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사랑/요이1:1-11 오늘 본문 가운데 3절에는 좋은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은혜, 긍휼, 평강, 진리, 사랑, 이 말들은 고리처럼 연결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진리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성도들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체험하게 됩니다. 요한 2서는 사도 요한이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부녀와 그 자녀들에게 이와 같은 것들이 넘치기를 바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과 진리와 사랑이 넘치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설교를 시작합니다. 요한2서는 원어로는 245 단어로 된 짧은 편지 성경입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은 파피루스라는 갈대 비슷한 식물로 만든 종이에 기록되었는데 요한2서는 파피루스 한 장의 분량입니다. 그 때 개인이 편지를 주고받을 때 보통 이 정도 분량을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짧은 성경에 진리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1절에서 4절까지는 진리라는 말이 각 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습니다. 진리는 말은 누구나 좋아하는 말입니다. 특히 교육 기관에서는 이 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기가 나온 학교의 교훈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진리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학교가 많을 것입니다. 모교의 교훈이 생각나지 않으면 오늘 가서 졸업 앨범이나 교지를 보고 무엇인지 알아서 그것을 살리기 위해서 힘쓰세요. 그것이 모교를 참되게 사랑하는 길입니다. 텔레비전에 어느 학교 한 학급의 급훈이 소개되는데 영어로 ‘In Seoul\'입니다. “저것이 ’서울에서 살으렵니다‘도 아니고 무슨 뜻인가?” 했더니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입시학원의 원훈(院訓)은 될 수 있어도 학교의 급훈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인데 버젓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보며 \'In Truth\'라고 하면, ‘진리 안에’ 하면 더 좋을 텐데, 그러면 좋은 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리라는 말을 학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여기입니다. 교회입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곳인데 하나님이 바로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릅니다.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1장 3절에서는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서 장례예배에서는 이 말씀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할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서 65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을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진리의 하나님을 히브리 말로는 ‘엘로헤 아멘’이라고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는 같은 뜻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진리란 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있습니다. 성령이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성 삼위가 모두 진리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진리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진리는 교회의 생명이요, 교회를 진리를 핵으로 하는 공동체입니다. 진리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3절에 있는 진리와 사랑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은혜와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좋은 말끼리 짝을 지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과 공의”라는 말이 짝지어서 많이 쓰이고 있고 호세아서 12장 6절에는 인애와 공의란 말이 짝 지어져 있습니다. 진리와 사랑이라는 말도 좋은 짝이 되는 말입니다. 성경 여러 곳에 “은혜와 진리”라는 말이 짝지어져 나오기 때문에 은혜와 진리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도 있는데 진리와 사랑 교회가 나와도 좋을 것입니다. 첫째,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은 진리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들라고 하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말이 형식적인 말, 알맹이가 없는 말, 공허한 말이 될 때 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랑이라는 말이 실제적인 말, 살아있는 말, 힘이 있는 말이 될 때 교회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답은 ‘모든 교회가 다 좋은 교회입니다.’ 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더 좋은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는 진리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존재들인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표준새번역개정판」으로 읽으면 이것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믿음이 자매와 그 자녀들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은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속에 있고, 또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랑은 이와 같이 진리를 중심으로 한 사랑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동반하지 않은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닙니다 어느 원로 신학자에게 제자들이 “박사님, 평생을 신학을 연구해 오셨는데 박사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가장 큰 진리는 무엇입니까?” 물었다고 합니다. 이 신학자는 즉석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하라”는 진리에 근거해서 사랑을 실천하려고 힘씁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의 찬가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은 6절에서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진리가 만나면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 여러 형태로 쓰입니다. 군대에서는 전우애를 강조합니다. 직장에서는 동료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정당에서는 ‘당원 동지 여러분!’ 하면서 동지애를 말합니다. 교회의 사랑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진리애(眞理愛)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요한2서는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 성경입니다. 1절 시작 부분에 ‘사도인 나는’ 하지 않고 “장로인 나는”해서 조금 혼선이 있습니다만 요한2서는 요한복음, 요한 1서, 요한3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요한문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의 사도라는 사실을 말할 때 거의 자동적으로 따르는 설명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일입니다. 