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 개관
욜 1:1절
(204, 90장)
새벽설교1
할렐루야! 오늘부터 요엘서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새벽은 영감이 번뜩이는 시간입니다. 고로 새벽에 드리는 기도와 묵상은 여느 때보다도 큰 은혜가 있고 의미도 남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요엘서를 살피는 이 새벽시간에 깊은 영감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쳐나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간구와 기도의 제목이 다 상달되고 응답되어지는 큰 은혜가 주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므로 요엘서의 굵직한 개요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요엘서의 저자
요엘서의 저자는 ‘브두엘의 아들 요엘’입니다. ‘요엘’이란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으로써 확고한 신앙고백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단지 그의 아버지는 ‘브두엘’입니다.
‘브두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성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시대적인 배경은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는 때입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의 성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 브두엘과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요엘을 생각할 때,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한 신앙을 지녔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온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그 때에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떳떳이 주장한다는 것은 실로 담대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담대한 신앙을 가진 요엘을 선지자로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이렇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요엘이 믿음의 가정에서 바른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엘의 아버지 브두엘의 뜻이 ‘하나님의 성실’ 인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성실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가정에서 먼저 신앙적으로 잘 교육하고 양육하십시다. 부모님의 믿음을 따라 우리의 자녀들이 배우고 부모 믿음의 영향을 받아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녀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부모된 우리가 가정에서 먼저 신앙의 본을 보여줄 때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안에서 큰 그릇으로 양육되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요엘서의 핵심단어
요엘서의 핵심단어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남유다 백성을 향하여 메뚜기 재앙과 한재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고였지만 최후의 심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메뚜기 재앙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고 범죄를 계속하는 자들은 반드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이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 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엘서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준엄한 최후 심판의 날에 멸망이 아닌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요엘서의 핵심절
요엘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2:13절입니다.“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합니다.
겉으로 아무리 경건해 보일지라도 마음이 시커멓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겉은 초라할지라도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요엘 선지자는 겉옷을 찢는 회개의 모습이 아니라, 심령을 찢고 마음을 찢으며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기도, 찬송, 봉사,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중심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항상 중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모습을 지니시기를 바랍니다.
내일부터는 요엘서의 내용을 살펴가면서 주시는 대로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순간 순간에 성령의 감동하심과 충만하심이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파도처럼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메뚜기 재앙에 담긴 메시지
욜 1:2~4절
(428, 486장)
새벽설교2
요엘 선지자가 언제 활동하였으며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학자들은 요엘의 활동연대에 대해 여러 가지를 학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 학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자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주장은 남유다 왕국의 8대 왕 요아스(B.C. 835~796년)의 통치 초기일 것으로 봅니다.
이 시기는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워 남유다의 정치적 종교적인 개혁을 감행하던 즈음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때 갑작스런 메뚜기 재앙과 한재가 겹침으로 남유다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 찾아온 메뚜기 재앙은 여느 때와는 다른 아주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왔습니다.
1. 지금까지는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최고의 재앙이었습니다.
2절에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그럽니다.
너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지 못했던 재앙이요, 조상들도 이만한 재앙을 만나보지 못했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만으로도 닥쳐온 메뚜기 재앙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던 것이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역사 이래로 보지 못했던 큰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2. 이 재앙을 후손 대대로 전하여 주라고 합니다.
3절을 보십시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자손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려주어서 후손들까지도 이 사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수천 년 전의 사건을 기록하여 후손 대대로 성경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 때의 사건을 알아야만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사건을 알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의 역사적 사건을 후손들에게 전하여주고 들려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이 당했던 메뚜기의 재앙을 후손 대대로 알게 해주라는 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 재앙에 담겨진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니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그랬습니다.
여기서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 이것들은 모두 메뚜기를 일컫는 히브리어의 각기 다른 단어들입니다.
이는 엄청난 메뚜기 떼의 습격을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메뚜기 재앙이 간격을 두고 네 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임한 것을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무서운 재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3. 그러면 요엘 선지자는 이 재앙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메뚜기 재앙으로 남유다 전체가 혼돈에 빠져있을 때에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보내셔서 메뚜기 재앙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셨습니다.
