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시험과 인간의 타락 / 창 3장

창세기 강해


사탄의 시험과 인간의 타락

창세기 3:1-7


창세기 3장은 성경에서 가장 어두운 장이다. 그것은 죄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으터 사람들이 어떻게 죄인이 되 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본 장에 기록된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한 사건\'은 신화가 아니다. 이 기사는 가공적 이야기가 아니며 단지 이스라엘 백성이 믿었던 것에 대한 기록도 아니다. 이 사건은 역사적이며,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기자들도 그렇게 이해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는 인간은(물론 예수님을 제외하고) 아담 및 하와와 관련되며 죄 인으로 태어난다. 우리가 죄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죄인인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행위를 한다. 우리는 죄인이 \'되지\'(become) 않는다
-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탄이 어떻게 인간을 유혹했는지 생각해보자.

1. 사탄의 시험은 뱀과 같이 온다.

시험은 들의 가장 간교한 짐승인 뱀과 같이 온다. 이 피조물은 그의 희생자들에게 매혹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그들을 그의 빛나는 눈으로 노려보며, 소리없이, 조용히, 보이지 않는 접근으로 몰래 엄습하며, 원형으로 사림으로 그들을 당황하게 하며, 즉시 사방에서 그들에게 오는것 같으며, 방호의 무장 - 뿔, 발굽, 이 - 를 한 다른 짐승과 같이 무장하지 않았으나 꾸불꾸불한 긴 몸둥이로 먹이를 사로잡아 먹을 수 있는 피조물이다.
이 짐승은 분명히 몇 달 동안 계속하여 죽은 상태로 있었으나 깨어났을 때, 자연 학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과 같이 원숭이를 밖으로 기어나오게 하며, 고기를 밖으로 헤엄쳐나오게 하며, 얼룩말을 밖으로 뛰어오르게 하며, 강한 자를 불러내어 씨름하며 범을 압도한다.
사탄의 시험은 이 창조물의 모양과 운동과 유사하다. 이 피조물은 오래동안 계속적인 추격으로 그 희생물을 잡을 필요가 없다. 그 희생물들은 그 범위 내에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시험은 우리의 길에 놓여 있고,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매혹되고 당황하게 된다. 그 사리(coil)는 급히 우리 주위로 모이고 그 일격은 우리의 피에 그 독을 삽시간에 퍼지게 한다.
한 번 그것이(죄) 우리를 휘감을 때 우리는 죄를 대항하여 싸울 힘을 잃는다.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바로 그 힘은 마비되거나 꼼짝 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적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한 부분을 구출하면 다른 부분이 휘말려 들게 된다. 뱀이 어디에나 모든 장벽이나 방벽을 넘어, 모든 모퉁이와 구석으로 그 길을 찾아내는 것 같이 인생이 시험을 떠나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시험은 대개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 곳에 나타나며, 우리 자신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나타난다. 이 교활한 사탄의 시험을 경계하라.(M.D.).

2. 사탄은 하와에게 금지된 선악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일으킴으로 성공한다.

자극된 호기심이 죄의 원인이다. 범죄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그것이 악을 맛보려는 열망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원래 죄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맛보려고만 생각하였다.
그가 하고자 한 것은 발명의 항해였다. 그는 추위에 떨고 얼고, 결코 외부의 추위와 어둠에서 돌아오지 않으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최종적으로 선을 행하기 전에 다른 선택의 실제적 가치를 알아보곤 싶었다.
이 위험한 욕망은 그 안에 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 신비로운것에 이끌리는본능적인 것이 있다. 회합에 참석한 베일에 가린, 또는 어떤 낯선 인물은 가장 감탄할만한 미인보다 더욱 관심을 끈다.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현상은 가장 놀라운 일몰보다 밤에 더욱 눈길을 끈다. 베일을 벗기는 것, 변장을 통찰하는 것, 신비를 설명하는 것, 이러한 것들은 항상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를 감동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이야기, 곧 자물쇠를 채운 방을 열어보는 것을 금한 이야기에는 어린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을 위한 진리도 담겨있다. \"감추어진 것\"은 우리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일으킴에 틀림없다.
왜 그것이 우리로부터 감추는가? 감추어진 것은 우리에게 무슨 중요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왜 그것을 금하는가? 우리에게 아무래도 좋은 것들은 우리의 길에 분명하고도 숨김없이 놓아 두었다. 그러나 행위가 금지된 것들과 관련하여 있을 때 그것이 우리와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었을 때 그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가를 알고싶어 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이것에 덧붙여서 젊은이의 불완전한 의식을 말하겠다. 그들은 자라고 싶어한다. 항상 소년으로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성년의 표시들을 갈망하며, 그들이 성년과 많이 일치한다는 것과 생의 양식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반적으로 성년에 이르는 길을 잘못 안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보다 넘은 자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양심이 지정한 한계를 범할 때 더욱 철저히 성년(men)인 것같이 느낀다.
그들은 마치 엄격한 도덕의 울타리 밖에 새롭고 멋진 세상이 있는 것같이 느끼고 그 경계(변경)에서 흥분으로 떤다. 그것은 치명적인 잘못(망상)이다. 악을 직면하여 오직 선을 택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성년과 실제적 성숙에 도달하게 된다. 참된 인간됨은 주로 자제, 자연 및 하나님의 법을 기다리는 인내로 되어 있으며, 소년이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의 장벽을 부수고 악을 앎으로 말미암아 성장을 하려고 노력할 때 바로 그것이 구하는 참된 진보는 얻지 못하고 그것이 흉내내는 성년을 빼앗긴다.

