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한 도시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부흥사는 하나님 앞에 탕자와 같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주 앞에 회개하라고 설교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있던 한 청년이 깊이 회개를 했습니다.
이 청년은 한 시골의 부잣집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시골생활도 재미없고 홀어머니의 잔소리도 듣기 싫어서 어느 날 집안의 값나가는 귀중품과 재산을 챙겨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온 후 약 10년 동안 집에는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흥회에서 죄를 깨달은 청년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하고 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집 가까이 도착했을 때는 밤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인데도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문 위에는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집안에 들어서는 아들의 소리에 늙은 어머니가 뛰어나와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청년은 어머니에게 왜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네가 집을 나간 후로 한번도 대문을 잠근 적이 없었단다. 등불도 매일 켜놓았단다.\" 아들이 언제 돌아와도 들어올 수 있게 어머니는 대문을 열어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아들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죄인을 기다리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이 청년이 나중에 유명한 부흥사가 된 윌리암 시몬즈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죄인을 위해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은 기쁘게 맞이해 주시며 사랑의 품으로 감싸주십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오래 참으셨습니다. 노아 방주의 때나 소돔과 고모라의 때나 바울에게 구원의 긍휼을 베풀 때나 그리고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먼저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그분의 오래 참으심에 동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여러 차례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는다\"는 단어입니다. 이 \"참는다\"는 말이 먼저 7-8절에서 세 번 나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0절에서도 이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절에서는 \"참는다\"는 말 대신 \"인내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이렇게 볼 때 오늘 본문은 전체적으로 \"참고 인내하라\"는 권면의 말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가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말씀의 결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며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한 못 자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지만 오히려 날마다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며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고후 11:23∼28).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면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험난한 날들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과 복음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인내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2.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오래 참음 안에서 스스로를 나타내 보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던 선지자들이 오래 참음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 3:12).
오늘 말씀에는 믿음의 사람 욥을 말씀하시면서 사람 가운데서 가장 믿음의 힘을 보여준 사람이 욥인데 욥이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인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믿음을 보여주기를 원한다면 인내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는 자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행위인데 인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영적 환경인 것입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인내로써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3.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오래 참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말씀을 전파할 때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기회가 좋든 나쁘든 힘써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바로잡고 꾸짖고 훈계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래 참음은 복음전파의 교육적 역할을 담당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다면 복음의 결실은 성취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처지에 그래도 추장 집에 머물면서 눈치로 생활을 하며 선교를 해나가고 있는데, 그 집에서 제일 좋은 음식이라며 귀하게 생각하여 주는 것이 선지피를 반숙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슴의 피를 반숙하여 마시는 것인데 그네들은 최고의 음식으로 생각하고 입가에 피를 묻혀가며 맛있게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에게는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도저히 먹을 없는 끔찍한 기분이었지만 이 호의를 거절하면 큰 일이 나는 것이기에 눈 딱 감고 마시는데 그렇게 고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 마신 다음에는 트림까지 해야 인사가 된다고 합니다. 고역이긴 해도 그래도 그 정도는 괜찮았는데 맨 마지막에 생긴 문제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답니다.
계속 한 1주일을 머물며 전도를 하고 떠나려하자 추장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호의로 선물을 하는데, 그 선물이 어처구니없게도 그 추장의 열한 번째 아내를 주더랍니다. 그의 말인 즉 내가 마지막으로 얻은 예쁜 아내인데 당신에게 주고싶으니 데리고 가라면서 내어주더라는 것입니다.
