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대리자로 서의 천사

역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천사 | 천사론
 
 
 

역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천사

 

金 在 鎭 (계명대학교 신학과 조직신학)

 

 

I. 들어가는 말

 

中世에는 천사에 대한 연구가 지나칠 정도로 매우 활발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로만)을 주장한 마틴 루터((M.Luther, 1483-1648)의 영향으로 천사 숭배는 거부된다. 그에 의하면 천사는 피조물과 같은 존재(Mitgesch pfe)이지, 창조주와 같은 존재(Mitsch pfer, concreatores)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천사를 하나님 통치의 수행자(Vollstrecker)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보호천사(Schutz-Engel)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존 칼뱅(J.Calvin, 1509-1564)이후 개혁 교회 전통 속에서는 보호천사에 관한 사유까지도 쇠퇴한다. 결과적으로 종교개혁 이후 천사론에 대한 논의는 신학의 교리적 주제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래서 천사론은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이후 조직 신학적 주제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는, 19세기 이전까지 전승된 천사론은 단지 개별-인격적(individuell-pers n- lichen) 천사론에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천사론은 자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대의 신화적 사고일 뿐이다. 그러나 칼 바르트(K. Barth, 1886-1968)는 자신의 교회교의학(Die kirchliche Dogmatik) III/3 에서; 천사들을 천사의 존재론(Ontologie)이 아니라, 천사의 기능론(Die Lehre von der Funktion des Engels)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는 천사의 역할을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이며 증언자(Verk nder und Zeugen Gottes)\"로 규정하고 있다. 천사에 대한 바르트의 규정은 천사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주목을 환기시켰다. 뿐만 아니라 천사에 대한 교의학적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주목되는 것은 성탄절 사신(Botschaft)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의 역할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가 그녀에게 受胎될 것을 告知한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는 큰 者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라\"(눅 1:30-32).
대부분의 교회에서(특히 어린이 주일학교에서) 매년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아기 예수의 탄煊?관한 연극을 한다. 이 연극에서 우리는 마리아에게 아기 예수의 수태를 고지하는 천사로 분장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래와 같이 천사의 모습을 연상해 본다: 과연 천사는 날개를 갖고 있을까? 멧세지(Message)를 전달하고, 하나님을 수종들고 찬양하는 사역 이외에 천사의 다른 사역은 과연 없는 것인가? 천사는 神인가 아니면 人間인가? 천사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까? ... 이러한 일련의 계발적인 질문들은 단지 천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만은 결코 아니다. 이러한 질문은 역사 속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실존적 질문이다. 왜냐하면 실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자신을 극도의 위기 상황으로부터 구원해 줄 천사같은 존재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문과 소망은 歷史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Gegenwart) 내지 하나님의 歷史 內的 實在와 관계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현존이 歷史 밖, 저 피안의 세계에만 국한될 때에,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현존이 時-空間 안에서 경험을 통하여 인식되어질 때만이 하나님의 존재가 참으로 믿어질 수 있고, 또 고난받는 자들에게 그 분의 현존이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의 小考는 천사에 관한 성서의 증언을 근거로하여 천사에 관한 존재론적 규명보다는 오히려 천사의 사역(Werk) 내지 기능(Funktion)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본 小考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갖고 천사에 관한 숙고를 시작하고자 한다: 천사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의 주된 사역은 무엇인가? 천사의 사역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천사의 역사 內的 현현형태(Erscheinungsgestalt)는 어떠한 것인가? 더 나아가 아래의 숙고는 천사의 현대적 의미를 분석하여 \"오늘날 우리를 위한 천사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천사가 단순히 하나님을 시중하는 천상의 존재(das himmlische Wesen)가 아니라, 역사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 속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百姓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원의 使者\"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사는 어려운 처지에서 여러 모양으로 고난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 보혜사적 사역을 감당하고자 역사 속에 현존하는 천상의 영적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Ⅱ. 하나님의 顯現양태(Erscheinungsgestalt)로서의 \"하나님의 사자\"

