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상을 얻기 위하여 / 요이1:7-13

온전한 상을 얻기 위하여/요이1:7-13



한 주간 동안 제6차 필리핀 선교여행을 호산나축구선교회와 더불어 은혜 가운데 다녀오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특별히 이를 위하여 기도와 선교용품으로 후원해 주신 호산나 서포터즈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20일에 폐막된 제85회 전국 동계체육대회에서는 MVP로 충남대표인 강민혁선수가 선정되었습니다. 한 개도 따기 어려운 금메달을 스키 부분에서 무려 4개나 목에 걸었습니다. 2위는 쇼트트랙에 2관왕을 차지한 김동성선수였는데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들은 인터뷰하면서 \"다음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하였는데 모르긴 해도 아시안게임을 정복하고 나면 당연히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에서 금메달 따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향하여 욕심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더 높은 이상과 꿈은 오히려 모두에게 격려와 갈채를 받아 마땅한것일 뿐 아니라 함께 나누어야할 공동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요한은 상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헬라어로 \"미스도스\"라고 하는 이 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어야 할 \'봉사의 상급\'이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말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제 부르심에 응답한 모든 충성된 일꾼들에게 \"미스도스\"를 허락하시므로 주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럽지 않은 성도의 기쁨을 예비하라는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주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주시는 는 구원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는 또한 하나님께로 부터 받아야 할 상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충성된 봉사자에게 허락하시는 \"미스도스\"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만,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결단하긴 했지만 주님을 위하여 충성되이 살지못하고 오히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세상일은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학생이 대학 입학 시험을 보았는데 원하는 대학에 갈만한 점수가 나오지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원서를 내었습니다. 얼나 후 통지를 받았는데 예비후보 몇 번이라고 하는 결과였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학생은 그 대학에 가고 싶은 열망이 있어 기다리던 중 다행히 등록을 포기함으로써 생긴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예비후보에게 등록을 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비록 예비후보로 입학을 했지만 1학기부터 매학기마다 열심을 다해 공부를 하여 그는 수석을 차지하며 졸업을 하였습니다. 부끄러움이 변하여 자랑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은 꼴찌로 들어갔어도 열심히 하면 1등을 만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상급없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 제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지요. 다시 한번 지구에서 상급 있는 인생을 살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마치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나사로를 부러워했던 부자가 간청하여 자신의 5 형제만이라도 믿음으로 살도록 나사로에게 부탁하고자 했으나 , 오히려 그곳에는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라는 충고만 듣게 된 누가복음 16: 19-31의 말씀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연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셨을 때, 우리에게 든든한 건강 주셨을 때, 우리에게 다영한 재능과 풍성한 물질을 허락하셨을 때 힘을 다하여 충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스도스가 있어야지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봉사에 대한 상급이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와 봉사에 대한 상급은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줄 수가 없는 일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과거에 술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시죠? 라고 하면 종종 이런 대답을 듣곤 했었습니다. 우리 마누라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집사인데 천국갈 때 마누라 치맛자락 붙잡고 가면 안된겠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구원의 은혜와 봉사에 대한 상급은 아내가 헌신했다고 해서 나누어 지는 것도 아니고, 가족중에 누군가가 순교했다고 해서 덤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과 같이 각각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자신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선언합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을 향해 많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는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실감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교사들, 즉 적그리스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나 그들은 우리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합니다. 성경대학, 무슨 신학교 무료로 오세요. 초등학교를 안 나와도 좋습니다. 무료로 오십시오. 학교 오기가 힘듭니까? 통신으로 좋습니다. 그런 식으로 어리석은 이들을 유혹하여 잘못된 사상과 이론을 주입시킵니다.

