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선교 편지

한국에서 드리는 오병이어 우간다 선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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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오늘 아침은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에 모든 것이 살아나는 것처럼 초록빛 잎사귀들이 더욱 환하더군요.

저희들의 소식을 전할때마다 항상 느끼는건데 단순한 선교편지라기 보다는 그리운분들에게,고향의 가족들에게 멀리 타향에서 안부를 전하는 애틋함을 가지고 편지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격식이 느껴지지 않으실지도, 아님 너무 편안하실지도 모르나 저희가 우리 오병이어 우간다 동역자님들을 대하는 마음이 식구로 느껴지기에 그러는 것을 널리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간다에서 한텀 사역을 마치고 저희가 잠시 재충전을 위해서 고국에 들어온지도 벌써 6개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는것을 새삼 느끼는데요. 이제는 한국에 머물수 있는 날들보다 우간다로 돌아갈 날이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8월이면 우간다를 향해 출발합니다.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더욱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함께 우간다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나누었어야 했는데 저희가 많이 부족해서 모든 분들을 다 찾아뵙지는 못한점을 사과드립니다.


1.감사한 일

저희가 우간다에서 안식년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한국에서는 머물곳도 없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데 파송교회인 전주 양정교회에서 선교관을 마련해서 머물게 해주셨고 또 저희가 안식년은 들어와야 하는데 그동안 아이들 학비조차 사역비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학교에 학비가 밀려서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다음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수도 없고 저희가 안식년을 나올수도 없었는데 미납분 학비를 교회에서 보내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좋은 쉼과 재충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보통 한국에 들어오면 요즘은 많이들 부담스러워 하신다고 합니다.하지만 부족한 저희가 들어와서 저희가 속한 노회와 후원해주신 교회들께 인사를 드리니 모두 수고했다고 하시며 환영해주시고 격려해주시니 새힘이 나고 마음이 너무 감사했습니다.또한 부모님께서 아직 강건하게 버텨주고 계심이 감사합니다.

2.적응

만 4년전에 한국에서 우간다로 갈때는 적응에 이렇게까지 많이 힘이 들지는 않았던것 같은데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저희가 적응하는데 많이 어려웠습니다.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한국의 상황과 문화 그리고 도시의 생활은 우간다에서 온 저희가 넘어야 하는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아이들도 한동안은 아프리카로 돌아가자고 많이 졸라대더니 아이들이라서 금방 적응이 되는지 이제는 한국도 좋고 아프리카도 좋다고 말을 합니다.

아내인 김현수 선교사는 한국에 도착해서 말라리아도 걸리고 급성 중이염에 계속되는 감기몸살까지 거의 4개월 정도를 병원과 친구를 하고 지내더니 우간다를 너무 그리워합니다. 한국에서 그리운분들도 만나고 맛있는 한국음식과 편리함은 좋지만 역시 집을 떠나 있는 마음은 별로 편하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새 저희에게 우간다가 저희가 돌아갈 집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하지만 결국은 우간다도, 한국도 저희가 머물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아버지 계시는 본향에 들어갈 때에 진정한 집을 찾을수 있는 이방인이요 나그네라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큰아이 하영이는 중학교 3학년 나이라서 학교는 적응하기 어려워 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학원도 다니고 있고 수정이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아프리카와는 다르게 자기와 똑같은 말과 생김새를 가지고 있고 마음이 많이 통하는 한국에서의 초등학교 6학년 생활은 힘들기도 하지만 많이 재미있나 봅니다. 곧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한국말도 많이 늘어서 이제는 일기도 한국말로 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3. 돌아갈 준비

