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1장

출애굽기 31장





31장에는 두 가지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 사람으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택했다는 내용(1-11절)과 안식일을 지키라는 내용(12-1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 기능공으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스무 살 넘는 남자만 60만3,550명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택해서 성막 만드는 일을 맡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느냐?’라는 자랑이 있으면 안 됩니다.
하고많은 사람 가운데 자기들에게 기회를 주셨다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막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없었으면 하나님도 속수무책이었을 텐데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있어서 다행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그 숱한 사람들 가운데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얘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드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 일을 하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마치 하나님을 도와드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것은 곤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낭패를 겪을 만큼 무능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 없이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인데, 어차피 이루어질 일에 우리를 참석시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국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은 악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명제 앞에서 인간의 공로를 일체 부인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무런 불편이 없으시다. 단지 어차피 이루어질 일에 우리를 동참시켜주시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럼 나는 안 해도 되겠네?”라는 반응을 먼저 보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기준으로는 100% 하나님의 영광이고 우리를 돌아보면 100% 우리의 책임입니다.
사실 이런 얘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50%이고 우리의 책임이 50%라고 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이 90%, 우리의 책임이 10%라고 해야 100%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일을 이루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할 때는 자기 책임으로 알아야 합니다.

설교에 대한 얘기에서 이런 예가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교인들이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받으면 목사의 언변이 뛰어나다고 하지 않고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교시간 내내 교인들이 다 졸면 ‘말씀에 능력이 없다’고 하지 않고 ‘설교를 죽 쒔다’고 합니다.
잘한 것은 말씀에 능력이 있는 것이고 못한 것은 설교를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영광이 나타나되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전적으로 자기 책임인 것처럼 감당해야 합니다.

12-17절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1-11절에서 성막을 만들라는 얘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은 문맥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얘기는 출애굽기에 모두 네 차례 나옵니다.
만나를 내리실 적에(16:23), 십계명을 말씀하실 적에(20:8-1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설계도를 주실 적에(31:12-17) 그리고 하나님의 분부대로 성막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할 적에(35:1-3)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는 말씀을 하시는 중입니다.
성막을 만들되 여차여차하게 만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중간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막을 만드는 일조차도 안식일을 범할 수 있는 핑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상징하는 거룩한 처소입니다.
그런 성막을 만드는 일이라면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고귀한 일일 것입니다.
명분으로 따지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안식일을 지키는 테두리 안에서 행해져야 했습니다.

성막을 만드느라고 안식일을 범한다면 핑계는 그럴 듯합니다.
“내가 내 욕심을 챙기느라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얼른 성막을 만들어야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섬길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하면 반박의 여지가 없기도 합니다.
적어도 만나를 얻기 위하여 안식일을 범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제 아무리 중요하게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안식일을 범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 사회의 발달과 함께 요즘은 ‘주일 성수’에 대한 개념이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주일에는 돈을 쓰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금전 지출은 곧 세속적인 일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주일 예배를 빼먹지 않는 것을 놓고 주일 성수를 했다고도 합니다.
주일 성수는 그렇게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렸느냐, 말았느냐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일 성수라는 말 그대로 주일을 어느 만큼 거룩하게 지켰느냐로 따지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안식일은 성막을 만드는 동안에도 지켜야 했습니다.
우리 소견에 제 아무리 합당하게 보이는 사유라고 해도 주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안식일은 죄를 범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면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첫 걸음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유대인들은 불이 꺼져 있으면 켜지 않고 켜져 있으면 끄지 않습니다.
불을 켜거나 끄는 것도 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기 전에 불도 미리 켜두거나 꺼둡니다.
혹시 깜빡 잊고 불을 켜지 않았으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에게 불을 켜달라고 부탁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직접 불을 켜지는 않습니다.

샤바트(Sabbath)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단추도 누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층마다 서도록 조작해놓은 엘리베이터를 말합니다.
성질 급한 사람이 고층에 가면서 그런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마 속이 터져서 미칠 것입니다.

하여간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열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답답하다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캄캄한 방안에서 불도 켜지 못한 채 앉아있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빈정거리기에 앞서 그들의 열심은 본받아야 합니다.
안식일이 무슨 날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그들도 그 정도의 맹목적인 열심을 보이는데 주일을 통하여 안식일이 완성된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주일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가리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16-17절).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매개로 하여 연결된 사이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자기들의 사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귀결되는 문제였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죽이라고 하셨습니다(15절).
‘하나님이 어느 만큼 무서운 분이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담겨 있는 의미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요컨대 안식일은 일종의 상징입니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는 팔짱을 끼고 퇴장합니다.
남녀가 같이 간다고 해서 꼭 팔짱을 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마친 신부가 신랑의 팔짱을 끼기를 거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팔짱을 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안식일이 그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 얘기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신앙을 지킨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오늘 당장은 그 얘기가 맞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가 꾸준히 신앙을 지키다보면 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 자기가 신앙을 지킨 것이 아니라 신앙이 자기를 지켰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신앙을 지켜드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매개로 해서 우리를 지켜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