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의 도망자 / 겔10:18-19

알몸의 도망자/겔10:18-19,막14:51-52



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 날 저녁 시간에 \'천로역정\'이라는 프로그램을 합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 장소를 돌면서 끝에 가서는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하자면 천국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 항상 마지막쯤에서 으쓱한 곳에 땅을 파고 관을 파묻은 그 곳에 학생들을 들어가게 한 다음 회개 기도를 시킵니다. 예수 안에서 철저히 자신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밖에서 못을 박는 소리를 내면 열이면 열, 학생들은 울면서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또 혹은 관 안에 거울을 두고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라하고 관 두껑을 열면 자기 얼굴이 보이게 되고, 그러면 학생들은 크게 깨달음을 얻습니다.
물론 이런 행사 뒤에 교회에 돌아와서는 학생들이 예전의 학생들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죽음에 대한 상념과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미국의 작은 도시에 어느 교회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셔서 하셨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며칠 동안 목사님은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주일 예배에 꼭 나와 주길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예배 참석률도 저조하고 교인들이 새로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지방 신문 광고란에 작은 광고를 하나 실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 이러한 교회가 문을 닫게 생겼으니 교회 문을 닫는 폐쇄 의식으로 교회 장례식을 치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일이 되자 동네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하고 몰려들었고 교회는 초만원이 되었습니다. 강대상 앞에는 관이 놓여 있었고 그 둘레에는 화환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절차에 따라 예문을 낭독한 다음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떠나는 교회에게 조의를 표하라고 했습니다. 신기한 의식을 처음 본 교인들은 관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차례를 따라 관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관속에는 큰 거울이 들어 있었고, 그 거울을 통해서 각자 자기의 얼굴을 본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실상, 우리 한국 교회의 실상은 어떻게 비취겠습니까?

구약 본문의 말씀을 먼저 주목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도성으로 성별된 처소인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 시대에는 범죄와 타락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에 에스겔 선지는 이 도성을 심판하시기 전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이 도성을 심판하시겠다는 재앙을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에스겔서 9장 3절과 10장 1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를 떠나 성전 문지방에 머물렀고\"라고 했고 10장 19절에서는 \"성전 문지방을 떠나 성전 입구 동문에 머물렀고\"라고했습니다. 세 번째로 11장 23절에서는 \"동문을 떠나 성읍 동편 산에 머물렀다가\"라고 하면서 아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합니다. 점층법을 쓰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서 성전 입구로, 성전 입구에서 동문으로 동문에서 성읍 동편 산에 머물렀다가 아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성소가 더러운 죄악으로 가득하다면 주님은 아주 떠나갑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거룩한 도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떠나면 우리는 이미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교회, 우리 가정에 머물러 있어야만 합니다.

온통 부산이 부산 아시아 게임으로 떠들썩합니다. 부산이 이번 아시아 게임 때문에 많은 도약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부산이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산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시아 게임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월드컵 경기로 우리나라가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고, 나라가 새로워지려면 온 나라 백성들이 위정자를 위시해서 모두가 다 헌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온 성도들 모두가 헌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낡은 것, 더러운 것, 죄된 것은 처리해야 합니다. 새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대했던 21세기입니다. 21세기가 되면 우리는 마치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 것처럼 생각하고 흥분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로 살인의 소식은 그치지 않고 사고의 소식은 계속 들려오고, 물고 물리는 정가의 이야기도, 늘 혼탁했던 선거 이야기도 역시 그치지 않고 우리 귀에 들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하나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바뀐 것이 아니라 더 악하고 못된 사람들이 더 많이 진 것 같아 보입니다. 더 혼탁하고, 더 몰상식하고, 더 비윤리적인 세상이 되어갑니다. 종말을 재촉하는 긴박한 시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편리한 것만 구하면 생활이 나아지고, 우리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동광 성도 여러분!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이 우리 인생의 질을 높여주질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맞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때 에스겔은 단계적으로 떠난 하나님의 영광이 직접 성소에 강림하는 환상을 에스겔서 43장에서 보았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더러운 것에서 떠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신약의 본문은 마가의 서명이라고 알려져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알몸에 가는 베 홑이불을 두른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붙들려고 하니 그는 베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손가락이 잘려진 사람\'으로 유명한 요한 마가의 전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같이 최후의 만찬을 행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셨습니다. 그 때 가룟 유다의 사주를 받은 로마 병사들이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마가의 다락방에 예수님이 아직도 계신 줄 알고 마가의 다락방을 급습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예수님이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신 후로 가룟 유다를 선두로 해서 다시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쫓아 추격을 합니다. 이를 알아차린 마가의 어머니는 잠든 아들 요한 마가를 흔들어 깨워 이 위급함을 예수님에게 알리도록 했습니다.

