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장
출애굽기 32장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산밑에 있던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대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작태를 범할 수 있는지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스라엘이 하는 얘기가 우습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상이 필요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들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들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신을 만드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자수성가해서 금의환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려 430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종노릇을 하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금이 있겠습니까?
정상적인 경우라면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금붙이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금 패물이 있게 하셨습니다(출11:1-2, 출12:35-36).
출애굽 직전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 사람들로부터 취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동안 밀린 임금을 받아가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면 시내산에 가서 성막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재료를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뜻에 아랑곳없이 자기들의 욕심대로 행했습니다.
혹시 우리에게 시간이 있거나 물질이 있으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이루는데 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각자 확인해야 합니다.
32:4-5>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스라엘의 발상이 참 특이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는 ‘아무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을 계속 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는 여호와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금송아지가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여호와의 절일’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적어도 그들은 자기네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바로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뜻으로 금송아지를 섬기는 작태를 벌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종종 ‘십자가를 진다’는 표현을 씁니다.
물론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휘두르면서 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각자의 신앙을 가지고 모인 곳입니다.
적어도 교회에 모인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교회 분위기를 저해하거나 교회를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교회마다 분란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 분란이 있다는 얘기는 의도적으로 교회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그렇게 해야 교회가 바로 서고, 그렇게 해야 교회 부흥에 도움이 된다 싶어서 열심히 십자가를 휘두르는 것입니다.
3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너의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11절 이하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모세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면 애굽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라는 신이 자기 백성을 챙긴답시고 애굽에서 꺼내기는 했는데, 정작 가나안까지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전부 중간에 죽여버렸다고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모세의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유는 가나안까지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지 못하면 이스라엘이 고생하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신과도 관계 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이스라엘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셔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32: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았을 때의 반응입니다.
모세가 어느 만큼 대노하였던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돌판을 집어던져서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성경을 집어던지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성경책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돌판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만큼 격노했던 것입니다.
모세도 시쳇말로 성질깨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에는 조금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모세는 이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는 것이 민수기의 기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가 성경에 등장할 때부터 얌전하고 온유한 모습이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때 모세는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으면서 꾸준히 다듬어진 것입니다.
나중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그 인격이 다듬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 신앙이 있으면 그 신앙은 그 사람의 인격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하루 24시간 가운데서 일정한 시간을 구별하여 종교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시간을 구별하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것이 신앙의 표현인 것은 맞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그나마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종교 행위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이 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주님을 닮자고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