 

구약 성서의 초기 문헌들 속에서 \"使臣(Botschafter)\"과 \"천상의 존재\"는 아주 예리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후대 문헌들 속에서는 \"하나님의 使者\"가 \"천상의 존재\"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더 자세히 말하면, 후대 문헌들 속에서 \"천사\" 곧 \"하나님의 使者\"는 단순히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천상의 존재 곧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로서 다양한 하나님의 사역을 대행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 그러나 \"천상의 존재\"가 항상 \"하나님의 使者\"가 되는 것은 아니였다. \"하나님의 使者\" 곧 \"천사\"는 자신의 지상 사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현현양태(Erscheinungsgestalt)를 갖는다.
\"하나님 사자\"의 신적 현현양태는 우선 모세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출애굽기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使者\"(하나님의 사자)를 아래와 같이 아무런 설명과 전제없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2)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 \"(출 3:4)

이 두 증언을 결합하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자\"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 자신이다. 이 구절을 종합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분\"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분\"이다. 여기서 \"나타나신 분\"과 \"말씀하신 분\"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의 사자\"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주어 바꾸어 쓰기(Subjekt-Umschreibung)는 - 실제적인 주어는 동일하나 표현만 바꾸어 쓰는 것 - 아브라함의 하녀 하갈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이야기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갈이 자기의 여주인 사래에게 쫏기어 광야로 도망한다. 그녀가 술길 샘물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다(창 16:7-9). 하갈은 자신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를 직접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 16:13). 이 진술에 의하면 하갈의 대화상대자(Gespr chspartner)는 분명 \"여호와의 사자\"이다. 그런데 하갈은 자신의 대화상대자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 사자\"의 이러한 言辭的 일치 - 비록 주어는 바꾸어 쓰지만, 언어적 연속성에서 볼 때에 두 화자가 일치하는 것을 - 폰 라드(Gerhard v. Rad)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 야웨는, 하나님이 인간의 통각(Apperzeption) 속에서 들어오시듯이, 그렇게 천사를 세우신다.\"
이 진술 속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자손 번성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10). 그런데 창 15:10; 17:6.16 을 고려하여 볼 때에 \'자손 번성\'에 대한 축복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약속에 속한다. 따라서 \"여호와 사자\"의 약속과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약속이 \"자손 번성\"에서 일치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 하나님의 언사적 일치는 그 내용 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하갈의 이야기와 연관하여 \"여호와의 사자\"와 \"하나님 자신\"과의 言辭的 일치는 창세기 21 장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나님이 그 아이의(이스마엘: 필자 주)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 21:17) 여기서 \'아이(이스마엘: 필자주)의 소리를 들으신 분\'은 \'말씀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곧 \"하나님의 사자\"이다. 출 3:2,4 이 증언하고 있는 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자\'와 \'말씀하신 자\'의 일치를 고려해 볼 때에, 여기에서도 \'들으신 자\'와  \'말씀하시는 자\'의 언사적 일치가  발견된다.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 하나님의 언사적 일치는 또 다시 창 22 장 아브라함의 시험 이야기에서도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잡으려 할 때에(참. 창 22:10)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르는 기사가 나온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아브라함: 필자 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창 22:11). 이러한 언사적 일치는 창 22:15 이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서하노니 네가 이 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 \"(창 22:15이하).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가 가라사대 ... \"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의 주어 바꾸어 쓰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주어 바꾸어 쓰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을 부르는 \"여호와의 사자\"는 곧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다.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 하나님의 언사적 일치가 창세기 31 장에서는 人格的 一致 내지 同一性으로 나타난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가라사대 ...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 \"(창 31:11-14a). 평생을 걸쳐 여러 번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던 야곱이 이제 결정적으로 조상의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를 인격적으로 일치시키고 있다:

\"그가(야곱: 필자 주)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상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하나님의 사자: 필자 주)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성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창 38:15).

