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 창6:1-8

하나님의 역사/창6:1-8


요즈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이야기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모두 역사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신앙생활 하면서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도 받는데 어느 사람은 신앙생활 하면서 늘 힘들고 어려운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한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기만 한다면 크게 주의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 (잠2:4-5)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 13)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은 모두에게 찾아지고 만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상황이나 여건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으면 길이 열립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

우리의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축복이 되게 하려면 하나님이 역사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흥망성쇠와 우리의 생사화복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흥망성쇠가 계속 반복되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잘 살게 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상이 망할 것 같이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법칙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사람의 손에 있고 사람의 손에 의해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만 보면 안 되고 이 세상을 주장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인류역사를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높은 자리의 권세를 얻으면 교만해지고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다가 망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헤롯왕이 그런 사람입니다. 헤롯왕이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했더니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마치 하나님처럼 우러러 보고 높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충이 먹어 죽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도 그런 사람입니다. 바벨론은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를 장악한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또한 이 나라처럼 빨리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다니엘 4장에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꾼 것이 나옵니다.

『내가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 왔는데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이는 순찰자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단 4:13-17) 지극히 높은 자는 하나님인데 자기의 뜻이란 하나님의 뜻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제일 잘 나고 똑똑해서 복 받고 성공한 줄 아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지극히 천한 자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1. 역사란 무엇인가?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을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뒷걸음치는 법이 없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시간처럼 언제나 앞으로 나아갑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말합니다. 역사는 돕니다. 그러나 쳇바퀴처럼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도는 것이 아니라 나사처럼 돌면서 위로 올라갑니다.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며, 위를 향해 발전하는 것입니다. 역사란 말을 영어로 History 라고 하는데 이는 His + Story를 합한 말로 \"그의 이야기\" 즉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시발이요, 주인이시며 섭리자이십니다. 즉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창1:1)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2. 역사의 길
역사란 면면히 이어집니다. 갑자기 나타나는 현실이란 없는 것이며, 오늘은 다만 어제의 결과일 뿐입니다. 새로운 문명에 대한 인식전환의 부족 또는 무관심이 그 뒤 나라의 상실과 가난, 분단, 치욕을 줄줄이 몰고 온 것입니다. 발전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요구합니다.

역사의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자랑스런 역사의 길, 부끄러운 역사의 길! 뒤돌아볼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두 갈래 길입니다. 사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남긴 작은 족적 하나 하나가 면면히 이어져 자기의 길이 만들어집니다.

역사는 누가 이끌고 가는가? 역사의 실타래는 복잡해도 실마리는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지구상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였던 러시아를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무신론적이고 반 기독교적이었던 나라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기독교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백성을 피로 물들인 붉은 광장 레닌의 묘소 앞을 성경을 끼고 지나가는 선교사를 보았을 때, 고르바초프가 끔찍히도 사랑했던 라이사 여사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았을 때 이 질문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누가 이토록 강력하던 나라를 무너뜨렸는가? 누가 독재자의 나라를 해방시켜 선교사의 입국이 자유롭고 교회가 여기저기 세워지는 나라로 만들었는가? 1989년 한 해만 해도 당시 소련의 지배를 받던 동독 폴란드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유고 몽골 등이 일시에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것도 폭력과 싸움 없는 평화로운 과정을 통해 독립과 자유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소련의 군대는 무엇을 했는가? 왜 그들은 동맹국들의 이탈을 막지 못했는가? 역사가 토인비의 이야기가 맞습니다. 그는 주저 ‘역사의 연구’에서 “모든 역사는 그 껍질을 벗기고 보면 결국 영적인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언뜻 보면 역사는 지배하는 사람의 소유물같이 보입니다. 제도나 군대나 이데올로기가 그 통치의 힘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본질에 있어 영적입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유는 그 역사가 영적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이라는 성경의 기본 진리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휴머니즘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 속에 독버섯처럼 숨어 있는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발전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은 결국 그 존재의 근원인 영적 기반이 흔들려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역사는 결국 변하든 망하든 둘 중 하나의 선택 앞에 섭니다. 하나님 없는 역사는 탄식과 허무의 역사입니다(롬8:22).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않을 역사도 없고 드러나지 않을 과거도 없습니다(히4:13).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오늘도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일하십니다.

역사는 신의 섭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요 계시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예언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의 주요 행위자로서의 인간 역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입니다.(창1:26-28, 시139:14-16, 행17:24- 26)

3. 역사의 심판
아프리카를 개척한 영국의 대표적인 탐험가는 세실 로드와 데이비드 리빙스턴입니다. 로드는 아프리카 원주민 수십만 명을 학살하고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벌어들임으로써 \'애국자\'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노예제도와 영국의 침략정책을 강력히 반대해 \'반역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로드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돼 국내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잇습니다. 역사가 두 사람을 심판한 것입니다.

