피곤하고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진이 빠질 일입니다.


18:17-18>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드로가 모세에게 백성들과 짐을 나눌 것을 권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 혼자 그 일을 다 하는 것은 무리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모세를 도와야 한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드로가 모세에게 “이보게 사위, 왜 그리 몸을 혹사시키나? 내 딸을 과부 만들 셈인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와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할 것’을 걱정했습니다.
모세 혼자 일을 하는 것이 모세에게 무리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에게도 손해라는 것입니다.

목사의 짐이 너무 큰 폐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의 신앙이 자라지 않는 폐단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편한 직장’으로 목회를 택한 목사는 없습니다.
목사는 어차피 고생을 각오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죄다 수동적인 입장에 있다 보면 교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어 함께 자랄 수 있는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18:21>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모세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할 것이 아니라 중간에 사람을 세우라는 얘기입니다.
어떤 사람을 세우느냐 하면 ‘재덕이 겸전한 사람’입니다.
재승덕(才勝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주가 덕보다 앞선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재주가 많으면 칭찬 받습니다만 덕보다 앞선 재주는 오히려 한탄의 대상입니다.
재(才)와 덕(德)은 늘 같이 가야 합니다.
재주만 있고 덕이 없거나 재주는 없고 덕만 있는 사람은 둘 다 골치 아픕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드로가 ‘재덕이 겸전한 자’를 얘기한 것은 상당히 타당합니다.

그러면 ‘재덕이 겸전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얘기로 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아울러 합격점을 받는 사람이 재덕이 겸전한 사람입니다.

온갖 종교적인 열심은 다 부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이 안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때는 다시없이 좋은 사람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게으른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 다 재덕이 겸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8:23>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인가가 필요합니다.
사람들 생각으로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이드로의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덕이 겸전한 자를 중간에 세운다는 얘기가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얘기가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까지는 말이 되는데,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안히 가는 백성’들은 재판을 받으러 왔던 백성들입니다.
재판에는 원고와 피고가 있게 마련입니다.
서로의 이해가 상충해서 재판을 청구했는데 그 결과를 듣고 모든 백성들이 평안하게 가는 것이 가능합니까?
원고가 평안하면 피고는 근심해야 하고 피고가 평안하면 원고가 근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아울러 평안하게 되는 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모습이 없습니다만 교회 공동체에는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있으면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쟁을 이유로 사이가 멀어지는 것은 세상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교회에서는 그 모든 분쟁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샬롬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