요셉에 대한 이러한 야곱의 축복 속에서 \"조상의 하나님\"과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를 - 일보 양보하여 - 동격으로 놓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사자\"로서 야곱을 건지신 하나님이라고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앞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사자\"와 \"여호와\" 하나님의 언사적 일치에 근거하여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는 천상의 존재로서 역사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현현양태(Erscheinungsgestalt)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역사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영적 실체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Ⅲ. 인간의 형상을 입은 천사

 

우선 창세기의 증언에 의하면,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나타나신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Isharim) 맞은 편에 섰는지라\"(창 18:1-2a).

\"세 사람의 형상\"을 입고 역사 속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라에게 아기 수태를 고지한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 더 나아가 아브라함이 눈으로 본 \"사람 셋\"이 천사라는 사실은, 이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관하여 아브라함과 대화를 나누고(참. 창 18:20-33)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갔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창 19:1a). 이러한 창세기의 증언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세 사람의 형상\"으로 역사 속에 나타나신 분이 바로 \"천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 자신과 인간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사자(천사)\"는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使者를 보내는 하나님 자신과 보냄을 받은 使者는 분리되지 않고 아주 긴밀하게 서로 결합되어 있다 (참. 창 18:1-2,8,14,18-22). 바꾸어 말하면 천사는 역사 속에서 \"사람의 형상\" - 창세기 18장에 의하면 \"세 사람의 모습\" - 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현존실체(Daseinsrealit t)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천사는 곧 하나님의 \"대리자(Vertreter)\"이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과연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을 수 있을까?
에스겔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겔1:26).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은, 逆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으로 반증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동시에 천사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 의지에 근거한 것이다. 즉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입으시고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상의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천사\"로 명명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형상\"을 입은 천상의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使者)\" 혹은 \"하나님이 보낸 사신(使臣)\"이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천사\"로 나타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천사\"가 처음부터 인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존재임을 증언하는 성서의 증언도 있다. 예언자 학개(Haggai)가 \"여호와의 사자\"(학 1:13)로 명명되고 있다. 또한 제사장이 \"여호와의 사자\"로 명명되기도 한다. 말라기는 제사장을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말 2:7)로 명명한다. 천사장 가브리엘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다니엘에게 나타난다: \"나 다니엘이 이 이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貌樣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단 8:15-16; 9:21). 천사가 인간의 형상을 입은 흔적은, 천사의 기능에 대한 다양한 명칭들 속에서도 증명된다. 천사는 기능에 따라서 때론 \"섬기는 자(Diener)\"(창 24:7,40)로, 때론 \"國使 혹은 使節(Legat)\"(출 23:20,23; 32:2,34), 때론 \"해방자\"(민 20:16), 때론 \"보호자 및 인도자\"(출 23:20, 비. 말 3:1)로 명명되고 있다. 이러한 명칭들을 천사가 천상의 존재일 뿐아니라, 인간의 형상을 입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先知者 역할을 행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先知者들을 열방으로 보내신다. 즉 선자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다: \"내가 ...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 1:7).
신약성서의 증언에 의해서도 천사는 구약성서에서와 마찬가지로 때론 인간적 使臣으로도 나타난다(눅 7:24-27; 9:52; 약 2:25 비. 마 11:10, 병. 막 1:2 <구약성서 인용>).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눅 7:24-27과 약 2:26(참. 수 20:1-22)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세속사 속에서 활동하는 人間으로 - 세례요한과 가나안 정탐꾼 - 표현되기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사\"로 나타나시는 것, 곧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형태(Gestalt)를 입는 것을, 미하엘 벨커(Michael Welker)는 \"하나님의 자기축소(Selbstzur cknahme Gottes)\", 내지 \"하나님의 상대적 자기포기(relative Selbtverendlichung Gottes)\"라고 특징짓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자\"는 자연과 같은 피조물(nat rliche Gesch pfe)로 인정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자\"는 언제든지 \"천상의 존재\"로 머물러 있다. 이것은 마치 나사렛 예수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낮아지셨지만(Gottes Selbstherablassung), 곧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셨지만(Gottes Menschwerdung), 예수가 전적으로 자연적인 피조물이 아닌 것과 같다. 그렇지만 벨커는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를 축소하고, 신적 본질을 포기하여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단지 \"문화적 피조물(kultureller Gesch pfe)\"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상을 입고 歷史 속에 현현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Diakonia)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기에, 인간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말을 걸어오시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참으로 인격적으로 현현하는 살아 계신 분이라는 것이다.