이 메뚜기 재앙은 앞으로 닥쳐 올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경고라는 것입니다.
메뚜기 재앙은 남유다와 팔레스틴 지역을 황폐케 하였으나 다가 올 여호와의 날에는 온 인류가 심판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메뚜기 재앙은 팔레스틴 지역 일대에 덮쳤습니다. 그렇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연의 재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 재앙은 장차 다가 올 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요엘 선지자처럼 자연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이 안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연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건을 보고 주님의 섭리를 발견하며 더욱 겸손한 믿음의 모습을 지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요엘 선지자의 외침
욜 1:5~20절
(404, 188장)
새벽설교3
우리 주변에 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입니다. 슬픔에 빠져 있다거나, 절망에 빠져있다거나, 재해를 만나 힘들어 할 때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위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요엘 선지자는 큰 슬픔에 잠긴 백성들을 향해 위로의 말 대신에 오히려 슬픔을 자극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메뚜기의 재앙이 남 유다를 덮쳤습니다. 그 재앙이 얼마나 컸던지 이토록 무서운 재앙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연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의 메뚜기 재앙을 만나 백성들은 혼돈과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요엘 선지자는 각계 각층을 향하여 재앙에 대한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5절은 취한 자들이 입은 피해 상황, 8~10절은 일반 백성들이 입은 피해, 11~12절은 농부들이 입은 피해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에 ‘울지어다’ ‘곡할지어다’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부끄러워할지어다’ 하는 표현을 보십시오.
메뚜기의 재앙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가를 짐작케 하는 말들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이런 참혹한 재앙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이유는 그 재앙이 너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기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요엘 선지자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울며 곡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에게 선포하는 메시지는 이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굵은 베옷을 입고 밤이 ?도록 통곡하라’는 것은 아주 강하고 뜨거운 회개를 여호와께 드리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왜 제사장들을 향하여 더욱 강한 어조로 회개를 촉구하는 것일까요?
유다 백성들이 현재 이토록 부패하고 그 부패함으로 심각한 재앙을 받게 된 것은 제사장들이 백성을 올바로 지도하지 못한 잘못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의 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중세시대의 교회는 말할 수 없이 부패했고 썩을 대로 썩어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토록 썩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가 중세교회를 이토록 병들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이 아닙니다. 바로 영적인 지도자들, 사제들, 목회자들이 핵심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선봉에서 서서 회개해야 할 사람들은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패했다느니,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느니, 여러 가지 말들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지도자들이 먼저 엎드려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은 성도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지도자가 회개하고, 그리고 온 성도가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제사장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4절)
지도자들은 장로와 성도들을 여호와 앞에 모으고 한 마음으로 부르짖으며 회개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회가 아무리 어지럽고 부패하였다 해도 살아 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 통회하고 자복하는 길입니다.
이 길만이 소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멘-
임박한 여호와의 날 1
욜 2:1~3절
(319, 199장)
새벽설교4
요엘 1장에서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으로 입은 피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통곡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그 재앙은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결과였기 때문에 너희가 살 수 있는 길은 여호와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메뚜기 재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단지 장차 다가 올 여호와의 날, 즉 무서운 심판의 날을 예고하는 경고의 메시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가 올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 통회하고 자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바로 그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경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심판이 경고에 불과하다면 장차 다가 올 여호와의 날에 벌어질 심판은 얼마나 무서울까요?
오늘은 그 여호와의 날에 대해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그 날이 임박하였다고 했습니다.
1절에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임박하였으니” 무시무시한 심판의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얘깁니다.
이 예언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공함으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요엘 선지자가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다고 한 말씀은 앞으로 약 100~200년 후에 다가오는 사건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그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할 줄 압니다.
예수님이 다시 강림하실 날이 언제 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믿음에는 그 날이 임박하였다는 사고가 있어야 합니다.
내 생애에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여러분에게 있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그 날은 어둡고 깜깜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2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 이는 메뚜기 떼가 엄습할 때 하늘을 덮어 캄캄해지는 현상과 마치 하늘을 덮은 먹구름 같은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메뚜기의 붉은 날개 빛깔 때문에 새벽의 붉은 노을과 같이 보이는 현상을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앗수르와 바벨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황폐케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셋째, 그 날은 사르는 불꽃같다고 했습니다.