3. 이 위험한 경험으로 고조된 열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에 대한 불신의 단계에 들어선다.

사람은 금지된 향락에 직면하여 하나님이 마치 우리를 즐겁게 하기를 싫어하고 있는 것같이 느끼도록 시험을 받는다. 사람은 금지된 것들에 직면하여 뱀(사탄)의 말을 기억하고는 \'아무런 손해도 우리의 도락으로 초래되지 아니할 것이다. \'금지는 필요없는, 부당한, 불친절한 것이고, 금지는 우리의 악령의 어떤 진정한 요구에 기초되어 있지 않으며 겁많고 어리석은 금욕주의적 산물이다. 그것은 우리를 초라하고 폭 좁은 생 (生)에 가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와 선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하나님에서 우리를 위해하는 선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알고,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보다 더 부요하고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흐트러지고 이미 우리는 그의 힘을 놓치고 죄와고통과 부끄러움에 인도하는 풍조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요\"라고 말하는 곳에서 우리가 \"예\"라고 말할 때, 하나님이 사망이 있다고 말한 곳에서 우리가 바람직한 것을 볼 때, 우리가 마음에 맺히도록 하나님을 불신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자유를 찾아 사는 대신에 장벽을 부숴버림으로 자유를 찾아 살려고 애쓸 때 우리는 모든 악으로 달리는 고속도로에 있는 것이다.

4. 한번 악을 맛본 것이 악으로 이끌어간다.

만일 우리가 인간의 역사를 안다면 한번 악을 맛본 것이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다는 것을 읽을 때 놀랄 수 없다. 그것은 항상 그렇다. 사람은 한번 악을 맛봄으로 하나님과 양심과 생활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일변시킨다. 그것은 진정한 키르케의 잔(Homer작Odyssey에 나오는 요부 )이다.
죄의 실제적 경험은 개심한 주정뱅이가 알콜을 한벗 맛보는 것과 같고, 어린 범이 피를 처음 맛보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잠복한 마귀를 불러내고 우리 안에 어떤 새 본질을 창조한다. 한번에 그것은 모든 평화, 기쁨, 자존심,결백의 담력을 없애버리며 우리를 범죄자들 속에, 부끄러워하는 자, 자기 경멸하는 자, 희망없는 자속에 넣는다. 그것은 빛나는 영예로운 선한 것에서 우리를 딴 길로 끌어들이는 불행한 사상을 우리에게 소유하게 한 채로 내버려 두며, 물을 흘러나오게 하는 것과 같이 그것은 우리 안에 악의 샘을 개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일보(one step)에 불과하나 벼랑 위에 사다리 같은 것이며, 광산의 수갱을 내려가는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5. 죄의 첫 결과는 부끄러움이다.

범죄 후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말대로 눈이 열려 선악을 알게 되었으나 오히려 개화의 꿈에 대한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순진(결백)에 악을 투입하고 선에 대한 새로운 의식은 하나님의 지식과 유사하면서도 전혀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창3:22). 이러한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다르고 순진(결백)과 다른 것은 병자가 그의 몸이 아픈 것을 아는 것이 의사의 진단 및 건강한 자의 평안함과 다른 것과 같은 것이다.
선악을 아는 지식이 인간에게 오는 형태는 벗었음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범죄 가 하나님께 드러났음에 대한 자각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해 주는 것은 죄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거당했다는 자의식이다.
뱀의 약속이 그러한 의미에서 깨뜨려졌지만 어느 정도는 성취된 셈이다. 아담과 하와의 눈이 열려(밝아) 자신들의 벗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아 성찰이 시작되고 양심의 첫 움직임은 수치를 낳았다. 그들이 유혹에 저항했더라면 양심이 자아 정죄의 방향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지 만해도 그들은 어린 아이처럼 자신들에게 외적 인 것만을 의식해 왔었다.
그러나 이제 선악에 대한 선택력의 자각이 생겨나고 그것의 첫발동이 부끄러움을 수반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내부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자신들이 그분의 눈에 합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등 동물들은 선악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옷을 입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자의식이 아직 잠재해 있으므로 덮어 가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그들의 행동은 자기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되어 그리스도처럼 영화롭게 된 자들이 옷입혀 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는 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이 옷을 입은 것과 숨은 것은 진리의 심판을 면하고자 한 유죄 의식에서 비롯된 무용한 시도였던 것이다.(참조: M.D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