 

Ⅳ. \"하나님의 사자\" 혹은 천사의 삼중적 사역

 

   Ⅳ,1. 천사의 예언자 및 사도적 사역

\"하나님의 사자\" 혹은 천사는 히브리어 \"    \"의 우리말 번역이다. 구약성서에서 \"    \"은 주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使臣(Messenger)\", 곧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는 先知者\"(학 1:3)를 가리킨다. 특히 그 使臣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성서는 이러한 존재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자\"(말 3:1) 혹은 \"천사\"로 일컫고 있다. 신약성서의         도 천상의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눅 7:24)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천사의 지상에서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이다.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인 천사의 사역은 곧바로 예언자적 사역에 상응한다. 왜냐하면 구약성서에서 우선 \"하나님의 사자\"가 \"예언자(Nabi)\"로 명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학 1:3)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 1:13)

이 두 문장을 고려해 볼 때에, \"선지자 학개\"는 \"여호와의 사자 학개\"에 상응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진술하는데 있어서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는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 고하여 가로되...\"에 상응한다. 이러한 평행구에 따르면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였던 것과 같이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도 여호와의 使臣으로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사자\"가 예언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레미아의 소명 기사에서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 1:7). 이 본문이 제시하는 바는, 여호와께서 보내는 자 곧 \"하나님의 사자\"는 여호와께서 명하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임을 알 수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자의 입에 붙여졌다(렘 1:10)는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 말씀의 代言者요, 그가 하나님에 의해서 백성들에게 파송되었다는 의미에서는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이다.
천사들의 예언자적 사역은 역대하 36:15f.; 겔 30:9; 사 44:26 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역대하 36:15이하에서 역대史家는, 유다 왕국이 멸망한 근거를 \"여호와의 사자\"를 거부한 것, 곧 선지자들의 사신을 거부한 것으로 본다: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대하 36:15-16)
역대하 기자에 의하면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전, 그 당시 하나님의 \"先知者\"들은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사자\" 곧 선지자들의 말씀(Message)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게 된 것이다.
이사야서 44:24-28 에서 하나님의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고레스를 통하여 재건되기로 결정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다. 특히 26절 상반절의 예언에 의하면, 이사야 기자는 \"내 종(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使者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26a)와 같이 \"내 종(선지자)\"은 아무런 전제없이 그냥 \"내 사자(mal\'aki)\"로 바꾸어 쓰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여호와의 종, 선지자의 예언은 곧 使者의 예언이다. 여기서도 \"여호와의 사자\"는 예언자적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천사의 예언자적 사역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보여준 환상을 해설해 주는 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슥 1:9). 이러한 통역자 혹은 \"해설자 천사(angelus interpres)\"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고, 또한 그 의미를 가르치는(다니엘 8:15-16; 9:21 비. 요 14:26) 일을 한다. 즉 \"해설자 천사\"는 말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증언과 관련시켜 볼 때는, 천사 곧 \"하나님의 사자\"는 사도적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 기술 이후의 유대교(im nachbiblischen Judentum)에서는 사도(Apostel)가 예언자로 불리워졌다. 기독교 이전 그리스에서 사도는 \"파송하는 행위 내지 파송을 받은 자\"를 뜻하였다. 그리고 사도와 선지자는 모두 교회 위에 세워진 지도자 중의 하나이다(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使徒요 둘째는 선지자요 ...\" (참. 엡 2:20; 3:5; 비. 행 18:50). 그래서 바울은 사도를 옛 선지자들의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였다. 사도, 선지자 그리고 천사들의 주요 임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告知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三者는 동일한 사역을 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약 성서 안에서 使徒, 先知者 그리고 하나님의 使者로서의 삼중적 사역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 우리는 세례요한을 들 수 있다. 세례 요한은 우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使者 곧 천사이며,  구약의 마지막 先知者이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앞서 선포한 使徒이다. 이를 우리는 복음서의 증언들에서 유추할 수 있다. 우선 마가복음은 말라기 3:1을 인용하여 세례요한을 여호와의 사자로 증언하고 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막 1:2). 그러나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자기 자신의 使者로 증언하고 있다(눅7:28). 그런데 말라기 예언서의 의하면, 이 사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이 두 증언을 종합하면, \"주의 천사\"와 \"하나님의 천사\"는 일치한다(행 10:3; 27:23, 비. 계 22:6). 이러한 의미에서 세례요한은 \"주의 사자\"이자,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다. 이와 상응하게 \"하나님의 사자\"는 신약에서 \"주님의 천사(              )\"로 바꾸어 쓰인다: \"주의 천사가 현몽하여 가로되 ... \"(마 1:20 이밖에 마 1:24; 2:13.19; 눅 1:11.19; 2:9-12). 그런데 신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자를 선지자 혹은 사도로 명명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에, 세례요한은 使徒이자, \"주의 사자\", 곧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례요한은 주의 사자이자, 동시에 주의 使徒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약에서 \"주의 천사\"는 \"여호와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말씀 곧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도적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구약의 증언을 통하여 볼 때에 천사의 주된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대언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역을 행하는 지상의 존재를 특별히 구별하여 구약에서는 선지자 곧 예언자로 명명하였고, 신약에서는 사도로 명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의 주된 사역은 예언자적 혹은 사도적 말씀 선포의 사역임을 인식할 수 있다.

