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건제의 의미 / 레5:14- 19

속건제의 의미/레5:14-19


레위기에는 다섯 가지 제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다섯 가지 제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제사는 한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저지른 죄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속죄제와 속건제는 직접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제사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에 비해서 번제, 소제, 그리고 화목제는 부분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드렸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각 제사와 죄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번제는 인간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자 드렸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레 1:9)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고 그 진노의 결과인 심판을 면해 보고자 번제를 드렸습니다.

소제는 지은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된 것을 감사하기 위해 드렸습니다. 감사와 찬양과 아울러 새로운 헌신과 결단을 나타내고자 소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는 죄 때문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샬롬을 이루기 위해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속죄제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드렸습니다. 죄로 오염된 것을 깨끗이 씻기 위해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속건제는 죄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드렸습니다. 죄 이전의 상태로 원상 복구하기 위해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이렇게 죄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이것이 제사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죄가 철저하게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 사함으로 인한 감사와 찬양이 드려져야 합니다. 죄와 철저한 결별이 선언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속건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을 자세하게 살피면서 속건제의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속건제란 무엇인가?

속건제는 속죄제처럼 하나님 앞에 죄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속건제는 속죄제와는 다릅니다. 특별히 다루는 죄가 차이가 납니다.

속죄제는 하타트라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여기서 하타트는 영어로 sin이라고 번역하는 죄입니다. 그 뜻은 과녁이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을 말합니다.

결국 속죄제는 이런 하나님 말씀을 어긴 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린다고 해서 ‘죄제’, 영어로 sin- offering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더럽혀진 심령을 정결케 씻는다고 해서 ‘정결 제사’, 영어로 purification offering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서 속건제는 아샴이라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여기서 아샴은 영어로는 주로 trespass 라고 번역합니다. 한자어로는 건(愆)이라고 번역해서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해서 손해를 입힌 죄를 말합니다.

결국 속건제는 이런 남에게 손해를 끼친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침범한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린다고 해서 ‘속건제’(贖愆祭)’라고 하고 영어로는 trespass-offering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손해를 배상해서 원래대로 회복시켜줌으로 죄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배상제사 영어로 reparation offering이라고 합니다.

속건제가 다루는 죄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이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에 침범해서 그 거룩을 훼손했을 때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맏아들은 성전에 보내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가 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으로 보내지 않고 평범하게 살게 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전을 바쳐야 했습니다. 맏아들을 대신해서 레위인이 성전에서 거룩한 직을 담당했습니다. 저들이 내는 속전으로 성전을 관리하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수 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다음 아이 성을 행해 진군했습니다. 아이 성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성입니다. 그 큰 성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패를 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 원인을 말씀하셨습니다. 수 7:11에 이렇게 말씀합니다.“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위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 말씀대로 조사해 보니 아간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탐내어 숨겼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것을 침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거룩하게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범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의 설교가였던 스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내가 사용하는 자는 십일조 도둑놈이요, 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주일 도둑놈이요,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는 예배 도둑놈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자는 영광 도둑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것을 침범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침범했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 해 놓고 그 맹세를 지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한 이름입니다. 그 거룩한 이름으로 한 맹세는 거룩한 말이 됩니다. 이것을 어기게 됐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침범하게 됩니다.

겔 17:19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시드기아 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느브갓네살 왕과 맹세를 했는데 저가 그 맹세를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가 훼손 돼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가 높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영광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 유명한 작곡가 바하는 작곡을 마치고 자기 이름을 서명할 때 먼저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하”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웃의 영역에 침범해서 그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레 6:2-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 하거나 늑봉하도고 사실을 보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여기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구체적인 사례가 다섯 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남의 물건을 맡은 뒤 부인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남의 물건을 가로챈 경우입니다.

셋째,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은 경우입니다.

넷째, 남의 물건을 협박하여 빼앗은 경우입니다.

다섯째, 잃어버린 남의 물건을 줍고도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입니다.


속건제는 어떻게 드리는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건제는 다른 제사와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드렸습니다.


첫째는 자발적으로 드렸습니다.

속건제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히브리어로 아샴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단어가 명사로 쓰일 때는 배상제사라는 뜻의 속건제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동사로 쓰일 때는 “죄책감을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레 6: 5 하반절을 보면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원어 뜻을 충실하게 다시 번역해 보면 이렇습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날에 그 주인에게 줄 것이라”

그렇습니다. 속건제는 일반 재판의 결과에 따라 죄가 드러날 때 제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 죄를 고백하고 자발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눅 19장을 보면 삭개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시 세리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던 직업입니다. 식민지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다한 세금을 걷어서 일부를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 자기들이 착복했던 아지 질이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인을 말할 때 첫 손에 꼽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중에서도 장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자였겠습니까?

그런데 저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저를 인간 대접해 주셨고, 저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저의 마음에 큰 동요가 일었습니다.

8절을 보면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만난 뒤에 은혜를 받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기 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구체적으로 토색한 일이 있으면 즉 남에게 물질적으로 피해를 준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속건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자기가 하나님의 것을 범한 일이 있는지, 남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있는지 깨닫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기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범했으면 그 자체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양심이 굳어지면 안 됩니다. 삭개오처럼 주님 만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견디기 힘든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속건제의 출발점입니다.


둘째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제사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침범하여 하나님의 것을 훼손 했을 때는 물론 속건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사람의 것을 범하여 피해를 입혔을 때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 5:19를 보면 “이는 속건제니 실로 여호와 앞에 범과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아샴의 죄 즉 남의 영역을 침범하여 피해를 입혔을 때 그것이 직접 하나님께 대한 피해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대한 피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 대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우리가 남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먼저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하고, 그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범했거나 이웃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셋째는 배상을 했습니다.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 후에 구체적으로 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6:5을 보면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20%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선배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에 300만원짜리 수표와 긴 사연이 적힌 편지가 등기로 전달됐답니다. 80세 된 어떤 장로님께서 보내신 것이랍니다. 자기가 45년 전에 교회 회계를 볼 때 헌금 계수하고 일부를 가방에 두었는데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가방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너무 가난해서 배상할 형편이 못되는 것을 알고 교회가 그냥 넘어가 주었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로 갈 준비를 하는데 그 때 일이 다시 떠올라 마음이 무척 무겁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통장을 살펴보니 300만원이 남아있더랍니다. 그 돈을 찾아서 이렇게 목사님께 보냈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회개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끝이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배상해야 합니다.

눅 19장에 보면 주님께서 삭개오가 남의 것을 갚겠다고 한 뒤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상하겠다는 약속이 있은 뒤에 참된 회개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속건제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죄를 아파하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리고 배상해야 합니다.


 

 

[경배 찬양] 예수 사랑
  • 글쓴이:두나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