이 위급한 상황을 잠결에 들은 요한 마가는 급한 마음에 베 홑이불을 두른 채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달렸습니다. 이 동산에 무리들 보다 앞서 숨어든 요한 마가는 감람나무 그늘 밑에 몸을 숨기고 \"아버지! 아버지께서 모든 일이 가능하십니다. 이 잔을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다 듣고 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잠을 이기지 못하고 조는 모습까지도 생생하게 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전후 사정을 낱낱이 보고 있었기에 마가 복음은 생생한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관찰을 하던 마가는 그만 발각되어 \"너는 누구냐?\"라는 소리치며 휘두르는 로마 병사의 칼날을 피해 베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비극 중에 코메디를 연출하며 벗은 몸으로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때 로마 병사의 칼날을 피하려다가 손가락 하나가 잘렸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지난 후 요한 마가의 집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방문을 합니다.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안디옥 교회에서 거둔 연보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여기서 마가는 바울의 세계 선교에 대한 계획을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마침내 바울의 웅변은 마가의 열정으로 바뀌어 마가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때에 마가의 마음은 세계 선교에 대한 희망으로 불타 올랐고 패기는 그야말로 만만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마가만 가진 마음은 아닙니다. 그 마음에 불이 붙기만 하며 청년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열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패기만만하게 전도 여행을 떠난 마가는 구브로와 바보를 거쳐 밤빌리아에 도착했을 때 마가는 도저히 더 이상 전도 여행을 따라 갈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바울과 결별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왜 결별했는지 성경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사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마가는 고향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돌아와 다시 2차 전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요한 마가는 자신이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당시 경솔하게 한 행동을 후회하고 다시 2차 전도 여행에 동참 시켜 줄 것을 바울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1차 전도 여행때 아무런 이유 없이 고향으로 돌아간 마가를 전도여행팀에 합류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다투게 됩니다. 그 일로 인해서 방루은 실라를 데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전도 여행을 두 팀으로 나누어 떠나게 됩니다. 이 결별 이후 바울은 그가 쓴 신약성서에서 바나바의 이름을 몇 차례 기록해 놓고 있지만 바나바의 그 일 이후의 소식은 성경에 전혀 기록이 나타나 있질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년에 디모데를 로마로 초청할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하면서 마가는 내게 요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나바의 친척 마가도 문안하라고 하고 마가가 가거든 잘 영접하라는 지시를 여러분들이 받았는 줄 알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요한 마가를 용서하고 그를 영접하여 나중에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요한 마가는 훌륭한 전도자가 되어 바울과 베드로의 비서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순교 직전의 어려울 때 바울의 수종을 들면서 충성을 다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최초의 복음서라고 알려진 마가복음을 저술한 것은 기독교 역사에 아주 중대한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자유와 욕구의 시대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은 무례하고 새것만 내세우고 일만 저지르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나이 드신 어른들은 완고한 분들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젊기 때문에 실패도 합니다. 그러나 실패는 하나의 산 경험이 됩니다.
젊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신의주 특구의 개발을 책임지는 사람이 양빈이라는 39살의 젊은 나이의 사업가였는데 그저께 중국 당국에 의해서 세금 탈루로 인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신문들의 해석은 북한이 중국과 긴밀한 협조 하에서 개발을 하지 않은 까닭에 중국 당국의 노여움을 사서 이런 일이 자초되었다고 합니다.

잠언 14장 4절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실패를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으려니와 그러나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패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실패한 이들은 다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성경은 죄를 지은 사람은 용납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새벽시간에 열왕기하서에 있는 말씀을 살피고 있는데 이스라엘 역사의 말기에 왕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득죄한 왕이었습니다. 다윗도 그런 왕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실패는 그 이후 철저한 회개와 함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젊다고 하는 것은 나이가 젊어서 젊다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20대라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하면 그 청년은 이미 청년이 아니라 노인입니다. 나이가 70이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향해 다시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그 분은 청년입니다.

우리 동광 교회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나이가 젊은 청년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길 원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젊은 신앙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비록 실패해 알몸으로 도망을 했으나, 겁이 나고 두려운 마음으로 전도 여행에서 이탈을 했으나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마가복음으로 예수의 생애를 생생하게 기록하며 바울의 노년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마가와 같은 알몸의 도망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경배 찬양]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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