 

      IV,2. 천사의 제사장적 사역

말라기 2:6이하의 증언에 의하면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使者\"(말 2:7)로 지칭되고 있다. 이 본문이 지시하는 바는, 우선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사자\"라는 뜻이 아니라,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사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귀절이다. 이 말은 제사장이 존재론적으로 천상의 존재인 \"하나님의 사자\"가 아니라, 그 역할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代言하고, 전달하는 者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자\"인 것이다. 구약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율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에,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지식을 지키고, 사람들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는\"(말 2:7) 역할을 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단지 제사장으로서 말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보다 더 가까이 있으면서 - \"나와(여호와와) 동행하며\"(말 2:6) - 동시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Botschaft)을 전달하고, 인간들을 죄악에서 돌이키는 사역을 감당한다.
천사의 제사장적 사역과 관련해서 신약성서는, 율법이 \"하나님 사자\"의 중재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 (행 7:38a). 이러한 증언은 천사의 제사장적 사역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모세와 대화를 나누시고 율법을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사도행전이 증언하는바 천사의 사역은 율법 곧 하나님 말씀의 증재자이다. 이렇듯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를 율법의 수여자 내지 율법 수여를 위한 \"중보자\"로 증언하고 있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갈 3:19b). 한 마디로 말해서 천사는 천상에서 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히 1:7)이다.  따라서 율법 수여와 관련하여 볼 때에, 천사는 제사장적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반대로 천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는 일도 한다:
\"여호와의 使者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天使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응답하시더라\"(슥 1:12-13).
이러한 이스라엘을 위한 천사의 代言은 전형적인 제사장적 사역이다.