3절에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그 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으나’ - 이 구절은 메뚜기 떼가 에덴 동산처럼 기름진 땅을 휩쓸고 지나가면 황폐한 땅이 되듯이, 여호와의 날에 임할 무서운 심판이 가해지면 이스라엘이 완전히 황폐화 되어버릴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산불로 온통 잿더미가 된 모습을 보셨습니까? 마치 저주받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게 임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의 날을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날이요, 의인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가 영광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지금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된 심령은 주님께 회개하는 심령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임박한 여호와의 날 2
욜 2:4~11절
(470, 360장)
새벽설교5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임박한 여호와의 날, 즉 심판의 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날’, 그날은 분명 심판의 날입니다.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심판을 받는 날을 의미하고, 2차적으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 날에는 양면성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악인은 멸망의 날이요, 의인에게는 영광의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임박해 있는 여호와의 날에 대해 나열하고 있습니다.
첫째, 막강한 군대의 침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라고 했습니다.
메뚜기의 머리 모양을 자세히 보면 말의 머리 모양 같습니다.
이 메뚜기 떼의 공격은 곧 이방의 군대가 말을 타고 유다를 침입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입니다.
‘달리는 기병 같다’는 것은 메뚜기 떼가 매우 빠르고 거침없이 침공해 들어오는 것처럼 이방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 올 것을 상징합니다.
잘 훈련되고 막강한 화력을 지니고 이방의 군대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날에 나타날 징조입니다.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되어 버렸습니다.
둘째, 그 날은 낯빛이 하얘질 정도로 두려운 날이라고 했습니다.
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얼굴색이 하얘지는 것은 사람이 극한 놀라움과 공포에 질릴 때 체내의 혈액이 내부 기관에 집중되어 피부색이 희어지는 생리 현상을 표현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사람들이 느끼게 될 두려움과 공포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1절 하반절을 보면 “…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어떤 날이가에 대해 아주 짤막한 단어로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크고 심히 두려운 날’ 바로 이 날이 여호와의 날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강림하시는 때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 질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감격의 날이요,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크고 심히 두려운 날이기 때문입니다.
10절에는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그랬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던지 땅이 진동한다고 했습니다. 하늘도 떤다고 했으며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캄캄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별들도 두려움에 떨어 빛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날에 나타날 두려움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행하게도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백성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무참하게 패망하고 성전이 불에 탔으며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은 메뚜기 재앙을 통해 심판의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회개할 줄도 몰랐고, 깨달을 줄도 몰랐습니다. 계속해서 죄를 짓다가 결국에는 패망하는 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날마다 주님께 엎드려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새벽에 회개할 것은 회개를 하고 용서를 구할 것은 용서를 구하는 신앙이 되십시오. 그 회개하는 마음에 주님의 더욱 크신 은총이 주어질 줄 믿습니다. -아멘-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욜 2:12~14절
(167, 177장)
새벽설교6
요엘 2장 1~11절 말씀은 심판의 날에 대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심판이 임박해 왔다는 것입니다.
11절 후반절에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두려운 심판을 당해낼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다고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 본문은 회개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제라도 회개하며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 하셨나니”
여기서 ‘이제라도’라는 말은 이미 때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때를 말합니다.
필연적으로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때, 그 때라 할지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무리 늦었다고 생각될지라도 아직 늦지 않았다는 위로의 메시지요,
또 하나는 이제 마지막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구원의 소망이 없을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늦었다고 생각되는 그 때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아시길 바랍니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그 때야 말로 ‘이제라도 회개하며 돌아 올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또한,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구원의 소망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아울러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 오라’는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마음을 찢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3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옷을 찢는다는 것은 무서운 재앙이나 극심한 재난에 직면했을 때에 행하는 슬픔의 관습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여호와 앞에서 통회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관습적으로 외형에 치우치는 외식적 성향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요엘 선지자는 통회하는 심령이 없이 옷을 찢기만 하는 행위를 그만두고 마음을 찢는 통회를 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외적인 모습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식하는 것이 된다면 책망을 피할 수 없는 사태가 되고 맙니다.
