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의 샘
진리의 샘
인간이란 무엇인가?
성명
이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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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신비하고
비밀스러운데가 있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학자와 역사가,
철학자들은 사람과
사람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사람은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지만,
우주는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우주와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의 목적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인 성경은
이 비밀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우주, 사람,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 사이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의무 등에 대한
실재를 사람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이 스스로 존재하시고
영원히 존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영원 과거에 하나님은 존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 사람을
창조하실 것을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사람이 이 땅에서
그분의 형상 안에서 그분을 표현하고,
그분의 권위를 가지고 그분을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창 1:26-28).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주 안에 수백만의 항목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분은 식물의 생명,
동물의 생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생명인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식물이 동물을 위해 창조되었고,
동물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바로 첫 페이지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다르게 창조하셨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문제를
장갑을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길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뜻한 장갑을 끼고 다닙니다.
손수건은 손의 형상이나
모양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손에 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갑은 손의 형상과
모양과 형태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장갑은 손에 낄 목적으로
손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신성한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의 생명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대표 권위가 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의 통치권을 가지고
창조된 땅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대적 사탄을 심판하시고
형을 선고하셨지만,
이 심판을 집행하는 책임은
창조된 사람에게 위임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배필이 되도록
하나님을 생명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창조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고 담을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사랑, 고결함,
선함 등의 인간 미덕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신성한 속성을 살아내도록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창조된 생명 중
가장 높은 생명으로,
질에 있어서 식물이나
동물의 생명보다 훨씬 탁월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람은 하나님의 종류에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동물은
그들 자신의 종류에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을 담거나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종류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생명인 신성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람은 그릇,
곧 용기(容器)입니다(롬 9:21, 23).
사람은 하나님의 그릇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내용이 되시기 원하십니다.
병이 우유나 음료수를 담기 위해 만들어졌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지식이나 부나 재물이나 성공이 결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담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 그릇을 세 부분,
곧 영과 혼과 몸으로 나눕니다(살전 5:23).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물질적인
몸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몸은 만질 수 있고
구체적이고 일시적이며 과학적인
탐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화학 교수에게
“사람의 신체 구조를 조성하는
화학 물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분석 도표를 만들어서
사람의 대부분은 물로 이루어졌고,
또 질소, 탄소 및 기타 여러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화학 교수로서 그는
그의 연구 분야에 관하여는
의심할 바 없이 정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땅의 속한 요소로 구성된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에만
국한된 것입니다.
유사(有史) 이래로 사람은
자신의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지쳐 있는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왔으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 듯합니다.
사람은 수명을 어느 정도는
연장할 수 있었으나,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이 죽음으로 종결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물질적인 몸에
그분의 목적을 두지 않으십니다.
심리학자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사람을 연구한 후에
사람에게는 물질적인 몸 이외에
내적이고 감추어진
구성체가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사람에게는
사고하는 기관인 생각이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실망하고
기뻐할 수 있는 내적 느낌의
기능을 가진 감정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결정하는
기능을 가진 의지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살아 있고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하는
존재이며, 다만 움직이는
흙덩어리가 아닌, 유일하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격체입니다.
심리학자는 우리의 자아 즉,
심리학적인 자아가 우리의
실재 자아이며, 우리의 몸은
단지 우리 존재의 외적인
껍질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영어 단어, 정신의학(psychiatry)과
심리학(psychology)의
어근 사이키(Psyche)는 혼(soul)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에서 왔습니다.
심리학은 혼을 연구합니다.
생각, 감정, 의지, 이 세 가지 기능은
다만 사람의 인격 즉,
인간 혼의 구성 요소입니다.
지난 이 세기의 인류 역사에서
혼의 능력은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처칠, 에디슨,엠머슨,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사람의
위대한 생각은 인류
사상사에 지대하게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강한 의지로
중대한 일들을 결단하여
정치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인류는
최근 몇 십 년간 혼의 기능을
극대화하여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을 쌓았을지라도,
사람은 깊은 속에서 여전히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달은 정복했지만,
사람 안에는 어떤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세
계의 위대한 철학을 연구할 수 있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커다란 질문에는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상의 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히 안식과
만족이 없습니다.
사람의 혼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갈망하지만
항상 좌절만 겪게 됩니다.
사람의 깊은 곳에는
수세기 동안 비밀로서
감추어져 있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어떤 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혼보다 더 깊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골수가 뼈 속에 감추어 있듯이,
사람의 영은 혼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람의 영은 특별히
하나님 자신을 담고
하나님으로 충만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가장 깊은 부분이
빈 상태로 있기 때문에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을 통하여
사람은 단지 하나님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생명나무로 예표된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하기 전에,
사람은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에게 유혹되어 타락하고
죄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타락은 우주에서
가장 큰 비극입니다.
전쟁, 불법, 가난, 범죄,
억압, 질병 같은 타락의 결과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매일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죄를 받고,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됐으며,
결국 불 못에서 영원한 죽음에
처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사람은 타락으로 인하여
내적인 본성이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서 하나님의 본성과
어울리는 신실함, 선함, 거룩함,
지혜, 친절, 용기 같은
미덕이 있는 선한 본성을 소유했지만,
사람 안에는 타락을 통하여
들어온 악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이 악한 본성과
선한 본성 사이에 싸움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안에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선한 의도대로
살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은 그의 악한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 안에 즉,
그의 육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롬 7:18).
사람은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타락을 통하여,
사탄은 죄로서 사람 안으로 들어와
사람의 몸을 부패시켜
육체가 되게 했고,
사람의 혼을 오염시켜
자아가 되게 했으며,
사람의 영을 죽게 했습니다.
