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이상/겔1:1-3



에스겔 1장에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상(異像)을 본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다왕 여호야긴 왕(B.C. 597)때에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의 신세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상을 보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큰 능력을 힘입게 되었습니다.



1. 포로가 됨

(겔 1:1)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그발 강가’는 일반적으로 유프라테스 강에 합류하는 거대한 운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상(異像)을 보이신 때는 30년 4월 5일 이었습니다. 그때는 요시야 왕(B.C.640-609) 제18년으로부터 30년 되는 해로서 B.C. 593년 6월 혹은 7월 5일로 추정됩니다. 에스겔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곳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살고 있던 그발 강가입니다. 에스겔이 스스로를 ‘사로잡힌 자 중에’ 있었다는 것은 자신이 포로의 한 사람으로 있던 속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으시고 좌절과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에스겔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소망의 위로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좌절과 낙망으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 위로와 은총을 베푸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뻗칠 때 우리는 귀를 기울여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사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2. 이상을 봄

(겔 1:1)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이상’의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의 여러 계시의 수단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늘이 열리며’라는 표현(마3:16;요1:51;행7:56;;계4:1)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성도의 영적 눈을 밝히자 천사의 비밀에 속한 초월적 사실을 특별히 보게 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Calvin).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여시며 에스겔에게 이상(異像)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상을 보이시기 위해 그의 영안을 여셨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영안을 열어서 하늘의 비밀에 속한 이상을 보이십니다. 창 21장에 보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혀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 이스마엘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 주기 전에는 샘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쳐 쓰려져 방성대곡하고 있었습니다.

왕하 6장에 보면,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도단성을 에워싸고 있을 때에 사환이 그 사실을 보고 무서워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기도하여 사환의 눈을 열어 보니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몰라 오실 때에 신기한 장면이 어떤 큰 공연처럼 전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위에 임하면서 소리가 났습니다.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담대히 죽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환난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을 도우시려고 우둔한 인간이 깨달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호의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자들은 생각이나 삶의 태도가 당연히 비범할 뿐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큰 능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당당히 큰 믿음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다는 차원의 세계에 희망을 두고 담대하게 살면서 승리하는 삶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결국은 갈대아 왕 다리오도 저들의 신앙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즈음 7, 8월 더위를 식힐 만한 시원한 이야기 꺼리로 TV에는 온통 귀신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무서워서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서 시원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무서운 장면을 보면 이후에도 그 생각만 하면 무섭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고난과 고통 중에서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 그리고 큰 이상 즉 비전으로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워주시면 당장에라도 실패를 딛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안창호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3. 권능을 받음

(겔 1:3)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그는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한 것과 여호와의 권능(權能)이 그 위에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과 ‘여호와의 권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그에게 계시되었습니다(창15:1;말1:1;눅3:2).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여호와의 권능을 얻게 됩니다.

‘권능’(די, 야드)이란 원어 상 ‘손’(the hand)을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의 권능, 능력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능력을 의미할 때 ‘여호와의 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은 자는 놀라운 능력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은 놀라운 이상(異像)을 보게 되는데,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그에게 임하여 그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뼈가 가득한 곳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해골 떼의 이상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케 하므로 그 뼈들을 살게 합니다. 에스겔은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해골 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일어나 걸어 뛰게 하는 능력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에스겔’이란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다’, ‘하나님께서 단련시키다’의 뜻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으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게 됩니다. 이는 그의 이름과 사역의 특성과 잘 어울립니다.

‘다시 뛰는 한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좌절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다시 뛸 것인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여기에 말씀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계시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보지 않고 듣지도 못하는 자가 어떻게 무슨 근거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강력한 힘은 소망의 메세지를 들을 때에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삼상 3장 1절에 보면 당사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을 입게 되었다. 모든 백성들은 그를 바라보았고 그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을 헬라어에서는 ‘카리스마’(καρισμα)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영어에 ‘Charismatic’이라는 단어는 독재자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정치적 용어가 되었습니다. 이 단어 ‘Charismatic’의 뜻은 신의 은총, 천부의 재능 특히 대중의 지지나 후원을 받을 만한 힘 또는 권위를 말합니다. 이런 계시를 받은 사람은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적인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엘빈 토플러(Elvin Toffler)는 가치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종래에는 힘에서 권력으로, 이제는 권력에서 정보로 그 가치를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캐럽 여론 조사기관에 따르면 요즈음 한국 사람들은 대통령 권한 이상의 리더십을 필요로 원한다고 합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미국인들은 영웅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미국 개척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에서 신대륙에 큰 꿈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꿈을 이룬 사람들을 존경하고 소개하고 그 정신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American Dream’을 성취했다고 합니다. 뉴욕 허드슨강 초입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새로 오는 이민자에게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소망, 희망을 가득 채워 가기 바랍니다. 희망이 있다면 아직 우리는 패배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다면 소망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결 론

한편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상을 본 시점이 ‘그 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낙망의 처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이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상은 어떤 인간적인 성격이나 노력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으로 위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 사건입니다. 절대 절명의 늪에서 신적 이상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고통의 순간에도 넘어지지 않게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겔 1:2,3)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이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권능을 가진 자는 ‘여호와의 손’이 함께 하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상을 본 에스겔은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구원과 생명의 메세지가 되었습니다.
[경배 찬양]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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