중요한 문제는 내적인 모습이요 중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심령을 찢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 앞에 설 때에 마음을 찢고 심령의 치며 통회하는 복된 심령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리하면 은혜를 입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그랬습니다.
‘누가 알겠느냐?’ 하는 말은 의문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심령을 반드시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라는 확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심판의 뜻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복을 내리시며 은혜를 반드시 부어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라도, 이제라도 주님께 돌아오는 가난한 심령이 되십시다. 그리고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돌아오는 복된 심령이 되십시다. 그리하면 주님의 은혜가 회개하는 심령에 충만히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회개의 촉구
욜 2:15~17절
(190, 338장)
새벽설교7
어제는 요엘 선지자가 회개자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말씀을 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속히 회개해야 하며, 옷을 찢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살펴보았던 회개가 개인적인 회개의 차원이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전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1. 거룩한 성회를 선고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적용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개 역시 모든 사람이 동참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거룩한 날짜를 정하여 놓고 그 날에 온 백성이 모여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는 여러 가지 성회가 있습니다. 새벽기도회, 삼일 기도회, 철야기도회, 주일예배, 찬양예배 등 많은 성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회로 모이기에 힘을 쓰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참여하여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좀 더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두 사람이 모였을 때보다 세 사람이 모였을 때 더 큰 힘을 나타낼 수 있고, 세 사람이 모였을 때보다는 네 사람이 모였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교회가 정한 성회에 힘을 다해 참석하여 주님께 많은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소아와 젖먹는 자들까지 모이라고 말씀합니다.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소아’와 ‘젖먹는 자’는 국가적인 죄악이나 운명에 대하여 하등의 종교적이나 도덕적인 책임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회에 참석해야 하는 대상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도 그렇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결혼 후 1년 정도는 군복무나 공적의무에 대해서 면제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회에 모이는 일 만큼은 참석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는 전 국민적 회개 운동에서 제외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당시 유다가 당면한 심각성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기가 오면 올수록, 급박하면 할수록 온 백성이 모여서 여호와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온 성도가 모이기에 힘을 쓰고 주님의 뜻을 따라 열심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특히 제사장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보니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그랬습니다.
제사장들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존해 주실 것을 구해야 하며, 열국들의 지배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하랍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의 조롱을 받지 않도록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운동은 목회자들만 회개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모여 열심히 회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위대한 힘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소아와 젖먹이들도 다 모여서 주님의 손을 붙잡을 때 더 큰 힘과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앞으로는 교회의 모임에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주님께는 영광이요 여러분께는 큰 기쁨과 은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회개하는 자의 복
욜 2:18~20절
(167, 28장)
새벽설교8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때에”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그 때’ 라는 말은 어느 때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13절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올 때’를 말하며, 16절에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과 신부들도 모여 여호와께 회개하는 때’를 말합니다. 즉 온 백성이 자신들의 죄악을 여호와 앞에 고하며 가슴을 찢으며 회개하는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 백성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면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심중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18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회개하는 백성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지신다는 뜻이요, 그래서 백성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백성들은 여호와를 떠나 배반했었습니다. 그래서 재앙과 진노를 피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는 심판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녹아 내리셨습니다.
여러분,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진노를 축복으로 저주를 은총으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오늘 이 새벽에 깊은 회개의 기도가 드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물질의 복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 때에 매우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돈’입니다. 돈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이 전혀 없다면 그 인생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대문으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물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본적인 물질은 인생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회개하는 백성에게 그 물질의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19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죄악으로 인해 메뚜기 재앙을 받은 유다 백성들은 황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옴을 인하여 풍성한 농산물의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황폐함으로부터의 회복과 빈곤으로부터의 회복과 고난으로부터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풍성한 물질의 복을 끌어당기는 산실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평화의 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20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북편 군대’는 일차적으로 메뚜기떼를 가리키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차 남유다를 침공할 이방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침공을 막아주실뿐더러 저들로 하여금 동해와 서해로 들어가 상한 냄새가 나도록 만드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즉 송장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도록 저들을 전멸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을 물리쳐 주시고, 적들을 제거해 주시며 사랑하는 백성에게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은혜가 회개하는 백성에게 주어지는 것을 믿고 늘 회개하는 심령으로 겸손히 주님을 섬기시는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회복의 축복
욜 2:21~24절
(285, 246장)
새벽설교9
어제 우리는 회개하는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진노의 마음을 바꾸시고 복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백성이 옷을 찢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서 진노를 바꾸시어 영육간의 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복으로 인하여 황폐한 땅이 기름진 땅으로 바뀔 것이며 풍성한 곡식을 얻게 될 것이며 침공하는 적들을 격퇴시킴으로 평화와 안녕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염두에 두었던 요엘 선지자는 오늘 온 천지를 향하여 격려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땅이 여호와의 은혜로 회복되어질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1절에 “땅이여 두려워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지금 요엘 선지자는 땅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외칩니다.
