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ㅓㄴ의 정점 - 칼빈이 설교한 기독론 [1]


조직신학
구원의 정점(Culmen Salutis): 칼빈이 설교한 기독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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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정점(Culmen Salutis): 칼빈이 설교한 기독론

 

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 . 복음이 설교되고 우리가 함께 가르침 받기 위해서 모일 때 이것은 인간이 고안한 정책이거나 질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환상이거나 발명품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수립한 포고(布告)이며 어떤 경우이든 우리가 거역하려고 함이 합당치 않은 영구적인 법(une loy permanente)이다.[1]

 

I

설교학의 형성과 관련된 제 이론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설교의 존재는 말씀의 존재와 그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론(異論)은 없을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말씀으로 말미암으므로 말씀과 들음 사이의 전달의 도구로서의 설교자와 전달 자체 혹은 그 대상으로서 설교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종교 개혁은 예배의 개혁이었다. 예배의 지향점이 보는 예배(cultus visus)로부터 듣는 예배(cultus auditus)로 바뀌게 되었다. 자신의 입술을 열어서(ore) 인격으로(a persona)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설교가 예배의 중심으로 여겨졌다.[2] 하나님의 대언자인 목사의 설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표인 성례의 거행과 함께 교회의 표지(nota)로서 인식되었다.[3]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로 감화된 심령에 친히 말씀하심, 즉 성령으로 영감된 말씀(verba inspirata)이 그 조명(illuminatio)으로 감화된 심령(cor persuasum)에 친히 말씀됨이 설교로서 그리고 설교자는 그 도구로서 여겨졌다.[4] 가시적 교회의 표지(notae ecclesiae)로서의 설교의 영향으로 성도의 표지(notae fidelium)로서의 믿음과 행위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5]

말씀의 말씀됨을 설교로 이해함에 있어서 개혁교회는 말씀된 말씀은 말씀의 권능을 갖는 것으로 믿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인간 도구를 통해서, 말씀 가운데, 말씀하심이 설교이다.[6] 그러므로 설교는, 엄밀하게 말해서, 말씀의 자기 선포 혹은 그 과정이다. 설교는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를 증거하는 것이다. 인간의 해석을 통해서 비로서 말씀이 조리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에게 맞추어 주신다(accommodare).[7] 따라서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원형계시, revelatio archetypa)의 드러남이다(모형계시, revelatio ectypa).[8] 설교는 드러냄이 아니라 다만 드러냄을 증거할 뿐이다. 설교는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를 증거하는 것이다.

설교가 말씀의 말씀됨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설교되는지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말씀은 율법과 복음으로 특정되는 바, 그것들의 실체이자 계시인—말씀이시자 말씀의 교사이신—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논의될 수 없다. 칼빈에게 과연 과연 설교학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회의적일 것이다. 오늘날 설교학에서 기본적으로 운위(云謂)되는 제 종류의 설교의 특징들이나 전달 방법론이 그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논급되지는 않는다. 그는 특정한 설교론이나 설교학을 전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개혁주의 설교학, 분명, Sola Scriptura scripta의 원리에 기반한 참 설교학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교사로서(migister Scripurae) 사용하신[9] 이 사람의 설교자로서의 생애에 두루 문의(問議)해야 할 것이다.[10]

그는 모범적인 설교자였다. 설교의 방법을 풀어서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본문을 어떻게 나눌 것이며, 어떻게 주해할 것이며,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또한 설교의 횟수와 본문 선정에 대한 개혁 교회의 효시(嚆矢)를 제시했다. “나의 심장을 신실하게 그리고 즉시 하나님께 드립니다(Cor meum tibi offero Domine sincere et prompte)” 라는 그의 헌신은 생의 마지막까지 계속된 그의 설교에서 극치에 이른다. 우리는 그의 설교 행태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며 그가 선포한 설교 자체를 분석하고 종합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가 자주 표현하듯이 설교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학교(l’escole de Dieu) 혹은 그리스도의 학교(l’escole de Christ)에서 배울 바를 찾아야 한다.[11] 이는 그의 설교들을 통해서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vox Dei)이 반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 논고는 칼빈의 설교에 나타난 기독론을 그의 중보자직과 관련해서 다룬다. 이로써 칼빈의 설교에 나타난 신학적 한 전형을 살펴 보고자 하는 것이다.[12]



[1] John Calvin, Sermons on the Epistle to the Ephesians, tr. Arthur Golding (London, 1577), rev. tr. Leslie Rawlinson and S. M. Houghton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3), Eph. 3:1-6 (233, CO 51.442). 이하 설교는 Serm. 성경 장.절로 표기. 참고.