요한은 처음에는 성격이 매우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막3:17). 아마도 제자들 사이에서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큰 소리를 잘 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마을로 들어갔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요한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자고 하였다가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은 일도 있습니다.(눅9:54) 그런 요한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가운데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성품도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변화가 되기 바랍니다. 사랑의 사람들이 되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1서는 사랑의 서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1서 4장 7절의,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는 말씀이나 5장 3절 앞부분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라는 말씀은 사랑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메아리는 요한2서에도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의 5절과 6절은 특히 그렇습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을 바와 같이 그 가운데에서 행하려 하심이라 이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입니다.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 아니라면 요한2서는 부도덕한 문서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5절의.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 사랑이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 아니고 남녀간의 에로틱한 사랑이라면 요한2서는 외간남자가 유뷰녀를 유혹하는 불륜의 편지가 되어서 스캔들이 크게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교회의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의 사랑은 차원이 높아야합니다.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야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합니다. 용서와 이해가 있어야합니다. 성도간에 상처가 되는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해야 합니다. 흔히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오해가 있거나 싸웠다가도 술 한 잔을 나누면 풀어지는데 교인들을 앙심을 먹으면 평생 풀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풀 것은 풀어야합니다. 여러분, 올해 남은 기간에 풀 것은 풀고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맺힌 것을 그대로 가지고 새해를 맞으면 그것은 진정한 새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변하지 말아야합니다. 주님에게 대한 사랑도 변하지 말아야 하고 성도들끼리의 사랑도 변하지 말아야합니다. 같은 정당의 당원들끼리 동지애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우리는 우리 나라의 정치현실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직장의 동료애는 보람을 중심으로 하기도 하지만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강합니다. 직장이 바뀌면 어제의 동료애가 오늘은 경쟁관계로 바뀝니다. 우리의 사랑은 진리를 중심으로 한 사랑이라는 사실에 부끄럽지 않은 사랑이 되기 바랍니다. 둘째, 진리가 아닌 것은 사랑하지 말아야합니다. 요한2서는 6절까지 사랑을 이야기하고 진리를 이야기하다가 7절에 와서는 분위기가 바뀝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 ‘적 그리스도’, ‘인사도 하지 말라’, 험악한 말들이 나옵니다. 초대교회 시대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주장을 가현설(假現說)이라고 합니다. ‘가짜로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낸 것은 가짜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영지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속이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적 그리스도’라고도 했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과 짝을 이룹니다. 진리와 사랑, 이 말은 ‘진리는 사랑해야 한다’ 이런 뜻도 됩니다. 진리의 반대는 거짓, 또는 비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진리라는 말은 무엇과 짝을 이뤄야할까요? 배격이라는 말과 짝을 이뤄야합니다. ‘단호한 배격’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면 더욱 좋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은 단호하게 배격해야합니다. 초대교회를 위협한 것들이 있습니다. 로마의 박해, 유대교,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밖의 것들입니다. 그와 함께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안의 것입니다. 이 안의 것이 더 큰 위험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단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그렇지요. 사도들은 이런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단호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기로부터 방어하고 지킬 수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세요 진리를 가지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은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집에 있는데 ‘띵 똥’합니다 ‘누구세요?’ ‘여호와의 증인이에요’ 그러면 얼른 요한2서 1장 10절 뒷부분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인사하는 것은 그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힘써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3서 1장 8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전도대원들이 어느 아파트 앞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그 아파트 주민 하나가 와서 나는 어느 교회에 나가는 누구라고 소개를 하더랍니다. 전도대원들은 그 사람이 ‘여기는 내 전도구역이니 다른 데로 가세요’ 할 줄 알았는데 그 분은 수고한다고 하고 ‘나는 이 아파트 몇 호에 사니까 전도하다가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을 사용할 일이 있으면 자기 집으로 오세요’고 하더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는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약하게 하고 교회를 흔듭니다. 성도들이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 것으로 알고 혼돈을 일으키고 받아들이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3장 8절에서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중세에 잔 후스(Jan Hus 1370~1415) 라는 종교개혁가가 있었습니다. 보헤미아, 지금의 체코에서 태어나 프라하대학의 학장을 지낸 분이었습니다. 