백성들은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메뚜기 떼가 공격을 하게되었고, 그로 인해 온 땅은 황폐화되고 초토화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두려워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황폐해진 그 땅을 기름지게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회복의 은총에 대하여 요엘 선지나는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1절)
엄청나게 놀라운 축복의 큰일, 이 사건이 누구에게 일어난 것입니까?
그는 여호와께 회개하며 돌아온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 들짐승들이 회복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2절에 “들짐승들아, 두려워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그랬습니다.
메뚜기 떼의 공격으로 산과 들이 초토화 되어버렸습니다. 곡식이나 과일이나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었으니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들짐승들은 어떠했겠습니까?
먹을 것을 찾을 수가 없었고 마실 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황폐한 땅이 회복할 것이요, 땅이 회복함으로 들짐승들이 먹을 것을 구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태계의 회복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연을 힘써서 보호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이 자라지면 짐승이나 자연의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그렇게 되면 파괴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더욱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시온의 자녀들이 회복되어질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보니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언덕(산)의 이름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 성민을 지칭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어 풍성한 복을 내려주신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이 마음을 찢으며 회개할 때 하나님은 황폐해졌던 땅을 회복시켜 주시고, 짐승들을 회복시켜 주시며 궁극적으로 백성들이 회복되어지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영혼의 회복과 인생의 회복, 아픔으로부터의 회복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입니까? 여호와께 회개하는 심령에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 회개할 것이 생각나거든 모두 회개하고 복된 심령을 누리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기이히 대접하시는 하나님
욜 2:25~27절
(74, 345장)
새벽설교10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 나름대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모습들이 다양하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큰 은혜와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손해를 입은 분량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5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의 공격으로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서 ‘햇수’라는 말은 메뚜기 떼의 공격으로 그 여파와 후유증이 수년간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수년간이나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피해들을 하나님이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수년간 지속된 황폐함으로 손실된 피해를 액수로 따지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26절에는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그랬습니다.
풍족하게, 넘치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갚으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지금 유다백성들이 메뚜기 떼로 황폐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악 때문입니다. 죄가 너무 악하여 이런 재앙을 받게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향하여 다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할 때 이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볼 때 곤핍해지고 황폐해지고 기울었던 시기가 있었을 줄 압니다. 그래서 건강도 잃고 재산도 잃고 명예도 재산도 잃은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믿으십시다. 메뚜기 떼로 인하여 피해를 본 것들은 다 갚아주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인생에서 손해본 것들, 잃어버린 것들, 빼앗긴 것 등등 많겠지만 주님이 다 갚아주시고 채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복이 차고 넘쳐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둘째, 기이한 대접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본문에 의하면 ‘기이히 대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26절을 보면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그랬습니다.
기이히 대접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는 뜻이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셨다는 얘기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해 내셨다는 뜻입니다.
