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

  관상 기도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5:8 )하고 말씀 하셨다.이것은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를 보고 살자기 없다\"( 출 33:20 )고 하셨고,사도요한도  \"보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요 1:18 )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을 볼 수 있다니 어떻게 본다는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는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은으로 바라 볼 수는 있다.항나님이 내 영혼 안에 현존하는 것을 믿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은 내 영혼 안에도 계시지 않겠는가? 이렇게 우리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응시하는 것을 관상 ( contemplation )이라고 한다.
  그러면 관상 기도는 무엇인가? 관상기도는 침묵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말만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침묵하고 의식도 침묵한다.이런 절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그래서 관상기도는 말과 이미지와 생각을 최소한도로 사용하거나 아에 사용하지 않는다.거저 고요함 속에서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응시하기만 한다.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느낀다.이런 의미에서 관상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기도다.
  관상 기도는 묵상 기도와 다르다.관상 기도는 말과 생각과 이미지를 사용한다.그러나 우리 기도가 진보할 때.이런 기도의 매개체는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곧 언어의 한계에 부딪힌다.그러면 우리는 우선 말을 멈추게 된다.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하면 말문이 완전히 막히고 만다.이렇게 기도하는 도중에 말문이 막힌 경험이 있는가?그러면 당신은 이미 관상 기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관상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한다.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해주셨다.\"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너희가 내 안에.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 : 20 ).참으로 엄청난 약속이다.본래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고,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었다( 요17 : 231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거하는 그 신비에 우리 인간이 참여하다니,이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여\"아버지께서 내 안에,내가 아벚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 : 21 )하고 기도 하셨다.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아들 안에 있게 해 달라고 기도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관상기도를 하는가?우리으 산만한 마음이 하나가 될 때가지 그냥 우리 마음을 한없이 들여더보면 된다.처음에는 온갖 망상과 잡념이 다 떠오를 것이다.그러나 이들을 억압할 것이 아니라 그냥 풀어 놓는다.떠오른 잡념을 의식하고 흘려 보낸다.생각을 알아차리고 떠나 보낸다.그러면 어느 단계에서 마음에 평정( 아파테이아)이찾아온다.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며.하나님을 사랑이 눈으로 바라볼 수있게 된다.
  이것은 남방 불교에서 정념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는 \'위파사나\'의 수행법과 비슷한 면이 있다.\'위파사나\'는 \'존재의 특성\'을 의미하는 \'위\'와 \'본다\'를 의미하는 \'파사나\'의 합성어다.위파사나는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음으로 \'찰라의 열반\'을 얻고.이것을 확대하여 지속적인 깨달음의 열반을 얻는 것을 추구한다.그러나 기독교의 관상에서는 바라보는 것 자체보다 바라보는 대상이 중요하다.마음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관상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 차리기 위해 관상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마음 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그래서 보통은 과상 기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첬째로, 단문 기도문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방법이 있다.떼제 공동체에서 반복하여 부르는 찬양 기도문을 곡조에 실은 아주 좋은 찬미기도문이다.\"주를 찬미 하나이다.주는 좋으신분 주를 찬미 하나이다.알렐루야\"같은 찬양을 20-30분 정도 반보하다 보면 자연스렵게 광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둘째, \'예수 기도\'를 통해 관상 기도에 들어갈 수 있다.예수 기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여.나를 불상히 여기소서\"하고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것이다.예수 기도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 : 24 )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예수님 기도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상히 여기소서\"(눅 18 : 38 )하고 기도한 맹인 바디메오의 기도와 \"하나님이여 불상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 : 13 )하고 기도한 세리의 기도에서 유래했다.수도사들은 이 두 기도를 합하여\"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상히 여기소서.\"하고 기도하기 시작 했다.동반교회 수도사들은 이 예수 기도 하나만 가지고도 관상의 상태에 도달한다고 한다.
  셋째, 센터링 기도 (Centering Prayer)가 있다.이것은 미국 카톨릭 교회의 수도사 토마스 키탕 신부가 관사을 현대인에게 대중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이다.센터링 기도의 반법은 아주 간단하다.주님이 우리 마음 안에 현존해 계신 것을 믿고\"주님\"하며 주의 이름을 부른다.그 다음 우리 마음을 강물이라고 생각하고 서서히 떠오르는 잡념들을 하나씩 차레로 떠나 보낸다.그러면서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간다.
  넷째, 좋은 성화나 이콘 (icon)을 바라보는 것도 관상으로 들어가는 좋은 방범이다.이콘을 바라볼 때 생각이 쉽게 멈추고 영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보며 관상 기도에 들어가기도 한다.\"하나님 당신은 이 바다보다 더 크신 분이시겠지요\"하며 바다이 수평선을 바라 볼 때,우리는 이미 바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관상 기도는 믿음의 기도다.처음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내 안에 계신 것을 믿고 어둠 속에서도 주를 바라보기 때문이다.관상기도는 소망의 기도다.하나님이 내영 안에 나타나실 것을 바라고 기다리기 때문이다.관상기도는 정화의기 도다 나의 잡념과 고통스런 정서 속에서 나의 육과 거짓 자아를 발견하고 겸손하게 인정하기 때문이다.관상기도는 사랑의 기도다.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사랑 속으로 녹아 들어가기 때문이다.관상기도는 안식의 기도다.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으 영이 푹 쉬기 때문이다.
 
 광상 기도를 하다보면,때때로 활홀경 즉 에스타시( ecstasy )를 경험하기도 한다.에스다시는 내가 나의 밖에 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내가 나의 밖으로 나오고 그 자리에 다른 영적 존재가 들어옴으로써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이다.그러나 관상기도의 황홀경은 이와 다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안에 오시지만, 절대로 우리영을 무력화시키지 않으신다.우리 영은 더욱더 자기 자신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사랑으로 바라보게 된다.사도바울도 삼층천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떼 바울은 자기가 자기 안에 있었는지 자기 밖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그러나 바울은 낙원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고후 12 : 1-4 ).그느 주님의 말을 분명히 들을 만큼 의식이 또렷했다.황홀경은 관상 기도의 목적은 아니다.하나님을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부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혀상이다.
  그러나 관상 기도는 황홀경은 아나더라도 최소한 영의 안식을 경험하게 해 준다.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영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어쨌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하나 되고 하나님 안에서 푹 쉴 수만 있다면 ,유한한 우리 인생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이것이 바로 천국에서 맛볼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 땅에서 미리 경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