후스는 중세교회의 타락을 공격하다가 프라하대학의 학장직에서 추방 당해 유랑생활을 했고 파문 당했습니다. 권세를 잡은 이들은 후스에게 콘스탄스(Costance)라는 곳에 와서 함께 토론하자고 했습니다. 신분을 보장하고 공정하게 토론하고 안전하게 돌려보낼 것을 보장하니 오라고 했습니다. 후스는 그 말을 믿고 약속한 곳으로 갔습니다. 가자마자 체포당해 감금되었습니다. 후스는 굽히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호소한다. 그 분은 그릇된 증언이나 잘못된 공의가 아닌 진리와 정의를 기초로 판결하실 터이기 때문이다. 1415년 7월, 후스는 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가롯 유다를 소리를 들었고 마귀의 형상을 그린 모자를 씌우고 사형장으로 끌려가서 화형을 당할 때 후스는 부드러운 얼굴로 자기를 도와주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태연한 모습으로 시편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불꽃이 타오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잔 후스는 목숨을 위해 진리가 아닌 것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잔 후스의 순교는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순교로 꼽히고 있습니다. 후스의 개혁운동은 마르틴 루터에게 이어져 열매를 맺었습니다. 체코 프라하 광장 중앙에는 잔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진리가 아닌 것은 따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2003년,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습니까? 타협하지 않으셨습니까?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습니까? 무감각하지 않으셨습니까? 8절 말씀은 그런 분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 거짓 교훈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배격하지 않으면, 수고한 것의 열매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상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 이단에 대해, 그리스도의 교훈이 아닌 것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더욱 사랑해야합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등불이기 때문에 시편 119편을 지은 시인은 105절과 106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느 크리스천 농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은 흙에 식물이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얼마나 있고 유익한 박테리아가 얼마나 있고 하는 것을 설명한 다음에 ‘여러분, 그것은 흙덩어리가 아니라 생명 덩어리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이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성경은 종이뭉치가 아닙니다.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진리 덩어리입니다. 진리 가운데에서도 큰 진리 덩어리입니다. 여러분 먼저 진리의 말씀인 성서를 아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절 뒷부분에 “진리를 아는 자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진리를 알게 되었고 계속해서 알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한 번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 계속해서 아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성경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오늘은 세계성서주일인데 성서주일이 되면 지금까지는 ‘성서를 많이 보급합시다’ 하는 것이 많이 강조되었습니다. 또 ‘아직도 성경이 그들의 말로 번역되지 않은 부족들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 성서를 더 많은 말로 번역하는 일을 도웁시다’ 하는 것도 강조되었습니다. 지금은 ‘성서의 말씀을 지킵시다’ 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일찍부터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4절을 보세요. 너희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이 말은 요한3서에서도 반복됩니다. 요한 3서 1장 3절과 4절을 보세요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우리들이 진리를 행할 때, 진리 안에서 행할 때 주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진리에 행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참된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 안에서 계시되고 순종 가운데 표현된 하나님의 진리에 헌신된 삶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지면, 무슨 구속처럼 느껴지면 그 사람은 아직도 미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을 보세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는 말씀을 읽으면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불안에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이기심에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를 얻어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공포를 안고 사는데 성경에 있는 영생과 천국과 부활에 대한 말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김경수(金京洙)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작년 7월에 돌아가셨는데 시인이었습니다. 이 분이 쓴 시 가운데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나이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나이다 사랑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나이다 사랑의 주 하나님 영광의 주 하나님 자유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믿음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나이다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나이다 사랑의 주 하나님 영광의 주 하나님 자유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소망이 우리를 빛이 되게 하나이다 말씀이 우리를 소금되게 하나이다 사랑의 주 하나님 영광의 주 하나님 자유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이 자유하게 하나이다 사랑의 말씀이 보람있게 하나이다 사랑의 주 하나님 영광의 주 하나님 자유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나운영(羅運永)이라는 작곡가가 이 시에 곡을 붙였는데요 지난 7월에 이 분 추도예배를 드릴 때 참석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고인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과 23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송구영신의 때를 맞이하고 있는 이 무렵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진리’를 기준으로 해서 2003년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은 진리를 사랑하는 삶, 진리 중심의 삶이었나? 진리가 아닌 것들을 용납하는 일은 없었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얼마나 사랑했나? 성경을 알기 위해,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 얼마나 힘썼나? 이와 같이 살피는 가운데 진리라는 말이 우리 삶의 한 가운데 오고 우리 삶의 기준이 되고 진리를 더욱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