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막16:1-8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않느냐하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새벽 미명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는 이미 무덤은 비워져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돌을 굴려낸 것인데 이것은 예수님을 나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여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시며 제한을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십자가에서는 조롱과 나약하심과 억울하심과 고통과 수치와 멸시로 끝났지만 부활은 승리요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주 예수그리스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나라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린다는 증거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부활사건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죽으실 때 모진 고통과 수치와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면 어디로 가야 마땅합니까? 최소한 산헤드린 공회에 가서 예수님을 고소한 저 무지몽매한 당시의 지도자들 앞에 서거나 빌라도 앞에 서거나 하다못해 그 분을 찌르고 조롱한 자들 앞에 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고 계십니다. 이것은 이미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예수님이 갈릴리고 가야합니까? 로마로 가서 부활하신 주님이 영광 중에 나타나야합니다. 죽음에서 승리한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하고, 또 어리석은 자들 앞에서 항복을 받아내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좋은 일을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폼나게 로마로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신 이유는 교회를 세우려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 갈릴리로 가시고 계십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봅시다. 마16:16-2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교회를 약속하시며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부활하셔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데 교회를 통해서 감당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권세를 교회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건져 내랴\' 하는 절망에서, 죽음에서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꺼내서 죄와 사망 외에는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자리로부터 십자가로 우리를 꺼내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를 묶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란 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서에서 교회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과 같은 명칭입니다.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이름이지만 그때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의 형태로 나타내셨고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교회란 이름을 가집니다. 그래서 교회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더러움과 암흑에서 꺼내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렀습니다. 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연합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회로 부르신 것은 신령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승리를 몸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입니다. 골2:6-10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군세의 머리시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시는 분의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만함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람고도 신비함을 성도들이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부활의 승리를 모르고 그 부활하신 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의 기적과 역사를 모릅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는 능력을 모릅니다. 얼마나 우리가 충만한 능력과 권세가 있었으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마귀가 꼼짝을 하지 못하고 질병이 치유되고 하는 권세를 주셨을까요? 우리는 영적으로 보는 시각과 해석의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한 예를 들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보기보다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자기가 받은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은사를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른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어야 되는 축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붙잡아야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의 머리에 붙어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급받을 때가 없고 그 분의 권세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2:18 \'저가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그 분의 머리를 붙잡아야 그 분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능력과 신령함과 거룩함과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감사요 축복이요 신비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를 자꾸 멋진 것으로 훌륭한 교회로 만들려고 합니다. 훌륭한 교회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훌륭하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성도들의 영혼들이 성경적 신앙의 자리를 지킴으로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구제한다든지 수재헌금을 많이 낸다든지 북한 동포를 돕는다든지 이런 것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현실에 닥친 일을 외면하지 않아야 되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내용이 되고 본질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교회가 헌신한다든지 구제한다든지 하는 것은 뿌리가 아니라 잎사귀이고 꽃일 뿐입니다. 뿌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한 부활의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맨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서 일곱 교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을 무엇을 기준으로 꾸중하고 칭찬하는가를 살펴봅시다. 계시록 2:1-5까지는 에베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 사랑을 가져라’입니다. 첫 사랑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첫 사랑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신 그리스도예수와 그 분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첫사랑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놓쳤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는 언제나 죄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 답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답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는 세상으로 가버립니다. 세상 앞에 멋진 신앙, 세상 앞에 증거 받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으로 떠난 마음, 세상으로 떠난 욕망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주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십자가와 부활을 붙들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무슨 선한 것이 없고 영원한 것이 없으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살 길이 있고 영광이 있고 영생이 있고 복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합니다. 계시록 3:1-3까지는 사데 교회에게 편지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처음에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무엇 때문에 믿었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내가 교회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그 자리에서 떠났고 너희는 이제 죽어버렸다는 것인데 너희들은 왜 살았다고 하느냐입니다. 무엇에 관한 문제입니까? 십자가와 부활에 관한 문제입니다. 동일하게 십자가와 부활을 듣고 보고 믿지 않으면 죽은 자란 말입니다. 