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 레4:27-34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레4:27-34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수도원에 있을 때 꿈을 꾸게 되었는데, 사탄이 루터에게 나타나서 책을 펴 보이더랍니다. 그 책에 기록된 것을 보니까 루터가 지은 죄가 전부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어릴 적에 지은 죄, 젊었을 때에 지은 죄..., 사소한 죄까지 다 적혀 있는 거예요. 그래 놀래 가지고 있는데, 사단이 이러는 겁니다.

“네가 이렇게 더러운 죄를 짓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그 말을 듣고 보니까 기가 막힌 거예요. 죄를 지어도 어느 정도이지, 자신이 그렇게 많은 죄를 지은 줄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낙심해서 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네 죄를 깨끗이 씻었느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네 죄를 깨끗이 씻었느니라” 루터가 이 소리를 듣고는 용기를 내서 사탄에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죄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사탄이 이 소리를 듣고는 물러갔다는 겁니다.

성경 속에는 두 가지 큰 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죄이고 다른 하나는 피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보면 계속해서 죄와 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를 넘겨보면 3장에서부터 죄를 지은 이야기가 나오지요. 레위기에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을 듣고도 사탄에게 속아서 따먹습니다. 죄를 지은 겁니다. 여러분, 죄는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보세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영적으로 너무나 힘들어요.

아담과 하와를 보세요. 죄를 짓고 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압니다.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잎을 엮여서 치마를 해서 입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밑에서 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지요.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 내가 벗은 몸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벗은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왜 먹었느냐” “예 하나님, 하나님이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주신 여자, 저 여자가 열매를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하와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절렀느냐?” “예 하나님,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핑계를 댔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비참합니까?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서 입는다고 수치가 가려집니까? 하나님을 피해서 나무 밑에 숨는다고 숨겨집니까? 엉뚱한 것으로 대답한다고 하나님이 넘어가시나요? 핑계를 댄다고 용서가 되는 건가요?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무서운 거예요. 변명, 거짓 술수..., 이런 것이 죄의 산물입니다. 나중에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거예요. 죄로 인하여 멸망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삵은 사망이라고 하잖아요.

여러분, 죄를 짓고 멸망하는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다시 사는 길은 없을까요? 하나님은 피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해서 입었는데, 해가 비취니까 쪼르르르 오그라드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무화과나무 잎이라고 해도 나무에서 떨어졌으니 생명이 없게 되잖아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불쌍히 여기시고 가죽옷을 지어서 입히십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무화과 잎으로는 자기의 죄를 가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피를 통해서만 인간의 죄를 덮을 수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피가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속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는 “율법을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진다고 했고,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를 통하여 죄지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는 자기가 만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부끄러움을 덮을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양의 피로 아담의 하와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시는 피의 종교입니다. 자기의 노력에 의해서 구원받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피의 은혜로 구원받는 종교인 줄로 믿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노릇합니다. 흙을 이기고 벽돌을 굽습니다. 많은 매를 맞고 헐벗고 굶주리고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구출하게 하십니다. 이제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모세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바로가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지요. 피의 재앙을 비롯해서 개구리의 재앙, 파리 떼의 재앙, 나중에는 바로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것은 다 죽이는 장자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장자가 죽지 않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몇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흠 없는 1년 된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는 겁니다. 그 날 밤에 하나님이 다니시다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난 것은 다 죽일 것인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가겠다는 겁니다. 양의 피가 있으면 살려주시겠다는 거예요. 구원시키시겠다는 거예요. 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집트 백성들을 구별하시겠다는 겁니다. 결국 그날 밤에 피가 뿌려지지 않은 집에는 멸망이 왔지만, 양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 백성은 한 가정도 해를 입지 않고 보호 받고 구원 얻은 줄로 믿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제사는 예배지요. 크게 다섯 종류의 예배가 있어요. 첫째로 번제가 있어요. 번제는 올라간다는 의미인데,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과 승천을 상징합니다. 둘째는 소제가 있어요. 소제는 제사 중에 유일하게 피가 없어요. 피 있는 제사와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소제에는 고운가루, 기름, 유향, 소금의 네 가지를 사용합니다. 셋째로 화목제가 있어요. 화목제는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화목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제사장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제사입니다. 넷째는 속죄제가 있고 다섯째로 속건제가 있습니다. 속건제는 고의로 죄를 짓고 보상이 필요할 때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속죄제에 대한 말씀인데, 속죄제는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를 드리므로 죄가 씻어지고 저주와 불행이 씻어집니다. 이 제사는 이렇게 드립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흠 없는 양이나 염소를 끌고 옵니다. 그리고는 제물인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죄를 지은 사람이 안수하고 죽이는 거예요. 제사장은 피를 받아서 휘장 앞에 7번을 뿌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7은 완전수이기 때문에 내 죄가 완전히 깨끗하게 용서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속죄제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제물은 아무나 안 된다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특징이 있지요.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물에 이상이 있으면 안 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제물에 내가 직접 안수한다는 거예요. 안수는 전가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염소나 양에게 안수할 때에 내 죄가 양이나 염소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거예요. 세 번째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겁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사해주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사함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정해 놓으신 룰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피를 흘리며 돌아가실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에 대하여 30여 회에 걸쳐서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의 제물이 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흠이 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제물이 되셔서 피를 쏟으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은 당사자가 제물에 직접 안수하여 피를 흘려서 죽으면 죄가 전가되어 정결하게 되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고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겁니다. 어린아이들을 보세요. 세상에 그 어떤 부모가 못된 짓을 하라고 가르칩니까? 험한 말을 하라고 가르칩니까?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어디에서 배웠는지 못된 말, 못된 버릇을 얼마나 빨리하고 잘하는지 모릅니다. 하라는 것은 잘 하지 않아도 하지 말라는 것은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죄, Original sin이라고 말하지요.