 

      IV,3. 천사의 메시아적 사역

신약에서 천사는 세례요한의 출생 이전에 등장한다(눅 1:11, 18-20). 뿐만 아니라 천사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고지한다(마 1:26-38; 막 1:20-21). 천사들은 동시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도 고지한다(눅 2:9-15). 계속해서 천사들은 예수를 그의 공생애 동안 계속해서 수종든다(마 4:11; 눅 22:43). 천사는 예수 부활시 무덤의 돌을 치웠고, 주님의 부활을 여인들에게 고지한다(마 28:2-6). 이렇듯 천사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단지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못한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한다(마 26:53).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를 천사 위에 계신 분으로 증언한다: \"저가(예수가: 필자 주) 천사보다 얼만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히 1:4f.). 이러한 천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은 천사의 메시아적 사역을 암시해 준다.
우선 구약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하나님의 使者\"는 하나님과 인간의 中保者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나타난다(창 16:7; 19:1; 31:11; 출 3:2; 삿 2:1-5; 6:11-12; 슥 3:1-6 등등). 신약성서에서도, 특히 갈라디아서 3:19-20는 천사를 \"중보자\"로 나타낸다: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 \"(갈 3:20 절). 이러한 증언은 천사의 메시아적 사역을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딤전 2:5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사의 메시아적 사역은 천사가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사 42:19에 의하면 하나님의 천사는 곧 \"하나님의 종\"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의 위상(Status)이고 \"하나님의 사자\"는 이스라엘의 역할(Funktion)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이 집단적인 의미건 아니면 개인적인 의미건 전통적으로 이사야 42장이 고난의 종으로서 메시아적 사역에 관한 증언이라는 사실을 수용한다면, 천사의 기능은 더 말할 나위없이 메시아적 사역을 감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와 상응하게 빌로우비(Willoughby)도 이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웨의 도구이다. 그 백성은 야웨의 말씀을 수행해야 하고, 야웨의 사랑과 인간에 대한 결합을 대리해야 하는 백성이다.\"
천사의 메시아적 사역은 \"고대 인자-기독론이 천사에 대한 수식어를 - 비사멸성(Unsterblichkeit), 성변화성(Transexualit t), 천상의 거룩성(himmlische Heiligkeit) - 기독론적 의미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천사의 메시아적 사역은 \"보호천사(Schutzengel)\"(마 18:10; 비. 행 12:15; 5:19; 12:7)의 사역에 상응한다. - 이 점에 관하여는 다음에 이어지는 제 Ⅴ 장(약하고, 억압받는 자를 돕는 천사)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Ⅴ. 약하고, 억압받는 자를 돕는 천사.

 

