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 / 죽음을 향해 말씀하시다
종려주일 설교 죽음을 향해 앞장서다!
본 문 : 마가 10:32-34
제 목 : 죽음을 향해 앞장서다!
1. 생존에의 본능은 필사적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문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생존의 본능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에 대한 공포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면서 물이 머리에서부터 얼굴로 흘러내리면, 물 고문의 공포 느낀다.
2. 로마 제국에서 식민지 백성과 노예들에게만 잔인한 십자가 처형했다.
많은 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 그대! 다시는 반란(자유)을 꿈꾸지 말라.
초대 교회에 대한 로마의 박해도 마찬가지다.
3. 기르던 개나 소를 도축업자에게 팔려고 하면 용하게 짐승들도 알아차린다.
밥을 먹지 않거나 운다.
차에 실을 때는 순하기만 하던 짐승들이 최대한 버틴다.
죽음의 공포를 냄새 맡기 때문이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다. 빠를 수도 없다.
끌고 가는 이보다 앞장 설 수도 없다 - 이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성이다.
4.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데 제자들보다 더 앞장서서 가신다.
그래서, 제자들이 놀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 이 걸음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주님은 너무나 잘 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 결국은 무서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다.
참으로 무거운 길이다 - 모리야 산을 향해 가는 아브라함의 발걸음이다.
5. 그러나, 주님은 앞장서서 가신다, 제자들이 놀랄 정도로.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주 철부지이거나, 원초적 공포인 죽음을 넘어 서버린 행위다.
공자는 50세에 천명을 알았다고 했다(知天命)).
하늘이 정해준 목숨을 아는 것 - 득도하는 것이다. .
삶이란 결국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다.
신앙이란 결국 무엇을 위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찾는 과정이다.
예수를 믿고 자신의 죽음을 찾은 사람은 성령이 임재한 것이다.
그냥 신앙 생활하면 그는 교인이다.
그러나, 자기 죽음을 천명으로 깨닫는 순간 그는 거룩한 사람 - 성령의 사람이 된다.
6. 죽음과 죽임 - \"자연사를 두려워하라!\"
죽음은 자연사다.
죽임은 살해당하는 것이다. 주님은 죽임당하셨다.
세속인들은 죽임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연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7. 천명을 알고, 성령이 임재한 거룩한 사명자의 특징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
을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코끼리는 자신의 생명이 다한 것을 예감하면, 조상들이 대대로 죽는 장소에 찾아가 삶을 마감한다
고 한다.
어떻게 사느냐는 어떻게 죽느냐와 같다.
8. 예수님도 끝까지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심지어는 그렇게 결단하고 예루살렘에 와서도 고민해야 했다 - 겟세마니 동산에서.
그만큼 죽음은, 더욱이 십자가의 처형은 끔찍한 고통이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이 오늘 앞장서서 죽음으로 달려간다.
이미 주님은 삶과 죽음을 넘어서고 있다.
주님에게서 죽음과 부활은 사실 이미 하나로 되어 있다.
삶 속에서 죽음을 산다 - 죽음 속에서 부활을 잉태한다.
9. 죽음의 곳 -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앞장서 가실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 지를 알고 정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고
산다는 것이다.
신앙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도 주님처럼 죽음을 사는 것이다.
10. \"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한평생 자기 몸 위해 살다 죽는 사람들 많다.
돈을 모으고 쓰다가 죽는 사람들도 많다.
권력과 지식을 쌓다가 죽는 이들도 많다.
이것은 마치 하얀 목련이 영원히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와 같다.
목련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허망하다.
내 인생이 건강, 돈, 권력과 지식을 위해 죽기에는 너무 어리석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석의 가치는 다른 물질보다 변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사 40:8-10 \"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
주님은 영원한 것을 위해 죽었다 - 그러기에, 그는 영생의 부활로 살아난 것이다.
주님은 오늘 죽음이 기다리는 두려운 예루살렘을 향해 앞장서서 가신다.
오늘 내 걸음이 앞장서서 가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영원한 생명인가? 지금은 찬란하나 곧 시들어 떨어질 꽃잎인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지를 깊이 숙고하고 기도하며 결단하는 한 주간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