즉 메뚜기 떼로 인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황폐함을 기름지고 복된 것으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와 같은 은총의 역사가 넘쳐나게 될 줄 믿습니다.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 도저히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 도저히 손도 댈 수 없는 것들을 주님이 다 이루시고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우리 주님은 나를 기이히 대접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안고 그 역사가 눈앞에서 이루어지기까지 분투하고 인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이하게 대접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위에 복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영적인 복
욜 2:28~32절
(427, 204장)
새벽설교11
오늘 본문의 앞부분을 보면 하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복이 육적인 복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흡족하리라’고 하셨고,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욜 2:19, 24절)
황폐해진 땅이 회복되고 짐승들이 회복되며 시온의 자녀들이 회복되는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육적인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육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백성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엘서의 핵심구절은 2장 13절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요엘 선지자 백성들에게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전한 회개를 드릴 때에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하는 심령에게 임할 영적인 복은 무엇일까요?
첫째, 성령충만의 복입니다.
2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나님의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만민’은 남녀노소, 어린아이와 어른, 강한 자와 약한 자,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어느 누구하나 성령의 충만함의 복에서 제외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자에게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성령 충만이 1차적으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자 소원하는 마음이 아주 클 줄 압니다. 그렇다면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회개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며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자세가 있을 때 오늘 약속하신 말씀대로 저와 여러분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 지는 복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 구원의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31절을 보면 “크고 두려운 날”이 나옵니다.
이 날은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 두렵고 떨리는 날에 구원의 복을 받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32절입니다.
‘누구든지’라고 했습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배웠든 못 배웠든, 건강하든 약하든,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구원의 길이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구원을 얻는 것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주님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입니다. 구원도 세상에서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만 보면 사는 것처럼 주님을 바라만 봐도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 다하는 날까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도구
욜 3:1~3절
(543, 539장)
새벽설교12
세상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늘도 하나님의 것이요, 하늘 위에 하늘도 하나님의 것이며 땅도 하나님의 것이요 바다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주 만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1. 피조물은 모두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은 모두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요나를 채찍하실 때 바다의 풍랑과 물고기를 들어서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애굽의 군대를 심판하실 때에는 홍해를 들어서 도구로 사용하셨고, 엘리야 선지자가 하늘로 승천할 때는 회리 바람을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이웃의 국가들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에는 이웃의 국가를 들어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에는 앗수르를 들어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고, 남 유다를 심판하실 때에는 바벨론을 들어서 채찍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1절을 보면 “그 날 곧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라고 했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70년간 포로생활에 고역을 치르다가 고레스 칙령에 의해 해방되는 때를 말합니다.
유다 백성의 죄악이 극에 달하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2. 바벨론은 하나님의 국문을 받고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2절을 보면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그랬습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국문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국문한다’는 것은 마치 검사가 죄인을 앉혀놓고 그 죄를 낱낱이 캐묻고 들추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작은 허물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일이 캐내어 그 죄에 대하여 엄중한 벌을 내리려는 것입니다.
비록 바벨론이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고는 하나, 악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학살하고 불태우고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로 팔아먹는 등 천하에 악한 짓을 자행했기 때문에 그 죄의 대가로 하나님이 저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2절을 보면 “…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땅을 ‘나의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는 “또 제비를 뽑아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학대한 것은 곧 하나님을 학대한 것이요, 유다 땅을 침공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대항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 되고, 성도를 핍박하는 것도 곧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기는 하였으나 악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으므로 그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종들입니다. 그러나 바벨론과 같이 악한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악한 도구가 아니라 선한 도구로, 영광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욜 3:4~8절
(77, 90장)
새벽설교13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라들을 보면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이 나옵니다. 이 세나라는 앗수르와 바벨론 다음으로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끊임없는 적대적 감정을 지닌 나라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고대 페니키아의 상업 도시로서 지중해 연안 최대의 무역 항구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우 다양한 상품들이 교역되었는데, 특히 인신매매를 통한 노예 무역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일례로 로마가 유대를 완전히 함락시켰을 때 두로 상인들이 약 18만 명 가량의 유대인 노예들을 매매했다고 합니다.
블레셋은 어떤 나라입니까?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약탈과 노략질을 수없이 자행했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들은 모두 원수의 나라입니다.
바로 이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4절)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이 말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심히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와 불쾌함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부가 모처럼 쇼핑을 나갔습니다. 모처럼 고생하는 아내의 옷을 한 벌 사주고 싶은 마음에 먼저 바지 하나를 고르기로 했습니다.
어느 매장에서 바지를 입어보니 옷이 별로 예쁘지가 않았습니다.