호주에 가면 ‘딩고’라고 하는 야생 개가 있습니다. 고양이보다는 조금 크고 진돗개보다는 작은데, 4-50마리씩 떼를 지어서 다닙니다. 호주에 있는 과학자들이 이 야생 개를 집에서 키우는 개로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어요. 태어나자마자 데려다가 우유를 먹이고 사랑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놀아주고... 이렇게 1년 동안을 몇 사람이 노력을 했어요. 그야말로 개를 개같이 사랑해 주었어요. 놀라운 것은 1년 6개월이 지나니까 본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사람을 물고 공격하고 그래서 야생 개를 집에서 키우는 개로 만드는 것을 실패했어요. 그냥 들로 돌려보냈어요.

죄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이래요. 어렸을 때에는 얼마나 예쁩니까? 방긋방긋 웃고 부모의 마음을 쏙 빼놓지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성장해가면서 미운 짓을 해요. 옛날에는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미운 다섯 살이래요. 조금 더 있으면 미운 세 살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짓 굳은 짓을 하는지, 나이가 들면서는 무서워집니다. 미움과 시기와 생겨요. 판단하고 원망하고 정죄까지 해요. 어떤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저질러요.

많은 교육학자나 심리학자나 윤리학자들이 이런 것을 막아보려고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해도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거예요. 유아기에는 어떻고 아동기에는 어떻고, 성인기에는 어떻고 해도 인간이 변화되지는 않는 거예요. 변화되는 것 같은데 변화되지 않는 거예요. 시대가 가면서 더욱 포학해지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사람이 새롭게 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피로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죄를 씻어준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저절로 새로워지는 거예요. 내 죄가 용서받고 내가 깨끗해졌는데, 어떻게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으며, 어떻게 변화되지 않을 수가 있어요? 만일에 예수님의 피를 믿기는 하는데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우리는 보혈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보혈은 능력이 있습니다. 내 죄를 씻기 때문입니다. 내 몸에 묻은 더러운 것은 비누로 씻으면 깨끗해집니다. 산을 무너트리려면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내 심령 속에 있는 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뉘우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안 지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서 가능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서 깨끗해진다.” 인간이 지은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을 수가 있고 예수님의 보혈로서 깨끗해질 수가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예수님의 보혈로 씻지 못할 죄는 아무도 없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보혈은 능력이 되는 겁니다.

찬송가에도 있잖아요.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

여러분, 구약은 동물의 피로 정결하게 되지만, 신약은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겁니다. 구약은 동물의 피로 제사 드리지만, 신약은 예수의 피로 예배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집트 사람이냐 이스라엘 사람이냐를 보지 않으세요. 양의 피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시는 거예요. 만일에 이집트 사람들도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뿌렸다면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얼마나 다녔느냐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목사나 장로냐, 권사냐 집사냐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를 오늘 처음으로 나왔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는 사람에게는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게 되는 겁니다. 직분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예수님의 피가, 예수님의 보혈이 그 사람의 심령속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죄가 용서받고 안 받고가 달라지는 거예요.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예수님의 피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좌우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진홍 가슴새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몸이 온통 잿빛이었습니다. 이름은 진홍 가슴새인데 몸은 잿빛인 거예요. 새끼를 낳아도 여전히 잿빛인 겁니다. 이 잿빛 새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붉은 새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이 새가 갈보리 산 위를 날고 있었는데,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갈보리산 위에 세 명의 죄수들을 십자가 형틀에 묶여 있는 겁니다. 가까이 내려가 보니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셔야 하는가!”하는 말을 합니다.

잿빛 새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에 왠지 마음이 끌렸습니다. “죄가 없는데 왜 십자가에서 죽는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측은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더욱 가까이 갔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시가 온통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 가시 면류관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잿빛 새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데, 내가 어떻게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잿빛 새는 예수님의 머리 쪽으로 가까이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리로 예수님의 머리에 박힌 가시 하나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날개 짓을 뒤로 하면서 힘껏 뽑아냈습니다. 그렇게 가시를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가 뽑힐 때마다 피가 솟아나서 이 작은 새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잿빛 새는 자신의 가슴에 묻는 빨간 피를 씻기 위해서 냇가로 내려갔습니다. 물가에 앉아서 물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 안으로 들어가서 날개 짓을 하면서 자신의 가슴에 묻힌 피를 씻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의 몸에 묻혀진 빨간 피는 씻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씻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잿빛 새는 자신의 모습을 물위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름다운 색깔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너무 아름답게 변해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잿빛 새가 낳는 새끼마다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을 가진 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잿빛 새는 오랫동안의 바람이 이루어져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삶이 축복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름 그대로 진홍 가슴새가 된 것입니다.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라게를뢰프가 쓴 ‘진홍가슴 새’라는 동화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슴에는 진홍 가슴 새처럼 예수님의 보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 새의 운명을 바꾸어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사망을 생명과 구원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속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원죄의 뿌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단번에 끊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다 예수님의 보혈 때문입니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를 새롭게 했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십자가 보혈의 흔적으로 은혜를 듬뿍 받아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제물이 되셔서 피를 흘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주의 보혈 안에 살게 하시고 보혈의 능력으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보혈의 능력으로 헌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혈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경배 찬양] 예수 사랑
  • 글쓴이:두나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