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유혹에 넘어간 인류의 어머니 하와 / 창3:20-25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인류의 어머니 하와/창2:20-25
오늘은 인류 최초의 여자이며,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신 하와를 통해 교훈을 얻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 또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하와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아내이며, 하나님께서 아담처럼 성장과정없이 직접 성인으로 창조한 인류 최초의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생각하신 나머지 아담의 배필로 그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끌어오자 아담은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하고 그 이름을 여자라 칭하였습니다.
하와의 별명을 ‘아담의 갈빗대’라 하는 이유를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아담의 머리뼈로 만들지 아니했고, 남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그의 발가락 뼈를 취하지 아니했다. 오직 둘이 한 몸이 되어 동반자가 되도록 옆구리로부터 취한 것이다.”
여기 갈빗대는 옆구리를 가리키는 말인데 루터는 말하기를 “남자는 옆구리의 갈비뼈가 없어지는 고통과 공허를 통하여 여자를 얻게 되며, 여자를 얻으므로 그 고통과 공허는 기쁨으로 변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상당히 깊은 의미를 지닌 말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그의 신부인 교회가 탄생된 사실과 직결됩니다.
하와는 여자들의 심리와 속성을 대표할 만큼 여자들의 성향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입니다. 허영심도 있었고 욕심도 많았으며 현재보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자기과시에 대한 욕망이나 호기심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현대여성이나 같을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마귀의 유혹에 따라 자기도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뱀과 여자와 아담의 순으로 형벌을 선고하시되 여자에게는 해산하는 수고를 더하셨고 남편을 사모하면서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하였습니다.(창3:14-16)
하와라는 이름은 타락이후에 지어진 이름으로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며 아담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가인과 아벨과 셋을 출산하였습니다.(창4:1)
하와에 대하여 좀 더 상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1. 시대적 배경
타락 이전 에덴에서 아담이 완전한 상태에서 생활할 때 그의 배필로 창조되어 인류 최초의 가정으로서 완전한 행복을 맛보았으나 곧 이어진 타락으로 인해 인류역사 최초의 고통까지 경험하였습니다.
2. 성품
① 아담이 한 눈에 사랑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육에 소유자입니다.(창 2:23).
② 하나님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유혹에 빠진 점으로 보아 마음이 여리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성격인 듯함.
(창 3:1-6).
③ 타락 후 회개하기보다는 서로 죄를 전가한 점으로 보아 자신을 정당화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던 듯함, 즉 자신의 범죄 책임을 뱀에게 돌리는 소심한 성품입니다.(창 3: 11- 13).
④ 말씀을 따르는 의지적 성품보다는 본능적으로 행하는 감정적 성품입니다. 즉 약속이나 명분보다도 본능적 욕망에 쉽게 넘어가는 유약한 성격임.(창 3:6).
3. 구속사적 지위
①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그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고 그의 신부된 교회를 예표합니(창 2:18-25;엡 2:22-33).
② 역사상 최초로 사단의 유혹을 받고 넘어간 인간이며 남편 아담에게도 그 죄에 동참시킴으로서 사단의 유혹에 약한 인간성을 노출시킴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유혹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죄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③ 하와는 자신의 모든 불순종과 타락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 후손을 이 땅 위에 남겼을뿐만 아니라 아담의 신실한 내조자로 아름다운 가정의 본을 후세 사람들에게 유산으로 남김.
4. 주요 공적
아담의 배필로서 인류 최초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창 2:18,22,23;4:1).
5. 주요 실수
① 뱀의 유혹으로 타락하고 남편도 타락케 해 그 안에서 모든 인간이 정죄 당하고 사망 가운데 거하게 하였습니다.(창 3:6;롬 5:16-18).
② 하나님으로부터 죄악에 대한 책임을 추궁 받을 때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기에 앞서 그 책임을 뱀에게 돌림(창 3:13).
6. 인류의 첫 어머니 하와
잘 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오는 동안 즐겁고 행복한 일들도 있었고 슬프고 힘든 날들도 있었으나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면 그것을 처음 여자 하와의 탓으로 돌립니다.