죄는 사람을 세 방면에서
손상시켰습니다.
죄는 사람의 영을 죽게 했고,
사람의 혼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게 했고,
사람의 몸으로
죄를 짓게 했다.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전파를 수신할 수 없어
음악 소리를 낼 수 없고
잡음만 내는 고장 난 라디오와 같습니다.
또한 아름답게 잘 만들어졌지만
시궁창에 빠져
흙탕물로 뒤덮여진 컵과 같습니다.
역대로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왔으나
결국 선행도, 교육도, 윤리도,
사상도, 유물론도 사람을 죄에서
건져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완전히 강탈되어
그의 통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소망이 전혀 없고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죄인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대략
이천 년 전 중동 지방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합니다(골 2:9).
그분은 성육신(成肉身)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자,
온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분은 선한 사람,
위대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거룩한 사람 그 이상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인간이십니다.
이 하나님-인간은
구속 역사를 완성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심으로 사람의 죄를 가져가셨고(요 1:29),
놋 뱀으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을
멸하셨고(요 3:14-15),
한 알의 밀알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해방하여
그 생명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셨습니다(요 12:24).
이와 같이 하나님은
두 단계를 거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육체가 되심으로
예수라 불리는
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완전하고 죄 없는 삶을 사시고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부활 안에서 그분의 형태는
육체에서 영으로 바뀌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영이 되셨습니다.
이 영은 생명 주는 영이라고 불린다.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한 구절,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이
생명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다가갈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아들 안에서 사람으로서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지만,
아들 하나님도 혈과 육이 있는
사람의 형체 안에 계셨기 때문에,
사람의 속으로는 들어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형체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물질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
곧 들이마실 수 있는
영적인 공기로서
제자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아버지, 아들, 영―가
사람에게 도달하셨습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영으로서 그분의
구속된 백성에게 도달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태양은 너무나도 뜨겁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빛으로서
우리에게 도달합니다.
햇빛은 우리에게
도달한 태양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태양의 본질과 본성과 특성은
햇빛 안에 포함되어 있고,
햇빛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얼음과 물과 수증기의 예를 보세요
이 세 가지의 본질은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이지만, 본질적인 특성을
바꾸지 않은 채 외적인
형태는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인 수증기는 그 영에 비유될 수 있다.
그 영은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고
체험할 수 있는 신성한 공기와 호흡입니다.
현재 거의 모든 가정에는
다 전기가 설비되어 있습니다.
전기의 근원이 강 상류에 위치한
수력 발전소일지라도,
전기는 전선을 통하여
가정에까지 도달합니다.
아들 그리스도는
신성한 발전소이신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오신
하늘에 속한 전선으로서,
하늘에 속한 전류인
그 영의 능력과 공급을
우리에게 전달하십니다.
전류가 움직이는 전기 자체이듯이,
하나님의 영 또한 사람에게 도달하고
흐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영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다.
그 영은 우리에게
적용된 삼일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은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흐름이시다.
그분은 움직이시는
삼위일체하나님이십니다.
그 영이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이심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은 아들과 아버지에게서
분리되실 수 없습니다.
물과 기름은 쉽게 분리할 수 있지만,
티백을 물에 넣은 후 차의 성분과
물의 성분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도달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결이십니다.
주 예수께서 그 영의 형태로
변형되신 것은 그분이
취하신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변할 수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목표에 도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완전한 단계에 이르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때,
신격의 셋째이신 그 영만 오시는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늘에 남아 계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 영이 오실 때 아버지와 아들도
그 영과 함께 오십니다.
우리는 아버지는 근원이시고,
아들은 과정이시고, 그 영은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밀스러운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생명의 영이십니다.(롬 8:2).
거리에서나 가게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어떤 사람은 창조자,
또 어떤 사람은 구속자와
구원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영이 아니라
생명 주는 영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성령을
우리 사람의 영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라디오에,
하나님의 영은
전파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라디오 안에는 수신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신기와 같은 사람의 영이 있습니다.
라디오가 꺼지거나 수신기가 고장 나면,
라디오는 전파를 수신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인간 라디오”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이 영을 사용함으로
“스위치”를 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습니다.
그들 안에 수신기인 사람의 영이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분을 영접하고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하나님에게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의미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분에게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을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10:9).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 그리고 온종일
주님으로 넘치는
생활입니다.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주님을 부르고
성경을 영 안에서
기도하며 읽음으로
그분을 접촉합니다.
일 년 365일, 매일 아침마다
우리는 영 안에서 부흥됨으로
새로운 시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묵상을 통하여
우리가 누린 주님에 관하여
여러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시장에서
또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마주 대하며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만유를 포함한 영이
신성하고 영원하며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가져오셨습니다.
이 생명을 통하여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누리고,
체험하고,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장인이든,
주부이든, 농부이든,
교수이든, 노동자이든,
우리 모두는 이러한 영을
누릴 수 있고 신성한 생명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에 의해
살 수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축복하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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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아 목사(분당제자교회)
2008-07-30 12:03:21
이름
의견글
비밀번호
전체 23개 - 현재 1/3 쪽
29
역사의 중심인 예수그리스도
이동아
2008-07-30
3
28
인간의 창조목적은?
이동아
2008-07-30
2
27
생명의 법으로 해방을 받았는가?
이동아
2008-07-30
1
26
거듭남의 비밀은?
이동아
2008-07-30
2
25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방식
이동아
2008-07-30
2
24
겉사람이 왜 부서지고 깨어져야 하는가?
이동아
2008-07-30
2
23
사람이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동아
2008-07-30
7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동아
2008-07-30
4
21
당신은 죽을 준비가?
이동아
2008-07-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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