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 / 요삼1:2-4

건강한 삶/요삼1:2-4


지금까지 3주간에 걸쳐서 건강한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즉, 관계적 건강과,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세 가지 건강보다도 더 중요한 건강이 영적 건강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됨같이”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영혼이 잘 되듯이 하는 일도 잘되고 건강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육체입니까? 마음입니까? 영혼입니까? 육체는 그릇입니다.

사도행전9:15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 대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로마서9장에서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진노의 그릇”이라고 하면서 그 그릇은 바로 인간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릇이라고 할 때는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의 이름이 정해지고 가치가 매겨집니다. 사실 그릇의 이름은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을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을 담기 위해서 만든 것이 육체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도 중요합니다. 가장 귀한 영혼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인간의 생명의 가치를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건강보다는 영적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릇은 이가 빠지고, 다소 금이 가고, 긁키고 해도 내용물은 얼마든지 담을 수 있습니다.

영혼을 담는 그릇인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있더라도, 장애가 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속에 담긴 영혼이 건강하면 됩니다. 여러분, 육체가 아무리 건강해도 영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됩니까?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모세가 120살이 되어 죽을 때의 육체적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34장7절 말씀,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사울왕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비록 육신적으로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아직도 살아 역사하며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스데반 집사, 세례 요한 같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았기에 순교했고, 그로 인하여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여 간절히 세 번이나 기도할 정도의 육체의 질병을 갖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영적인 건강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을 위해 순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한 삶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냐 건강하지 않으냐 하는 것을 어떻게 진단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때 나의 영혼은 살게 됩니다. 영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어야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건강 진단을 정기 검진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암을 조기진단하기 위해서는 매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정신건강에 대해서는 말이나 행동 등이 겉으로 곧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쉽게 발견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계적 건강, 즉 사회적 건강은 관계를 가져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 건강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건강을 위해 자가진단이 필요합니다.

\'이 대신 잇몸\' 이라는 말을 합니다. 반갑게도 신자들이 대강 자신의 영적 건강을 자가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될 기준이 우루과이의 작은 성당 벽에 쓰여 있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란 제목으로 쓰여 진 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라 하지 말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라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라 하지 말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지 말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하면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라, 누군가에게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이 기도문에 비추어 자신의 영적 건강을 진단해 봅시다. 세상일에만 빠져 있지는 않은지, 자기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는지, 아들딸로 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지,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며 소망하고 있지는 않는지, 아버지의 뜻보다는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고 있지 않은지, 일용할 양식보다는 죽은 후까지도 걱정하고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본체만체하고 있지 않은지,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원수를 맺고 있지 않은지, 죄가 다가오더라도 피하지 않고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고 있지 않은지,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들이 하는 기도에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아멘’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영적건강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럴려고 하면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살면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어야 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려고 하면 무엇이 좋아야 합니까?

신뢰관계가 견고해야 합니다. 즉 믿음이 충만합니다.

관계가 좋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가 좋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입니다. 신뢰가 깨어지면 관계가 깨어집니다. 부부간이라도 신뢰가 깨어지면 부부 사이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는 신뢰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믿느냐?’ 고 물으십니다. 하박국2:4에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보고 판단하실 때 세 부류로 구분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과 믿음이 적은 사람과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마가복음4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이 무서워하며 두려워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서 우리가 다 죽게 되었는데도 돌아보시지 않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그 때 하신 말씀을 보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마태복음17장에 보면 간질병 걸린 환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셨는데, 사실 그보다 먼저 제자들에게 왔을 때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꾸짖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마가복음16장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제자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부활하심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했습니다.

그 후에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다시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가복음12장에 보면 의식주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여 기도하는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칭했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은 염려와 걱정을 많이 합니다.

반면에 믿음이 큰 자들도 많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의 믿음을 가리켜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사도행전11:24에 보면 바나바를 가리켜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15장에 보면 귀신들린 어린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여인을 보면 예수님이 아주 무시해 버립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했습니다.