“아담이 꾐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꾐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 2:14)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하와를 원망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욥이 고난당하고 있을 때 찾아온 빌닷의 충고에서 여자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이 한번 나올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욥 25:4)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을 강조하여 표현한 말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와의 문제를 거론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타락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 하와를 지목합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잘못된 길을 가다가 회심한 바울은 하마터면 자신을 멸망에 빠뜨릴 뻔했던 죄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다가 그 끝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를 발견하고 모든 문제가 거기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이브’는 ‘하와’의 헬라어 형태입니다. 어쨌든 뱀의 미혹을 당한 하와 때문에 바울은 여자들이 기도할 때에 머리에 무엇을 쓰라느니(고전 11:13),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좋다느니 까다로운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독신으로 살았으니 망정이지 사나운 아내라도 있었다면 그 얼굴을 할퀴어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와는 정말 그렇게 경솔하여 쉽게 잘못을 범하고 책망 받아야 하는 존재였던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실 때의 정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흙으로 빚으시지 않고 아담의 가슴에서 취한 갈빗대 즉 더 나은 재료로 만드셨습니다. ‘돕는 배필’의 돕는다는 말은 구해낸다는 뜻의 ‘에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그의 고독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호기심이 강하고 모험적이며 사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왔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배필로 주시기 위해 손수 만드신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을 것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그녀의 관심은 당연히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오직…’ 먹지 말라는 그 나무에 쏠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벼르던 뱀이 미혹하기 좋은 상대는 아담이 아니라 모험적인 하와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단다”
뱀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의 호기심은 죽음보다도 강했습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금단의 경계를 넘어서기로 했던 것입니다. 불순종의 저편에 비록 고통과 죽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미지의 세계를 기어코 열어보아야 하겠다는 욕망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그것은 여자를 미혹한 뱀에게 내린 저주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모두 죄악에 빠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독생자를 여자의 아들로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아픔을 당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자유의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금단의 실과를 나누어 먹고 에덴동산을 나온 하와는 그 후로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녀의 첫 아들인 가인이 아우 아벨을 때려죽이는 최초의 살인을 목격했고 죽은 아들에 대한 애통과 죽인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통과 아픔은 그녀의 모든 자손들에게 유전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고마움보다 원망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마지노선마저 돌파해버린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 성품과 상상력으로 온갖 화려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만들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고 고통과 실패를 자초하기도 했으나 인간의 드라마는 그만큼 다채로웠습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인류는 반역의 문화로 하나님을 대적했으나 그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너무 적막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와가 금단의 실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나름대로 행복했을지 몰라도 모차르트나 셰익스피어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마음먹은 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진취적 성품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아들이 장자권을 물려받지 못하게 목숨 걸고 저지했던 리브가의 결단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마리아의 결단은 모두 그러한 하와의 성품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우리 모두의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습니다. 하와는 금단의 실과를 먹어 죽음을 초래했으나 성경은 그녀를 죽은 자의 어머니가 아닌 산 자의 어머니로 기록했습니다.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 2:20)
인류의 어머니 하와를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1. 하와는 죄를 짓자마자 수치심과 공포를 갖게 되었으며 결국 에덴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죄의 비참한 결과를 말해주며 죄로 인해 반드시 생기는 무서운 결과를 미리 확인시킴으로써 악에 대해 우리를 경계하도록 해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고서는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죄의 수치를 가리려는 노력은 칭찬할 만한 일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절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저들을 찾아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 가죽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심으로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신 것 같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의(義)를 이루시고 그 의의 옷을 입혀 주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롬13:14, 갈3:27)
2. 사탄의 접근은 실제적이며 교활합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을 때 그에 반응함으로 결국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타락하였습니다(창 3:1,2). 여기에서 우리는 사단 또는 거짓된 자들이 미혹하러 접근해 올 때 반응조차 하지 않음으로 죄악된 길을 벗어나야 함을 배웁니다.
3.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을 때, 선악과를 따먹을 경우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소홀히 함으로 선악과를 따먹어 타락하였습니다(창 3:2,3). 여기에서 우리는 \'등\'이요 \'빛\'(시 119:105)인 말씀을 견고히 붙잡지 못하거나 왜곡할 때 타락하게 됨을 보아 항상 말씀을 그대로 깨달아 견고히 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을 때 특히 그 선악과 나무를 보고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창 3:6). 이는 하와가 보는 것, 육신적인 욕구, 정신적인 욕구 등에 현혹되어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까지 어기며 타락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은 요한 사도가 말한 바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어서 타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을 배웁니다.
5. 하와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사단의 말에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 눈이 밝아지기는 하였으되 추하고 악한 측면으로 밝아져서 그 결과 수치심밖에 느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우리도 하나님의 명을 듣지 않고 죄의 길로 들어서면 자기 욕심대로 잘될 것 같으나 그 결과는 수치와 형벌뿐입니다(롬 6:23).
6. 하와는 타락 후 눈이 밝아져 자신의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했을 때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리우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수치를 영원히, 온전히 감추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후에 짐승을 죽이시고 만들어주신 가죽옷은 그녀의 수치를 온전히 가리워 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자신의 수단, 율법적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자신의 죄와 수치를 감출 수 없음을 배웁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범죄 했을 때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믿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가야겠습니다.
7.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사건은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잘 보여 줍니다. 하와는 스스로를 뱀과의 대화에 말려들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과 의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것에 가까이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또한 조그만 유혹에도 쉽게 끌려가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달음으로써 더욱 경외와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8. 징벌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끊임없는 반역과 범죄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그분의 다함없는 사랑과 명백한 구원 의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창3:15-21).
9.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사건은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결과를 잘 보여줍니다.
10. 하와는 감정을 소유한 실제적 인물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도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고 실제적 인물입니다. 즉 그들은 실제적으로 자녀를 낳았고 진정으로 마음의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11. 인간타락의 일차적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긴데 있습니다.(창2:17)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시며 그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또 하와는 하나님의 금령을 소홀히 여겼기에 사단의 유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길 때 사악한 영이나 유혹자의 유혹에 빠져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포로가 되고 맙니다. 또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곁을 떠나 결국 거짓을 믿게 되는 강력한 미혹에 빠져 들게 됩니다.(마24:4)
12.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창2:18) 그러므로 여성의 사명은 내조에 있습니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고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딤전2:9-12) 여성의 기본적인 덕은 순종입니다.(벧전 3:1-5) 아무리 훌륭한 재능과 수완을 가졌어도 이 덕성이 결여된 여성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은 오늘날도 우는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먹이를 찾아 다닙니다. 경계하십시오. 우리는 이런 유혹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대적합시다. 마귀의 시험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물리치신 예수님처럼(마4: 1- 11)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시단의 유혹을 대처합시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뱀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의심과 불순종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유혹은 무엇입니까? 혹시 말씀을 의심하고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타락과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는 아담과 하와 처럼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죄에 대해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곧 결단하고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이 세상의 유혹이 나를 현혹시키며 달콤하게 다가올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말씀으로 이기게 하옵소서. 유혹을 외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나에게 믿음을 더하여주옵소서.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어 죄의 유혹을 즐기려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소서. 죄에는 그에 수반되는 영향력이 있음을 기억하며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