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9장
출애굽기 19장
19장에는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19: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야곱과 이스라엘은 동일 인물입니다.
본래 야곱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갖는 내용은 판이합니다.
야곱은 육신을 좇아 살아가는 인생을 나타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지금 우리에게 고스란히 옮길 수 있습니다.
교회 있을 적에는 교인인 것 같은데 교회만 벗어나면 전혀 교회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19:4-6>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게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 쪽인지 세상 쪽인지 긴가민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부터 어떻게 인도했는지 알지? 너희가 앞으로 말씀 안에서 잘 살면 내가 너희를 제사장 나라로 삼겠다.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자기 주변에 하나님의 사역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부 모아놓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에게 얘기하면 모세가 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설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모세는 천사가 아닙니다.
신분으로는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잘 압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설명하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욕심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예수가 누구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영생이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곳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차여차하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삼는다고 했다. 너희들,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했더니 백성들이 흔쾌히 OK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전부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모세는 다시 그 내용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 “하나님, 백성들이 전부 알았다고 했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19:10-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옷을 빨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린다면 당연히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 사람 사이에서도 약속이 있으면 준비하고 나가지, 그냥 가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들은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로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에게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예배에 지각하는 사람은 별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작 직전에 허겁지겁 달려와서 “저, 안 늦었어요.”라고 얘기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정돈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신부 대기실에 있는 신부가 생애에서 가장 예쁜 자태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예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예배를 그렇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제 삼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삼일이 참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셨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이삭 데리고 모리아산까지 삼일 길을 갔습니다.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 흑암이 내린 기간도 삼일이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삼일만에 말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사흘’은 단지 시간을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담겨있는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찌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구약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만큼 무서운 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죄인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죽으니까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만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합당한 방법과 절차가 필요합니다.
25장부터 성막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그런 때문입니다.
19:16>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제 삼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현현에 대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공포였습니다.
6․25를 체험한 사람은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귓전을 울리는 총소리와 화약 냄새를 상상만 해도 몸서리를 칠 것입니다.
또 무시무시한 재앙이나 기근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재앙이나 기근을 무서워할 것입니다.
훈련병 시절의 일입니다.
영화에서나 듣던 총소리를 실제로 들었습니다.
총소리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만화에서는 총소리를 ‘탕’이라는 의성어로 표현하는데 실제로 들어보니까 총소리는 ‘탕’이 아니고 ‘꽝’이었습니다.
총소리 한 방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습니다.
하물며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그런 소리를 듣게 되면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일입니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누군가 죽고 있다는 뜻이고 어쩌면 조만간 자기 차례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 앞에 노출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전쟁이 있다고 해서 전부 다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전염병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전염병에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피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피할 수 없습니다.
19: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申飭)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신칙한다’는 얘기는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앞에 모든 백성들이 다 떨 적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이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뵈면 죽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얘기는 하나님의 위엄을 위한 얘기가 아니라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또 하십니다.
19: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누가 감히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신신당부하십니다. - “너희들은 죄인이다. 죄인인 상태로는 날 만날 수 없다. 죄 문제를 해결한 다음이라야 나를 만날 수 있다. 부디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하거라!”
하나님께서 이런 내용을 반복해서 말씀하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한 번 말하면 다 알아들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쓸데없는 잔소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이 정도로 조심스러운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경건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각설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복적으로 경고하심에 따라 산에 올라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산에는 올라오지 않았는데 산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산 위에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더니 산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만큼 부패한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날개로 애굽에서부터 인도하시고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에 대한 제사장 나라로 부르시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