이제 한국에 적응이 되었나 싶은데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습니다. 김현수 선교사는 우간다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서 소포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우간다에서는 한국음식이나 꼭 필요한 물건들을 구할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소한것 하나까지도 챙겨가야 한동안은 생활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없는게 없다며 너무 신기해하기도 하고 마트에 가면 우간다에는 저게 필요한데 하면서 오랜시간 마트에 있는 모습에 그동안 한국에서 살았을때도 시골에서만 살았고 우간다에서도 결국은 오지에서 생활하면서 사람이 저렇게 변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저희가 많이 먹었던 음식이 자장면과 짬뽕이었습니다.한국에서 살때도 큰맘먹고 외식한번 한다 싶으면 함께 갔던게 자장면집이었습니다.요즘은 시골에 농사짓는 밭에서도 자장면을 주문하면 배달이 된다고 하던데 저희는 한번도 자장면이 배달되는 곳에 살아보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아내가 우리 자장면 배달되는 곳에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이사할 때 마다 말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결국은 자장면이 배달되는 곳에 한번도 살아보지 못하고 우간다까지 갔었습니다.한국에 처음에 와서 열심히 먹던 자장면을 이제는 아내나 아이들이 찾지 않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다른게 먹고 싶다나요.

4.그리움

한국에서 저희가 쉼을 얻는 동안에 우간다의 현지인 동역자들은 수시로 전화를 해옵니다. 처음에는 새벽이나 밤늦게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저희가 계속 우간다에 머무는 걸로 착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생활형편을 저희가 잘 아는데 그런 어려움속에서도 아프리카에서 한국까지 비싼 통화료를 내면서 안부를 묻고, 언제 돌아오냐고 묻고, 자신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처음에는 헤어진지 얼마 안되니까 그러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되어가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있는 우간다에서의 전화에 저희가 무엇이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조금밖에 나누지 못했는데 사랑이 그리운 그들에게는 너무나 좋아서 우리더러 언제 오는지, 속히 만나기를 바라는 화답을 해주는지..아내는 전화를 끊으면 돈도 없으면서 먼곳까지 전화를 하냐 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피식 웃음을 얼굴에서 지우지 못합니다.그리고는 집에 빨리 가자고 합니다.

피부색과 사는 환경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게 하시니 이런 사랑이 있나봅니다. 저희는 전화를 거의 못하고 지냈는데 미안한 마음과 보고싶은 마음이 많이 듭니다.

5. 후원

우간다에서 한국으로 나올때까지 우리 목회자들과 나누며 함께 기도한 제목들이 있었습니다.

먼저는 저희가 머무는 캅쵸라에 저희가 거처할 처소와 목회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와 공부,모임을 할수 있는 센터를 마련하는 것 이었습니다. 현재 130명인 목회자들이 앞으로 까라모종을 전도하고 그들을 세워서 선교사로 보내려면 숫자도 늘어나고 함께 머물며 훈련할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기도하며 땅도 함께 보러 다녔었고 마땅한 땅을 보고만 왔습니다.

두 번째는 트럭입니다. 저희가 까라모종 사역과 여러 가지 사역들을 할 때 제일 필요한것이 교통수단인데 차가 없어서 사역을 할때마다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트럭을 살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마지막은 아이들의 학비였습니다.학기가 시작될때 마다 우리 목회자들도 아이들의 학비가 없어서 기도로 매달렸고 저희 또한 아이들의 학비가 없어서 함께 기도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형편이나 상황이 어려우면서도 선교사가 사역으로 인해 자녀의 학비가 없어서 어려워하는 모습에 많이 안타까워하며 기도했었습니다.

이러한 재정후원을 받아야 함에도 한국에서의 생활동안 후원요청을 드리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요즘 한국이 많이 어렵다고들 하십니다. 저희도 한국에서 열심히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오병이어 우간다 가족들께 아프리카를 위한 특별주간을 선포하고 특별헌금을 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거리가 멀다고 마음도 많이 멀리있는 아프리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프리카인의 마음속에 있는 한을 그 한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사들이 감당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에 오히려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진것 모두를 드리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수 있었던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께서는 헌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8월 24일이면 다음사역을 위해 우간다로 돌아갑니다. 우간다로 돌아가면 머물 처소도 없고 차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금 삶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를 기다리는 동역자들이 있고 저희가 품고 기도하며 나아갈 까라모종 부족이 있고 그곳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행복합니다. 저희가 행복한 것처럼 우리 목사님과 성도님들도 한국에서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바쁘신 일상에서도 순간마다 역사하시고 위로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평안히 계십시오. 다음에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길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2009년 5월 12일
이땅의 순례자 최정호, 김현수 하영,수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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