해서 옹알이는 말로 ‘옷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그 순간 주인이 하는 말 ‘옷 사기 힘드시겠네요’ 하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그 때 곁에 있던 남편이 화가 몹시 났지만 조용한 말로 주인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아주머니 그런 것은 댁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힘이 들든 힘이 안 들든 댁이 걱정할 일도 아니고 댁이 신경 쓸 일도 아닙니다. 댁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쓸데없는 걱정을 합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 것이니 쓸데없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순간 얼굴이 뻘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더랍니다.
‘댁이 나와 무슨 상관이요?’ 이 말은 대단한 불쾌감과 분노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에게 하신 말씀도 그렇습니다.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 말씀에 대해서 학자들은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칼빈 같은 학자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백성을 이다지도 괴롭히는가’ 라고 해석했습니다.
둘째, ‘너희가 내게서 심판을 받은데 대한 보복으로 내 백성을 대적하겠느냐’ 라고 해석했고, 셋째, ‘너희들은 내가 보기에 아무 것도 아닌 비천한 것들이다’ 라고 해석했습니다.
넷째는 ‘네가 나와 함께 무엇을 하려느냐, 내가 너희의 죄과를 방치할 줄 알았더냐’ 라고 해석했습니다.
위의 해석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침략국들을 징벌하고 심판하시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와 함께 분노를 나타내 보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원수들에 대한 이 같은 하나님의 분노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사랑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원수 마귀를 향하여 강한 진노를 보이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를 유혹하고 쓰러뜨리려는 것에 대한 진노임과 동시에 성도를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원수들과 방해꾼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 백성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사랑하는 아무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상관하지 마라’ ‘내가 너를 심판하고 내 백성에게 복을 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주님과 무슨 상관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고,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천국의 백성으로서 아름답고 흠없는 모습으로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열국에 대한 심판
욜 3:9~13절
(199, 94장)
새벽설교14
오늘 본문에서 요엘 선지자는 열국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심판에 앞서 열국들은 군사를 정비하고 전쟁을 준비하라고 선포합니다.
9절을 보니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그랬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데, 용사의 사기를 올려 하늘을 찌르게 하고 무사들을 모두 모아 전쟁에 임하라는 것입니다.
10절에는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그랬습니다.
‘보습’은 밭을 가는 농기구입니다. 이것을 녹여 칼을 만들고 낫을 녹여서 창을 만들어 전쟁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원수인 열국들을 향하여 이렇게 광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열국들을 향하여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외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방 열국들에게 명령하는 것으로 보아 ‘할테면 해보라’는 식의 조롱하는 의미이라는 해석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연합군을 편성하고 첨단의 무기를 보유하고 용맹성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남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심판의 전쟁을 준비하라는 뜻이다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유다백성을 일으켜 대적들을 멸망시킨다는 뜻입니다.
셋째, 이방의 제국들이 함께 모여 전쟁을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열국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할 때 하나님이 그들 모두를 한 번에 멸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이방 열국들이 힘을 합쳐서 여호와를 대적하도록 방치해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저들이 여호와를 대적해 오면 단 번에 멸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단단히 혼을 내주려고 벼르는 사람과 같은 입장입니다.
아주 맘에 안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그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이 머리끝까지 쌓여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고 참아서도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됩니까?
더도 말고 딱 한 번의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이렇게 벼르다가 상대방이 한 번 실수를 하게 되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맹공을 퍼 붇습니다.
아마 이런 일이 여러분에게도 있었을 줄 압니다.
열국들의 죄악과 강포를 참고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저들이 연합하여 전쟁을 걸어오는 때, 바로 그 때를 심판의 기회로 만들어 버리시려는 의도입니다.
11절을 보면 요엘 선지자의 간절한 바램이 나옵니다. “사면의 열국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원수들이 연합하여 전쟁을 걸어오면 여호와께서 주의 용사, 즉 천군 천사들을 그리로 보내시어 저들에게 심판을 가해달라는 호소입니다.