[2] 이와 같은 성경 이해에 기반하여 칼빈은 설교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성례적인 임재라고 본다. Cf. Ronald S. Wallace, Calvin’s Doctrine of the Word and Sacrament (Edinburgh: Oliver and Boyd, 1953), 84-85; John H. Leith, “Calvin’s Doctrine of the Proclamation of the Word and Its Significance for Today,” in Timothy George, ed., John Calvin & the Church: A Prism of Reform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90), 211-212.

[3] Cf.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libros quatuor nunc primum digesta, certisque distincta capitibus, ad aptissimam methodum: aucta etiam tam magna accessione ut propemodum opus novum haberi possit, 1559, 4.1.10, CO 2.753-754: “Ubi enim cunque Dei verbum sincere praedicari atque audiri, ubi sacramenta ex Christi instituto administrati videmus, illic aliquam esse Dei ecclesiam nullo modo ambigendum est.” 이를 인용함에 있어서 다음 번역본을 참고한다.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l, tr. Ford Lewis Battles,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vols. 20-21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이하 Inst. 권.장.절 순으로 표기. 이하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는 CO로 표기. 교회의 표지에 대한 언급은 프란시스왕에게 드리는 헌정사에서 이미 개진된다. “Prefatory Address to King Francis I of France,” Inst. 24-25 (CO 2.23).

[4] 성경의 권위(auctoritas)는 그 저자(auctor)가 하나님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이 사실은 성령의 은밀한 증거(arcanum testimonium)에 의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백성들에게만 확정된다(Inst. 1.7.1-5, CO 2.56-61).

[5] Cf. Wilhelm Neuser, “Calvin’s Teaching on the notae fidelium: An Unnoticed Part of the Institutio 4.1.8,” tr. Mark S. Burrows, in Probing the Reformed Tradition: Historical Studies in Honor of Edward A. Dowey, Jr. ed. Elsie Anne McKee and Brian G. Armstrong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89), 90-91.

[6] 하나님께서는 말씀 가운데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들을 통하여서 말씀하신다는 소위 두 음성(vox duplex, double voix) 이론이 성경의 축자적(verbatim) 문자적(litteratim) 영감에 기반한 칼빈 설교학의 정수이다. Cf. John H. Gerstner, “Calvin’s Two-Voice Theory of Preaching,” Reformed Review 13(1959), 15-26.  

[7]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사는 하나님이 자신의 음성을 인간을 통해서 들려 주시기 위해서 인간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에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셔서 인간의 언어에 자신을 맞추셨는데(accommodatio), 그 정수가 설교에 나타난다. 성소에서 하나님을 찾았듯이,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성도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다. “선포된 설교(externa praedicatio)”는 가시적 교회가 서 있는 유일한 기초이며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고리(vinculum)”가 된다 (Inst. 4.1.5, CO 2.750-751).

[8] Abraham Kuyper, Principles of Sacred Theology, tr. J. Hendrik De Vries (Grand Rapids: Eerdmans, 1980), 275-299;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ume 1: Prolegomena, ed. John Bolt, tr.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2003), 209 ff. 

 

[9] Cf.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ume 1, 178, 415, 583-585; Cornelius Van Til, The Protestant Doctrine of Scripture, In Defense of the Faith, vol. 1 (Ripon, CA: Den Dulk Christian Foundation, 1967), 115-121; Kenneth S. Kantzer, “Calvin and the Holy Scriptures,” in Inspiration and Interpretation, ed. John F. Walvoord (Grand Rapids: Eerdmans, 1957), 115-155.  

[10] 설교자로서 칼빈에 대해서, Leroy Nixon, John Calvin, Expository Preacher (Grand Rapids: Eerdmans, 1950), 29-45; T. H. L. Parker, Calvin’s Preaching (Edinburgh: T & T Clark, 1992), 1-75; W. de Greef, The Writings of John Calvin: An Introductory Guide, tr. Lyle D. Bierma (Grand Rapids: Baker, 1993), 110-117.  

[11] Parker, Calvin’s Preaching, 25-27.

[12] 칼빈의 설교에 나타난 신론을 다룬 Richard Stauffer 교수의 다음 글은 드문 예에 속한다. “칼빈의 설교신학(신론),” 박건택 편역, [칼빈의 설교학] (서울: 나비, 1990), 8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