찰스 베어드라는 역사학자는 역사의 연구결과 세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즉 개인이나 권력자나 탐욕을 갖게 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심판의 맷돌은 천천히 도는 것 같아도 \"미세한 불의\"까지 반드시 갈아내고 모든 악을 선으로부터 갈아낸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벌이 꽃에서 꿀을 강탈해 가지만 그 \'강탈\' 때문에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역사나 인류도 \'벌 같은 존재\'에 의해 \'강탈\'당할 때가 있지만 오히려 역사는 번영하고 인류는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개인의 심판도 그렇지 않을까요?

5. 역사의 흐름을 변화시킨 생수의 강
어느 날 역사의 한 기점에서 역사의 주인은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이라고 선언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아들로 세상의 주인 행세하던 사단의 계략을 꺾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 임금과 철학이 상상할 수 없던 죄악을 이기신 그분의 지혜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로 역사의 주인 되게 하시고 그는 말씀하십니다. 그를 입맞추라고. 그를 사랑하라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12일은
1) 세상의 창조-(창.1장) 2) 인간의 창조-(창.1,2장) 3) 이스라엘의 탄생-(창.12장) 4) 교회의 탄생-(행.2장) 5) 구약성서의 완성-(말.4장) 6) 신약성서의 완성-(계.22장) 7) 그리스도의 탄생-(눅.2장) 8) 그리스도의 죽음-(마.27장) 9) 그리스도의 부활-(마.28장) 10) 그리스도의 승천-(행.2장) 11) 교회의 휴거-(살전.4장) 12) 그리스도의 재림-(계.19장)

<예수의 역사 2천년>이라고 하는 책이 얼마 전에 출간되었습니다. 예일대학 교수, 자루스라브 페리칸이라고 하는 박사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찰한 그런 책입니다.

그는 이 책 속에서 세계의 모든 역사는 곧 예수의 역사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예수를 영접했느냐, 예수를 배반했느냐, 또 예수께 충성을 다 했느냐, 아니면 예수의 진리를 져버렸느냐, 이에 따라서 모든 나라, 모든 개인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상당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그런 책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세계 도처의 수많은 인간들 속에 살고 계십니다. 그는 인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입니다. 비관적 사고가 될 수 이는 모든 이유를 가지셨으면서도 낙천적인 사고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과중한 세금과 정치적 자유가 없는 억압당하는 무리에 속한 자이셨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세상적인 권세와 영향력 있는 친구들도 없으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생 동안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였습니다. 종말에는 하나님도 그를 버리신 것처럼 생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해 버릴 만한 모든 이유를 가지고 계셨으면서도 역사의 흐름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6. 하나님의 역사
세상이 분요할 때마다 묻게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은 누구의 세상인가?’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 세상이 사람의 세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인본주의의 생각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상대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이 세상을 사단의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독교적 비관주의는 우리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도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생각을 주님은 비웃고 계십니다. 이 세상은 그분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잠시 세움을 받은 소위 지도자들이 자꾸 반 그리스도적이고, 반 신본적인 정책으로 세상의 참된 주인 되신 이의 뜻을 거스리고,

주인의 법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세상 도처에 세움 받은 모든 지도자들의 행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뒤엎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으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하십니다.
이 세상의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섭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감사와 감격 속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방법을 생각하고 그것을 시작할 수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16:9)

둘째,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창조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은 준비된 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를 통하여 이루실 때 내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모르던 왕이 세상이 다스릴 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사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시기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애굽의 바로가 강력한 통치자로 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세우셔서 요셉이 애굽과 전 세계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또 느부갓네살이 전 세계를 장악할 때도 그 바벨론을 실제로 다스린 자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아주 장성해서 바벨론이 망하고 나서 메대와 바사로 나누어졌을 때도 살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국무총리로서 그 나라와 세계를 다스렸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왕권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있지만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역사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 때에는 느헤미야를 세우시고,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 때에도 에스더를 세우셔서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성도는 하나님의 대사로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사6:8)

셋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길은 기도하는 자에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과 능력은 기도하지 않으면 내게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상황에서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하는 자가 이루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소유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뜻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그 뜻을 실천할 능력을 받게 됩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능력을 소유하므로 나를 통하여 역사를 이루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과정은 참으로 한편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배경에도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고 배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후손에 대한 교육의 효과를 위해서 입니다.(출12:26,27, 롬15:4)
둘째,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예언 및 예표를 위해서 입니다.(민21:6-9, 요3:13- 15)
셋째, 신앙의 경고와 본을 위해서입니다.(민25:1-9, 히3:7- 4:11)

넷째, 현재 성도의 믿음의 확증을 위해서입니다.(롬4: 1- 25)
다섯째, 현재 성도의 믿음에 용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신31:4- 6)
여섯째,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호4:1, 약1:5)
일곱째, 미래 사회를 예측, 대비키 위해서 입니다.(마24:32, 33)
여덟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입니다.(신29:14, 히12:1)

하나님은 세계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개인들에게 직접 개입하셔서 역사를 주관해 오셨으며, 역사에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의 자녀들을 존대케 하여 높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에 직접 개입하셔서 인도해 주신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직접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시게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도록 영접하셔서, 하늘의 영광과 존귀한 역사를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역사의 주인 되신 주님이시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희망을 잃고 방황할 때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 우리는 당신만이 역사의 유일한 희망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로 주님만을 경배하게 하시고 주님만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