그렇다면 요엘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열국들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13절을 함께 보십시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틀이 가득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곡식이 익었다’고 했습니다. 익을 대로 다 익었습니다. 그러니 서둘러 낫을 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 틀이 가득찼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포도를 담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저들의 죄악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포도주의 독이 넘쳤다’고 했습니다. 저들의 악행이 독을 뿜어대는 수준에 도달했으니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고 지체없이 심판을 가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실 때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행을 저질러 독을 뿜어대고 있으니 심판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새벽에 이 사실 하나만은 꼭 기억을 하십시다. 어떤 죄인도 회개하는 죄인은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은총을 넘치게 받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판결 골짜기
욜 3:14~17절
(319, 256장)
새벽설교15
바다를 항해 할 때 여러 장비들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없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나침반입니다. 이 나침반이 없으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들 목적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간혹 드넓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경주를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탁월한 성능도 중요하고 노련한 운전실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승을 할 수도 없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말할 때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나그네 인생, 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합니다.
이런 인생을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도 나침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항해하는 배, 사막을 달리는 자동차에만 나침반의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나침반이 없다면 큰일납니다.
그러면 인생의 나침반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인생의 나침반이요 어둠 속의 등불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교훈을 성경에서 찾아야 하고 성경에서 배워야 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걸어가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 속에서도 인생의 귀한 교훈과 생명의 가르침을 배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여러분을 생명과 복으로 인도해 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4절 말씀을 다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여기서 ‘판결 골짜기’는 ‘여호사밧 골짜기’를 말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타작의 골짜기’ ‘파멸의 골짜기’ ‘하몬곡 골짜기’ ‘므깃도 골짜기’ ‘아마겟돈 골짜기’와 의미상 같은 뜻을 이룹니다.
최종적인 여호와의 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단지 무리의 숫자가 많은 것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떠들고 아우성치는 것’ ‘크게 혼잡한 것’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직전 인간의 죄악이 극도에 달하여 열국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힘써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시끄럽고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파다할 때는 끝이 가까웠다는 것으로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우리는 마라나타의 신앙을 굳게 잡고 더욱 더 믿음위에 서야 할 줄 압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전쟁의 소식이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결코 평안치 않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주님 곁에 바짝 다가서야 합니다.
훗날 언젠가는 판결 골짜기에서의 종말론적 심판이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우리는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16절 하반절을 보니 “…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판의 날 악인들은 심판을 칼날을 피할 수 없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피난처가 있고 피할 산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우며 무서울지라도 우리에게는 산성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의 손을 꼬옥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영원한 축복
욜 3:17~끝
(92, 133장)
새벽설교16
오늘로 요엘서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날마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본서의 마지막 시간에 주어지는 귀한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에 해당되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귀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첫째, 성도는 심판과 더불어 최종적인 승리를 얻게 됩니다.
종말론적인 심판이 다가 오는 날, 그날은 우주 만물이 두려워 떠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해도 빛을 잃을 것이요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의 별들도 다 빛을 잃을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라고 했고, 16절에는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악인들은 얼마만큼 두려워 떨 것인가 하는 것은 능히 짐작이 갑니다.
간이 녹아 내리고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의 공포가 밀려 올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에게는 긍휼함이 없는 심판만이 가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심판의 날이야말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유하는 주인공들이 될 것이며 주님과 더불어 천국에서 왕노릇하며 영원히 사는 거룩한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둘째, 풍성하고 영원한 축복이 주어집니다.
18절에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랬습니다.
지금 이 표현들은 시적인 표현들입니다.
여호와의 은혜가 이처럼 풍성하게 넘칠 것에 대한 노래입니다.
여기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왔다’ - 생명의 은혜가 성전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한 믿음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성실하게 행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드나들면서 은혜와 생명과 축복의 더욱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그랬습니다.
애굽과 에돔은 황무지가 되고 심판을 받아 멸망하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다른 것을 포기하듯이, 우리는 천국이라는 보화를 얻기 위하여 세상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은 썩어 없어질 것들이지만 천국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요엘 2: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요엘서의 핵심구절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을 얻는답니다.
그리고 요엘서의 또 다른 핵심구절이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이런 심령을 안고 주님을 부르는 자는 영원한 구원을 소유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찢으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귀한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경배 찬양] 예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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