구약에서 최초로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6장이다. 창세기 16장의 증언에 의하면 하갈은 사래의 학대에 못이겨 광야로 도망하고 있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자식을 기다려도 자식을 얻지 못한 사래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자신의 여종 하갈을 자신의 남편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낸다. 하갈이 아이를 잉태하자 여주인 사래를 멸시한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나이다\"(창 16:4-5a). 이러한 사래의 탄원을 들은 아브람은 하갈을 사래의 손에 맡긴다. 그러자 사래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학대한다(창 16:6). 하갈은 그 학대를 못이겨 사래 앞에서 도망한다(창 16:6b). 하갈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광야에서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를 만난다. 이 때에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을 위로해 주고, 그녀에게 자손 번성의 약속을 해 준다: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녀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 16:10-11).
여기서 우리는 하갈의 처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래의 여종 하갈이 무엇 때문에 학대를 받아야 하는가? 자기의 여주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여, 자기(하갈)를 통하여 자식을 낳아달라고 부탁하였고, 자기의 여 주인(사래)이 시키는대로 자기 여주인의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아이를 잉태한 죄 밖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갈이 원하여 아브람을 남편으로 맞았는가? 그렇지 않다. 하갈은 여주인 사래의 말에 순종한 것뿐이다. 물론 아이를 잉태하고 보니 교만해 졌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모든 원인은 여주인 사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실상 아이를 갖고 보니 여 주인 사래가 시샘해 자기를 학대한다고 남편에게 告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하갈은 쫓겨나 광야에 유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당시 광야에 쫓겨남을 당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내어 쫓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경에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난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하갈을 위로하고 하갈더러 다시 여주인에게 돌아가라고 명한다. 그러자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가 명하는 대로 다시 아브람에게 되돌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사래의 시기질투와 학대는 계속되었다. 이 학대에 대한 얘기가 다시금 창세기 21장 8절 이하에 나온다. 여주인 사래의 아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아브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 준다. 이 때 사라가 보니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의 아들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껴서 사라는 다시금 아브람에게 告하여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고자 한다. 그러자 \"아브람이 아침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내어 쫓으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광야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고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放聲大哭하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쏘는 자가 되었더라\"(창 21:14-20a). 이상의 하갈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는 억울하게 고난받는 여종 하갈과 이스마엘, 곧 약한 자와 힘없는 자를 보호하며, 죽음의 상황에서 건져 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초기부터 권세있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억압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다.
이제 \"하나님의 천사\"는 \"애 못낳는 여자의 설움\"을 위로해 주시고, 그에게 \"잉태\"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시는 복음의 메신저로 나타난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8장에 나온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그 나이 100 세가 다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애 못낳는 여자\", 이러한 여자는 우리나라에서도 七去之惡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래는 궁리 끝에 자기의 몸인 하갈을 자기 남편의 첩으로 들여보낸다. 이것은 여인에게 있어서는 더 없는 고통이다. 자기의 여종을 남편에게 들여보낸다는 것은 정부인으로서의 자기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이러한 포기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래는 자기의 여종 하갈로부터 멸시를 당한다. \"애 못낳는 여자\" 그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자기의 남편을 자기의 몸종에게 빼앗기고, 그 몸종은 아이를 \"잉태\"하였다고 자기를 멸시한다.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이라면, 운명이랄까? 아니면 자기가 자처한 고통이라고 할까? 어쨌든 사래는 여인이 당하는 최고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어느날 천사가 나타난다. 어느날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세 천사가 아브람에게 나타난다(창 18:1-5). 아브람의 대접을 받은 \"하나님의 세 천사\"는,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9-10)고 약속해 준다. 그렇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천사\"는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멧세지를 전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 다음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로 옮겨지면서, 구체적으로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고 롯의 식구들의 생명을 구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창 19:15-17).
위기 상황 속에서 약하고, 힘없는 자를 구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자\"는 미리암에게 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는 악한 자의 저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해 준다. 이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군하여 모압평야에 이르렀을 때에, 모압 王 십볼의 아들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해서 모압 장로와 미디암 장로들을 통하여 발람을 청하러 보낸다. 그 때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나타나서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福받은 자니라\"(민 22:12)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은 보다 더 높은 귀족을 보내서 발람을 청한다. 그 때 하나님은 발람의 나들이를 허락하신다. 그리고는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 22:20)는 단서를 붙인다. 그러자 발람은 나귀를 타고 모압 왕 발락에게로 간다. 이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발람의 행차를 막는다. 이 이야기가 민 22장 21-35절에 나타난다.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이스라엘을 악한 저주로부터 막는다.
이제 \"하나님의 천사\"는 다시금 여호수아에게 나타난다. 여호수아 5장 13절이하는 여호수아가 하늘의 군대장관 즉 천사장을 만난 장면을 보고하고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城의 견고함으로 인하여 가나안 정복의 희망을 포기할 정도로 무기력해져 있을 때였다. 눈 앞에 여리고 성을 두고 무기력해져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전쟁의 용사로서 하늘 군대의 천사장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천사는 위기에 직면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言約(참. 창 17:7ff.)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나타난 것이다.
좌절과 억압 속에 있는 연약한 사람을 돕는 천사의 사역은 신약 성서의 증언에서도 발견된다. 천사는 옥에 갇힌 베드로를 구출해 준다(행 12:1-15). 옥에서 구출된 베드로는 자신을 구출한 분은 \"주님\"이라고 증언한다: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행 12:17; 비 5:19). 이러한 베드로의 증언은,  主님이 당신의 천사를 통하여 자기를 옥에서 해방시키신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천사의 사역은 그를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상응한 사역을 행하고 있다(비. 눅 4:18 :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인용. 사 61:1-2).
이상 앞에서 언급한 천사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 바르트(K.Barth)가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 神的인 능력을 갖고 이 피조된 세계 안에서 구원의 중재자적 사역을 행하는 천상의 존재가 천사이다. 그래서 바울은 천사의 사역을 아무런 조건없이 성령의 사역으로 기술하고 있다(고전 12:4-6; 고후 13:13, 비. 엡 4:4-6). 이에 상응하게 히브리서도 천사를 \"섬기는 영\"이며, 구원받은 사람들을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보고하고 있다(히 1:14). 더 나아가 신약성서의 몇 개의 구절은 천사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聖靈과 동등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딤전 5:21; 계 14:10; 비. 막 8:38 병. 계 1:4f.). 그래서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하나님께서 천사로 나타나시는 것은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 하나님의 천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행위들이 이 세상에 접촉된다\"고 주장한다.