계시록 3:14-22까지 말씀은 라오디게아교회에게 편지한 내용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교인들은 자기가 성공하고 제대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아주 끔찍하게 책망하십니다. 자네들은 부자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가난하고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18절 ‘네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니까 죄와 거룩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와 보라’에 걸려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앞세워 로마로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세상에서 평가받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감사의 기준이 세상에 있습니까? 잘 살면 건강하면 지위를 얻으면 명예를 가지면 감사합니까? 그러면 장애자나 가난한 자나 연약한 자는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나병환자 촌에 가면 그들은 감사가 우리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박수를 치는데 손바닥으로 칠 수없으니까 나무판대기를 묶어서 칩니다. 그러니까 진물이 나고 피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립니다. 감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영안이 열릴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감격할 수 있는 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허락한 것이 예수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셔서 우리를 교회의 몸으로 지체로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잊지 말라야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너희의 머리가 되시고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리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 권세는 머리로부터 내려오는 권세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그러니까 교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이런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소속된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권세입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자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다시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무엇으로 말입니까? 교회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 할 일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로 부름을 받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가졌다’를 근거로 해서 순종을 요구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이 일을 우리는 이루어야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권세를 주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신 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교회를 통해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불변함과 궁극적인 승리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세상은 사라져도 교회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심판받아도 교회는 심판받지 않습니다. 영원불멸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을 보낸 것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이 성령은 어디로 연결되느냐하면 사도행전 2:43-47로 연결됩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시니라’로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먼저 교회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권능을 받아 증인된 삶을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온 사마리에 땅 끝까지 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역사가 교회로부터 시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며 그 머리로부터 공급되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교회의 몸으로 전달되어 이웃과 세계입니다. 에베소서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것이 예수님의 통치내용입니다. 이 통치내용을 받아들이는 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 통치 안에 권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족속 앞에 증인된 책임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마음으로 주님께 찬양하며 그를 높이며 주님의 이름으로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경외하고 복종하는 삶이 우리에게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 분으로부터만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 분의 영역 안에서만 삶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과 연합된 가운데 누리는 힘과 능력과 영광에 너무나 미약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분이 공무원인데요, 진급만큼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진급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사람을 찾아다니고 힘을 쓰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토록 참 가난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사가 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목사가 안 되려고 했느냐하면 그의 아버지가 세 번이나 집 팔아서 건축헌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집이 없어서 학교 다닐 때 한번도 친구를 집에 불러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칸방에 사는데 당장 입을 옷만 못 박아서 걸고 나머지세간은 모두 뜰에 내놓고 비닐로 씌워서 살았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어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는데 그거에 대해서 상처가 있어서 건축 할 마음도 없었는데 어떻게 하게 되었답니다. 교인들에게 헌금하라는 소리를 못해서 몽땅 은행 빚만 지고 있답니다.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 있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헌금하라고 해서 건축이 되고 하지 말라고 해서 건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해야 될 것 같으면 하게 만드시고 하지 못할 상황이면 그 길을 막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왜 입니까?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에도 불구하고 추악하고 잔인한 죄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 승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나타날 줄 믿습니다. 만일에 저가 이 교회 없으면 이 교회가 무너질 것 같지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가 없으면 다른 사람을 세울 것입니다. 교회는 돈이 없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성도가 많지 않아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주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네 집에 김치를 해 가지고 찾아갔는데 마침 문이 열려서 들어서는데 안에서 며느리와 자기 아들이 하는 얘기가 들리더랍니다. 며느리가 아들한테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게 뭐야?’ 그러니까 ‘당신이지’ ‘그럼 두 번째는?’ ‘애들이지’ ‘세 번째는?’ ‘우리가 기르는 강아지지’ ‘네 번째는?’ ‘장모님이지’ ‘다섯 번째는?’ ‘우리 어머니지’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화가 나서 김치에 이런 쪽지를 남기고 갑니다. 5번이 3번에게 주고 간다. 이 아들이 아내듣기 좋은 기준에서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을 주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한 몸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이제 그 분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교회로서 지체로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속에 역사와 기적과 축복과 감격과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신 귀한 것입니다. 절대로 세상을 위해 주님이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영원성을 위해서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로마로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가셔서 계속 주님의 권세로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해마다 행사로 맞이하지 마시고 그 분과 연합된 삶 속에 그 분이 하신 일을 감당하는 축복된 심령들이 되시기 원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풍성함을 누리시며 승리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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