이쯤 되고 보니 아무리 선교사라 한들 달리 생각해볼 여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거절을 했더니 이번에는 아예 죽이겠다고 하더랍니다. 이 큰 호의를 거절하는 것으로 보아 너는 원수라며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그것을 설명하는데 1주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4.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조지 애틀리라는 젊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앙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자기의 숙소를 홀로 떠나서 주변 지역을 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아주 성능이 좋은 자동소총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맹수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숙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인근의 원주민들이 창과 몽둥이를 들고서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해서 원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치게 되면 그곳에서의 선교는 영영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결국 그는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그는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평온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추장은 그의 손에 있는 자동소총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속에 열 발의 실탄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제야 추장은 그의 고귀한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추장은 그의 얼굴에 입맞추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해서 그곳 원주민들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 곳에 사랑의 열매가 아름답게 열리기 마련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고전13:4)
5. 믿음의 연단을 받기 위함입니다. 조급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빨리 나타나시면 좋을 것인데 그러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좋은 조건이 될 터인데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믿음이 바로 인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을 지식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으로 믿음을 증명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도의 참음은 기질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성도의 참음은 포기도 아닙니다. 성도의 참음은 믿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기 때문에 내가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결과를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오직 믿음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말세에 조급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3)
6, 현재의 환난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롬5: 3,4)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는 1478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52세 나이로 재상에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 때 임금이었던 헨리 8세가 자기 부인을 버리고 안나 브레인과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토마스 모어는 이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재상직에서 떠나게 됩니다
. 당시 영국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토마스 모어에게 왕은 회유를 했고 자기의 부인이 울면서 말렸지만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리를 버리고 국왕 편에 선다면 우리가 몇 년을 더 살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버리는 일이요\" 했습니다. 1535년 7월 6일 단두대에 오르던 날 그에게 술을 주자 \"주님은 초와 쓸개를 마셨다\" 하며 거절하였고, 재상의 목을 베기가 두려워 떠는 사형 집행인에게 \"너는 내 목을 베는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요,
나는 너의 칼에 죽는 것이 우리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다\"라고 하며 오히려 안심시켰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스데반이 죽을 때에도 사도 바울은 이 일에 가담하였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끝까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이는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마침내 그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그도 스데반처럼 순교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당신의 손에 죽지만 언젠가 당신들도 회개하여 주님 앞에서 친구로 만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을 믿고 기도한다\" 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험하고 악합니다. 믿음 따라 행하며 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이유 없이 정죄 당하고, 때려잡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고초를 겪을 때도 있습니다. 악랄하고 집요한 중상모략과 음해공작에 시달리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악인들에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상황을 바꾸어주시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되고 유일하신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바로 문밖에 가까이 계시며 언제라도 우리에게 임하셔서 바르게 심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한없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고 인내하는 이가 복되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5:10-12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인내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열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 21: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7. 영혼 구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8. 하나님의 응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쏟아져 나와 그 해를 ‘황금의 해’라고 부릅니다. 어떤 청년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의 금광을 사서 열심히 채굴했지만 금이 나오질 않자 금광을 팔아치웠습니다. 그런데 새로 인수한 사람이 1m쯤 파고들어 가자 노다지가 터져 나왔습니다.
금광을 판 청년은 여기서 황금보다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1m 철학’을 정립하고 모든 일에 임했습니다. 그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들어가 1m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고객을 대할 때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이때까지 기울인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험 가입을 성사시켰습니다. 1m 철학이 결국 그를 거부로 만들었습니다.
기도에도 1m 철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다만 사람들은 응답까지 1m를 남겨놓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까지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어려움, 육신의 질병, 인간관계, 직장과 교회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인내로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내로 영혼을 얻게 됩니다(눅 21:19). 우리가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약 1:4). 인내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7)
9.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이며, 인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라고 가르칩니다. 기쁨은 오래 참음의 첩경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우리들에게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오래 참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또한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매우 절실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주신 기쁨으로 오래 참음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고 말씀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모든 일에 오래 참는 신앙으로 승리하는 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고후6:6)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10.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닮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동산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 하게 하라’ 그런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들이 손대면 안된다.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2-3).
예수님을 ‘참으신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사셨습니다. 참고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으심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의 인내입니다.
‘너희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희들이 세상 살기 힘들어 낙심될 때 주님 바라보라.’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 주님을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음으로 이길 수 있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능히 참을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오래 참으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기준이기 때문에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을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11. 죄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계2: 2,3) 우리가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절제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내할 때에 불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심판을 면한다고 했습니다.
인내를 방해하는 것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인내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보상이 있지만 불평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가장 보편적인 죄악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원망하지 말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조들의 심판 사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그 마음 속에 원망이 채워지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산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음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내 마음에 원망이 있는가 아니면 감사가 있는가를 점검하면 됩니다. 또한 내가 불평을 하고 있는가 찬송을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이 참는다고 말할 때에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평하면서 참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참는 것이 있습니다. 참는다는 자체가 이미 고통이기 때문에 사람은 불평하면서 참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평하면서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면서 광야를 지나는 것은 전진이 아니라 방황인 것입니다.
12.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히6:12)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열매는 인내하는 자가 거두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참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의 참음은 내 뜻이 성취되도록 참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이 그 뜻을 이 땅에 나타내시는 통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참된 인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는 마지막까지 참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주님의 강림하시기까지 참으라는 말씀과 농부가 열매를 바라보고 길이 참는다는 말씀은 마지막까지 참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인내한다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인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죽기까지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참으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마지막으로 욥의 인내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 인생의 삶에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성도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인내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이야기에 한결 같이 참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내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복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인내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삶입니다. 인내하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기도: 곧 넘어질 듯 약한 나를 붙드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절망 속에 있는 나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내 삶의 부수적인 걸림돌을 제하시고 주님이 그러셨듯이 세상의 헛된 욕망을 포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맡겨진 일에 인내함으로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싫을지라도 그것을 완수하거나 완전케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하게 하심으로 안달하거나 조바심을 갖지 않게 하시고 그들에게 화내지 않게 하옵소서. 나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대해 인내하게 하심으로 목표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를 실망시키고 목표의 실현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원망이나 불평이 없이 그것을 수용하게 하옵소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현실이 어렵고 곤란하더라도 참아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소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