여자를 개로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 여인이 멋진 대답을 합니다. “주여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이 말은 ‘나는 개 같은 이방 사람입니다. 가나안 사람입니다. 그러나 개들이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자라듯이 나도 당신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기를 원합니다’이때 예수님은 그 여자를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러니까 그 말씀하신 시간에 그의 딸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믿음이 작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믿음이 큰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다, 적다, 크다 하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 판단하시는가? 믿음이 충만한 성도는 말씀을 순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말씀이 주어지더라도 그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유혹이나 위협이 나타납니다. 말씀이 순종되려면 우선은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들음이 없는데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말씀을 잘 받아먹습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려면 음식을 골고루 잘 먹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잘 받아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음식 맛으로 먹으려고 하면 먹지 못할 음식이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맛으로 먹으면 못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입맛이 좋은 사람, 즉 어떤 맛도 다 섭취할 수 있는 입맛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음식이든지 다 잘 먹습니다.

중고등부 비전트립을 간 학생들의 대부분이 캄보디아에 가서 현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몇 명은 아주 잘 먹었다고 합니다. 여행을 가면 잘 먹어야 합니다. 여행은 건강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 살 때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6:12절 말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잘 받아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것이고, 우리가 먹는 양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음(-)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의 생명을 단축시키지만,
양(+)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킵니다.
음식을 먹으면 몸이 강건하여집니다. 그러나 양식을 먹으면 마음에 힘을 얻습니다.(시104:15)
땅에 속한 사람은 음식을 즐기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양식을 즐깁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6:25).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4:32).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지켜주는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받아먹는다는 것은 우선은 듣고 깨닫는다는 것이고, 깨달은 말씀을 순종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나름대로 믿음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를 두고 판단을 합니다만 믿음의 수준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들이 영적으로 건강한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의 수준을 알아야 하는데 그 믿음의 수준을 아는데 가장 쉬운 것이 말씀을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고려대 의대 내과 외래교수이면서 샘안양병원장 박상은 박사는 건강의 개념을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수준을 판단하는데 다른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시험을 당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습니다. 그것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바치려고 한 것을 보시고 그의 의로운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만약에 그것에 대해 불평을 했더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은 떨어집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지 않고 다른 제물을 바쳤다면 그것은 믿음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정말 믿음 없는 행동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단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 제물을 전혀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수준은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이 충만합니까? 아니면 50%짜리입니까? 아니면 70%짜리입니까?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믿음이 충만합니다. 믿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잘 되려면 자주 만나야 합니다. 자주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기도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관계가 됩니다. 건강한 관계는 결국 영적으로 건강합니다. 관계가 소원해지면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됩니다. 기도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정말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사속에서도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녹은 3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지 않고 승천했습니다.
모세는 그 얼굴이 너무 빛나 수건을 쓰고 백성을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예루살렘 성전에 기대어 울면서 예언하여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삼층천까지 올라가는 신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까지 설교를 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죽은 시신과 무덤에서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분도 라브르는 어두운 밤에 기도하는 몸에서 찬란한 빛이 났습니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는 설교할 때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빛났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라 영의 세계입니다.

영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과 그리움과 깊고 긴 기도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도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자의 두 번째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내가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내가 건강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돈을 잘 버는 것 같지만 돈을 잘 버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노아가 의롭게 살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창세기6장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 구출함을 입었습니다. 이때 롯은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라고 고백했습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모세를 죽이지 아니한 산파들에게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은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사도행전15:11에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출애굽기33:19절에 보면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민수기6:25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시편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건강한 신앙은 자신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또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건강한 믿음은 이렇게 받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시편116:12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사는 자는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를 생각하여 영적으로 건강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속 사람이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삽니다.

속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결국 겉사람도 변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겉사람은 변한 것 같으나 속사람은 안변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척 하지만 속사람은 아직도 정결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에베소서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하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말씀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생각이 고쳐져야 합니다.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인생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세계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는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시기심도 사라졌습니다.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사랑이 된다면 건강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질병에 걸리면 나타나는 현상이 몇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앓는 소리입니다.

신음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자식이라 할지라도 듣기 싫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병이 들면 소리를 냅니다. 앓는 소리, 신음의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평과 원망의 소리입니다. 마음에 불평과 근심과 걱정이 없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면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여전도회 수련회 때 신용백 목사님의 말씀의 제목이 “애 ․ 감 ․ 락”입니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의 삶은 바로 이 세 가지가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즉 속 사람이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 충만하십니까?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고 믿습니까? 속사람이 새롭게 변화되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이 건강한 삶으로 범사에 잘 되고 육신도 건강하시고, 정신도 건강하시고, 인간관계도 건강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경배 찬양]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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