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종된 우리들의 사명 (겔2:6-7/ 3:17-19? 4:9-12)
주님의 종된 우리들의 사명/겔2:6-7,3:17-19,4:9-12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2:6-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3:17)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에 먹되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겔4:9-12)
하나님은 성서에서 우리들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양으로, 포도나무로, 백성으로, 제자로, 자녀로, 종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서 자녀와 종은 그 성격이 너무나도 상반되어서 우리가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우리의 훌륭한 자격을 설명하시기 위하여 자녀로 비유하셨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사명을 상징하기 위하여서는 종으로 비유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가진 복된 자격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들 딸과 같은 존재이고 우리가 주를 위하여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종처럼 감당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능 면에서는 모두 주님의 종입니다.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들은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또한 주님의 종과 같이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고 충성하고 헌신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봉독한 에스겔서의 말씀은 우리들이 종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는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을 때에 몇가지 특별한 사명을 환상과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 사명이 본문 에스겔서 2장에서 4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아침에 \"주님의 종된 우리들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시간 말씀을 받기 위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믿음의 귀를 기울이실 때에 성령께서 충만한 감동을 허락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1. 힘든 세상 속에 함께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2:6)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도 강팍하고 악이 득세하여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너무도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세상의 사람들이 가시와 찔레와 같이 찌르는 존재이고 전갈처럼 쏘아서 우리들을 낙심케 하고 아프게 하고 좌절하게 하는 곳이 세상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이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그들이 던지는 한 마디의 말이 전갈같이 쏘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고 그들 속에서 귀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살며 그들이 전갈같이 쏘며 가시같이 찌르더라도 그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그들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사명과 자신을 희생하고 녹여 어둠을 비치는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느 종교는 죄악된 세상을 떠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리라고 행하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때로는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믿음으로 무장하고 교회에 가서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죄악을 털어 버리지만 곧바로 세상으로 돌아가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성도들의 아름다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도 더 특별히 사랑하는 세 명의 제자를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그 얼굴과 옷이 광채가 나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담소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세명의 제자들은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경에 도취되어서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 초막 셋을 짓고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하고 고백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메시야의 사명을 확인하는 음성을 들은 예수님은 곧 바로 세상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내려온 세상은 여전히 병고의 고통과 시기와 질투와 싸움과 소란스러움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깊은 교훈이 담겨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은 어렵고 아프고 괴롭지만 우리는 그곳을 피하는 삶이 아니라 그곳에 함께 거하며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싫어하는 몇 가지 아픔과 고통의 요소가 있습니다.
1) 병고의 아픔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시자마자 벙어리되고 간질 귀신이 들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인생살이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우리들의 몸에 오는 병고의 아픔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합니다.
2) 핍박입니다
병든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비방하고 공격하여 제자들은 정말 난감한 처지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좀더 좋은 신앙생활을 하려고 결단하고 노력하면 사탄은 가족을 동원하고 사람들을 동원하고 사건을 동원하고 권력과 사회를 동원하여 우리를 핍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로 인하여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을 느끼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3) 비웃음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까이 갔을 때에 핍박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많은 구경꾼들이 제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비웃고 떠들고 있었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핍박하는 사람도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지만 구경하고 방관하다가 조금만 약점이 잡히면 비웃는 세상의 눈길도 우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중에 하나입니다.
이 세가지의 주된 어려움과 그밖의 많은 어려움이 우리의 주변에서 상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속에 들어가셔서 병을 고쳐주시고 핍박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으시고 비웃는 자들의 비웃음 속에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메시야의 사명을 완성하셨습니다.
때문에 본문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악한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그속에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라고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 중에도 우리를 핍박케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사회와 직장에서도 예수 믿는 우리들을 향하여 핍박하고 비웃는 수많은 존재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교회 속에서도 가시와 전갈같이 주는 아픔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종된 우리들이 당할 사명이라는 것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히 나아가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나아갈 때에 그 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우리도 \'이것이 사명이다.\'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이기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로 세상의 아픈 사명을 오히려 아름답게 감당하는 무성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인자야 내가 나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겔3:17)
주님의 종된 우리들의 두 번째 사명은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살구나무의 환상이었습니다. 살구나무는 이스라엘에서 모든 식물이 성장을 멈춘 시기에 꽃을 피우는 특별한 식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이 환상을 보여 주신 것은 모든 사람이 잠자고 쉬는 시간에도 홀로 깨어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레미야를 그렇게 부르신 하나님은 본문의 에스겔에게도 똑같이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명하시고 계십니다.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이 명령은 에스겔에게 뿐만 아니라 주님의 종된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아침에 당부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파수꾼이 됩시다.
그리고 아무도 일하지 아니해도 홀로 일하고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에 깨어 지키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홀로 찾아 행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파수꾼의 사명인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더 두려운 말씀은 우리가 이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여 죽어가는 영혼이 있다면 그 피값을 우리들에게 찾으시겠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내가 그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3:18)
죄악의 길로 가는 이들을 깨닫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경고하지 못하여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멸망한 사람들의 피값을 우리들에게 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두려운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합시다.
듣던지 아니 듣던지 십자가의 도를 전합시다. 구원을 선포합시다.
죄악을 지적합시다. 홀로 깨어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전합시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홀로 깨어 감당합시다.
그래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무성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고난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은 쉬운 것이 없고 너무도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명과 고난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범죄가 극에 달하여 용서 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이 앞으로 당할 환란을 에스겔이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주신 명령은 이러 합니다.
\"390일을 좌편으로 모로 누워 그 몸을 묶고 생활하고 그것이 끝나면 40일을 우편으로 모로 누워 묶고 지내라는 것\"(겔4:9-12)
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그렇게 자신을 묶고 밤낮으로 390일과 40일을 행하며 이스라엘이 이렇게 묶여서 괴로운 생활을 하게 될 것을 행동으로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명령하십니다.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로 빵을 만들어 인분을 말린 연료에 구워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
사람이 먹을 빵을 사람의 배설물을 말려서 연료로 그것에 구워먹으라는 것은 정말로 행하기 어려웠습니다. 구역질나는 일이고 이스라엘의 율법으로도 금지된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은 도저히 행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쇠똥으로 대신 하기를 허락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쇠똥으로 빵을 구워 먹으며 자기들을 칭찬하는 거짓선지자의 말에는 박수를 치고 자신의 죄와 잘못을 지적하며 회개하라는 예언의 말씀에는 반발하는 이스라엘이 앞으로는 이런 더러운 양식과 말씀을 먹게 될 것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쇠똥 불과 연기에 그을린 빵을 먹는 에스겔을 상상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사명이 콧노래나 부르며 쉽게 할 수 없는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무성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사명은 어렵습니다.
몸이 묶인 채로 430일을 잠을 자는 고난과 쇠똥 연기에 그을린 빵을 씹어야 하는 구역질나는 아픔이 있습니다.
때로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주님의 일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저나 여러분이나 쉽게 대접받고 칭찬받는 일만 추구하고 주의 일을 한다고 생색내지는 않았습니까?
인분 불을 피우며 구역질 나는 연기와 그을음에 빵을 굽던 에스겔을 이 아침 기억하시고 아무리 힘들지만 다시 믿음의 옷깃을 여미고,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저와 무성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