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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상 우리는 칼빈이 그의 설교에서 기독론과 구원론의 역동적인 관계를 전개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보의 하나임(unitas)과 연속성(continuitas)에 문의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로써 우리는 칼빈이 그리스도와 율법의 실체적인 관계를 설교함에 있어서, 비록 항상 명확하게 적시하지는 않지만, 율법은 그리스도를 표상(repraesentatio)할 뿐만 아니라 현재(praesentia)를 계시한다는 사실과 그리스도는 율법의 실체(substantia)이며 완성(perfectio sive completio)이라는 사실을 신학적 전제로 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의 계시로서 본질상 삶의 규범인 율법이 신학적이며 규범적인 기능을 함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율법 가운데서(in lege), 율법을 통하여서(per legem) 계속적으로 역사한다. 칼빈의 설교에는 특정한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적(textual)이며 콘텍스트적(contextual)인 동시적 접근이 현저하다. 이로써 본문에 대한 역사적·문학적 의미가 회중에게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역동성의 근저에는 그리스도의 율법의 중보 사상이 깔려있다.
칼빈은 그의 신학적 작품들과 성경 주해 작품들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중보가 전체 역사에 미침을 주장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을 나눠주실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너희를 위하는 나의 몸이니라. 이것은 너희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흘리는 바 나의 피니라.” 주님께서 이를 행하심은 그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그 자신의 실체로 살게 하려 하심이다. 몸의 연합이 그로부터 나오고(la liaison du corps procede de luy), 그는 우리의 양식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은혜와 은사가 부족할 때 우리가 우물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물을 긷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복음이 가르쳐 준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에게 의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점점 더 강해지고 이러한 모든 은혜에 대한 믿음을 점점 더 확고하게 갖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불완전함과 연약함이 다 사라져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영광을 즐거워할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칼빈은 “중보자(mediator)”라는 말을 기독교 강요, 주석과 설교들 그리고 신학적 논문들에 광범위 하게 사용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칼빈이 이 단어를 구약시대 때 주의 사자(the Angel)의 현현(顯現)을 통한 중보자의 현재(顯在, praesentia)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구약 시대의 제사직을 설교하면서 그리스도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만약 그의 중보가 없었다면 제사장들의 피제사는 헛되고 무용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현재가 주의 사자의 나타남이나 선지자들의 환상과 관련된 성경 구절들에 국한되어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대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구약 시대 백성들의 머리(caput)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러내심을 말해 주는 성경 구절들에도 확대되어 계시된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그리스도의 중보가 율법의 전체 과정, 즉 율법의 형성, 발행, 해석, 용법과 구원의 전체 과정에 해당한다고 설교한다. 갈라디아서 3장 19-20절 설교에서 “우리의 주 그리스도는 율법의 중보자였다(que nostre Seigneur Iesus Christ a esté le Mediateur de la Loy)”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계속적(tousiours) 중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미치고, 칭의를 위한 율법의 신학적인 용법과 성화를 위한 율법의 규범적 용법에도 미친다고 말한다.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듯이 그리스도는 그들의 중보자로서 작정되었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신·구약 시대에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중보을 강조함으로써 이신칭의 원리의 구속사적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그가 설교하듯이,
만약 우리가 율법을 발행함에 있어서 중보자(Mediateur pour publier la Loy)의 역할을 감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도 우리를 위한 옹호자(advocat)가 되신다는 사실을 깊이 고려하게 된다면 그가 얼마나 선하시고 완전하신 해결책이 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시는 판결도 내리시겠지만 그 재난을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절망하거나 슬픔과 고뇌가 우리의 마음을 삼키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의 일을 합당하게 알리시고 감당하신다. 즉, 주님께서는 율법을 통하여서 우리가 자신을 부끄러워함으로써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좌절할 때마다 우리가 다시 일어나는 방법은 율법을 발행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로 정하여지신 바로 그 분을 우리가 아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힘써 배우기로 하자. 그 분이 동일한 일을 위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그 분께서는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이 일을 깨달아 알도록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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