 

Ⅵ. 마무리 짓는 말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천사는 인간과 같이 하나님에 의해서 피조된 인격적 특성을 가진 신적 본질의 실체이다. 즉 천사는 보이지 않는 천상의 영적 존재가 歷史 內에서 실존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천사를 육신을 입을 수 있는 영적 존재로서 불멸하는 존재로 증언하고 있다. 천사는 - 타락한 천사를 포함하여 - 보이지 않는 천상의 세계에 속해 있고, 특히 타락하지 않은 천사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사탄이나 악한 세력과 대항하여 싸운다. 그리고 천사들이 고유하게 실존하는 세계는 하나님과 인간 세계 사이의 중간영역(Zwischereich)이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 천사는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를 중재한다. 이 중간영역은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중재를 위한 사역의 영역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천사들이 활동하는 세계는 하나님dl 인간의 세계 속에서 역사하는 영역이다.
구약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천사는 단순히 천상에서 하나님을 시중하는 영적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의 주된 사역은 첫째 使臣(Botschafter)의 역할, 즉 구원의 멧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천사 사역의 두 번째는 구원사역(Hilfswerk)이다. 즉 위기에 직면한 연약한 인간을 돕는 일이다. 그리고 세 번째 천사의 사역은 넓은 의미에서 신적 사역을 대리하는 것이다. 즉 천사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 속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의 使者\", 곧 역사 속에 현존하는 하나님 전권대사(Bevollm chtiger) 내지 대리자(Mandatar)이다. 신약에서도 \"주의 천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Botschaft)을 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일을 행한다(마 1:20ff.; 2:13.19f.; 28:5; 눅1:11f.; 2:9ff.; 행 8:26; 10:3.22; 참. 삿 13:3ff.; 왕하 1:3.15; 눅 1:26ff.: 가브리엘 눅 24:23). 부활절 이후의 기사에서 주의 천사는 사도들을 옥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을 강건하게 하며(행 5:19f.; 12:7ff; 27:23f), 헤롯을 심판한다(행 12:23)\". 이러한 일들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천사는 부득불 신적 형상과 인간적 형상 그리고 고유한 천사의 형상을 갖는다.
특히 천사의 중재자적 구원사역을 고려해 볼 때에, 천사론은 기독론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가 존재론적으로 \"Immanuel(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인간)와 함께 하신다\"이시라면, 천사는 기능적인 의미에서의 Immanuel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기 예수에게 천사를 통하여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하나님께서 부여한 것은 결코 아기 예수의 탄생고지에서부터 비로서 처음으로 선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항상 우리 인간과 함께 하시는 사역을 천사를 통하여 행하여 오셨다. 즉 하나님은 처음부터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혹은 천사의 모습으로) 역사 속에 현현하시는 메시아(그리스도)이다. 곧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의 형상을 입고 이 역사 속에서 천사의 사역을 행하시는 살아계신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를 참 신이요,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으로 고백하는 것은 결코 추상화된 순수 교리적 진술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