오늘 거짓교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7절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여러 신학적 이론이 있지만, 당시 초대교회를 가장 어지럽혔던 적그리스도의 대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심은 인정하지만,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와 더불어서 요한이서에서도 이 부분은 계속적으로 강조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미혹되지 않기를 요청하고 있는데, 10절과 11절에 보면 얼마나 강조를 하고 있는지 그 내용은 경고의 수준입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은 자,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땅에 오신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는 다른 교훈을 가진 자들이 너희들을 방문할 때 너희 집을 들이지도 말 것이며, 그들과 인사하며 교제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21세기에 가장 대표적인 영지주의자, 적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간간히 여러분 집을 방문하면 여러분들 중에는 그들을 문을 열어놓고 그들을 환대합니다. 음료수도 대접하고, 쇼파에도 앉게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목사님, 걱정 마세요. 우리는 분명합니다. 우리 신앙은 확실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스스로 꽤 멋있는 사람처럼 도취된 듯 말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요한사도는 지금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집에 들이지도 말라. 인색해서 그런 것입니까?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여러분, 요한사도의 별명이 무엇입니까? 처음 주님의 우뢰의 아들이라고 별명을 지을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불의를 참지 못했던 그런 사도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주님 부활하신 이후에 복음 증거자로써 살아가면서 그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제일 먼저 사랑이 생각납니다. 그도 늘 복음을 증거하면서 복음의 내용이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목숨을 주신 것 같이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는 오직 사랑의 복음만 전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의 사도가 초대교회 성도를 향해서 말씀합니다. 적그리스도가 너희 집에 들이지도 말라. 인사도 하지 말라. 인사도 하지 말라는 말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진리를 떠나서 공동체를 박차고 나간 사람들입니다. 공동체는 나갔지만, 서로 얼굴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집을 방문합니다. 초대교회는 순회전도자, 순회 설교자들이 많았습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 가정을 방문하면 주변의 성도들을 모아서 말씀을 듣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는 했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적그리스도가 성도의 가정을 방문하면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 말을 듣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예를 들면 어느 권사님이 잘못된 교훈, 잘못된 신앙을 가져 교회를 더났지만 성도기리는 서로 알고 있는 사이입니다. 그가 우리집에 온다고 할 때 집에 들이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지요.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지요. 당신과 당신의 공동체가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 냉정하게 행동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현대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입니까? 진리를 말하고, 복음 안에서 산다고 하면 뒤떨어진 사람처럼 이야기 합니다. 가슴 아픈 것은 신학교 안에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감신에서 그런 일 때문에 일부 목회자들과 염려하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다른 종교와의 대화를 이야기하면 굉장히 앞서가는 그런 사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기도생활을 강조하고 성령충만을 이야기하고 ,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 어처구니없게도 시대에 뒤떨어진 그런 사람으로 왕따를 당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가?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너희 집에 방문을 하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너희가 그들과 인사하고 교제하는 것은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일거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교회의 방향을 흐리거나 신실한 성도의 길을 흐리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사랑은 주를 위해서 목숨을 드리기까지 온전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지키고, 그 사랑의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때때로 냉정하고 분명한 성도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사도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한 경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편지를 통해서 요한일서를 보내고, 요한이서를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기를 원하노라.

그렇지요? 우리가 편지로 하는 것도 중요하고 요즘 같으면 전화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직접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전도사님들에게도 늘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화로 하지 마세요. 전화로 상대방의 안위를 묻는 것은 아주 불가피할 경우이지만, 어떤 경우라도 직장이라도 낮에 안 되면, 밤에라도 찾아가세요. 얼굴과 얼굴을 보면서 심방하세요.

그것 아니면 다 의미가 없습니다. 편지와 전화, 이런 부분들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한계가 분명한 사역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러므로 이제 내가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더 분명한 말씀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사역으로 떠오른 것이 상담사역입니다.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만나보면 들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만나도 여러 사람을,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어디에 가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도를 섬기고, 성도를 양육하는 일에도 이런 방법을 가져야합니다. 사도요한은 그들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성도들을 책망하고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이 바른 길로 가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성도로써 바른 길을 가는 기쁨을 확신시켜 주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 자녀들이 곧 성도들을 향한 사도요한의 간절한 말씀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온전한 상을 얻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상, 특별히 구원의 은혜일 뿐만 아니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 주신 은혜를 가지고 봉사의 상급이 있기 위해서 우리는 온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마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땅에 묻고서 그것을 잃을까봐 주님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땅에서 한 달란트를 꺼내서 주인에게 드렸지만 주인은 간수를 잘 하였노라고 칭찬하기 보다는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네가 가지고 있는 그 한 달란트마저 내가 빼앗아서 헌신적인 다른 사람에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두 달란트, 혹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갑절을 남겼지만 주님의 칭찬은 똑같습니다.

여러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불평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느낍니다. 신문을 보면, 어떤 사람은 평생에 장관을 한 번만 해도, 판사 한 번만 해도, 평생 판사 집안이라고 영광을 누릴텐데, 어떤 분은 3번 4번씩 장관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여러분들이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겼던지,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를 남겼던지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의 내용은 똑같습니다. 다른 사람 바라보면서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소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맡은 자로서 충성을 다함으로 상급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너희는 삼가 우리의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성도들을 향한 주의 종의 권면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평안의 성도들 구원의 기쁨을 간직할 뿐 아니라 봉사의 삶을 통하여 미스더스, 주님 주시는 상급을 온전히 유지하고, 누릴 수 있는 충성된 청지기로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