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강해 최초 인간의 상태와 선악과 창세기 1:26-27; 2:15-17 이 영원히 생생한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원시 상태에 관한 기사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공상적인 것들에 물들인 마음으로 이 기사를 읽으면 이 기사의 분명하고 온건한 진술이 이런 공상을 없애지 못한 자들에게 거는 제동에 거의 깜짝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기사를 확인내지 확신하기 위하여 몇번이고 읽어야 하며 인간의 원시상태에 대한 이 선명한 묘사들을 지지하는 어떤 것도 빠뜨리지말고 읽어야 한다.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상호간의 협의의 결정으로, 자기들, 곧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 1:26-27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복수 대명사 \"우리의...우리의...우리가\"는 신격의 복수성 곧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심을 보여준다. 확실히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비물질적 요소, 즉 인간이 동물과는 달리, 지(知), 정(情), 의(意)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하나님 - 성부 - 성령 - 성자 * * * * - 지식 - 거룩 - 의(義) 사람영 - 지식 - 거룩 - 의(義) 사람혼 - 지知 - 정情 - 의意 사람몸 - 지각 - 감각 - 행위 사람의-선지직 사제직 왕직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인 지식(혹은 진리)과 거룩과 의(義)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형상은 위의 도해에서와 같이 인간의 영, 혼, 몸의 전인간에 미치고 있다(참조: 엡 4:24; 고전 1:30). 2. 확실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결백하고 하나님과 친교하는 복된 인간이었다. 인간은 묘사된 대로 결백하고 하나님과 화목하여 있었으며 이 점에서 여하한 말로도 인간의 행복을 표현할수 없다. 다른 점에서 성경의 언어는 의외로 온건한 것이었다. 사람은 열매(실과)를 먹고 옷을 입지 않고 살았으며, 보여진 바로는 태양의 열이 나 밤의 추위에서도 무슨 인위적 보호물 없이 살았다. 예술의 어떤 것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 금속으로 만든 도구들은 발견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는 매우 초기 단계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을 장식하고 여기가를 즐기는 음악과 같은 예술도 아직 미래에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동산은 인간이 충분히 즐기며 발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인간은 이 동산을 경작하고 보살피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은 또한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다스릴 책임도 받았다. 3. 그러나 인간의 원시 상태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에덴 동산의 두 나무로 표시된다. (1)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 곧 불멸을 수여하는 열매의 나무가 서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래 죽음을 면제받은 존재는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히 불멸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이 능력은 실제적으로 인간을 불멸하게 했을 것이다. 생명과의 나무의 신비성은 우리 주님께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또한 요한이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였을 때 신약에서 충분히 인정되었다. 이 두 표현은 인상적이며 회화적인 형태로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전하기 위하여 작정되었다. (2) 미래의 낙원에 서 있는 생명나무에 대하여 \"그 두루마기를 빠는(명령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에덴에서 인간의 불멸도 복종의 상태에 달려있었다. 인간의 복종에 대한 시련은 다른 나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상징되어 있었다. 인간은 그가 본래 지닌 어린 아이 같은 결백에서 단순한 결백이 아니라 시험을 직면하여 유지된 결백으로 되어 있는 도덕적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었다. 미개인은 문명 인이 범하는 많은 죄에 대하여 결백하다. 그러나 이는 그가 그러한 죄를 범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성인의 무슨 악행들에 관하여 결백하다(이는 아이들은 아직 그런 악행을 저지르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상태에 있으며, 아직 그가 그러한 시험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백은 환경의 결과요, 성격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니 만일 미개인이나 아이가 성숙한 도덕적 존재가 되려면 변경된 환경과 시험과 기회로 시험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시련이 필요하며, 이 시련은 지식의 나무(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표시된다. 이 나무의 열매는 금지되어 있는데 그것은 금지된 것에 직면하여 오직 사람이 도덕적으로 테스트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인간이 도덕적 성숙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본능의 추종으로가 아니라 율법과 자제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3) 금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선과 악의 차이를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선(good) 이 그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위치에 놓여 있다. 양자택일은 그의 마음에 있는 것이며, 악을 제쳐놓고 선의 선택은 그에게 가능한 것이다. 이 나무의 면전에서 어린 아이 같은 결백(무사기)은 벌써 불가능한 것이었다. 성년의 자기 결정은 항상 요구된다. 양심, 지금까지는 잠재적인 양심은 지금 깨어나 인간의 최고기능으로서의 그 자리를 취하게 된다. (참조: M.DOD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