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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가자―성경 대탐구 (제2편) 정경화 작업 ②]
공관복음 철저히 ‘인간 예수’에 초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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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관(共觀)복음이란 복음서 기자가 나사렛 예수를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본 복음서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여기에 속한다. 이 복음서는 예수를 \'때로는 철저하게\' 인간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복음이다. 그래서 공관 복음은 서로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공통 자료가 많다. 이에 반해 4복음서 중 하나인 요한복음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요한복음은 공관 복음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공관 복음의 기자들은 예수의 3년간 공생애(public ministry)와 십자가 처형, 3일 후 부활, 그리고 부활 뒤 40일 만의 승천에 대해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기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자신의 의지를 꺾고 시험당하시는 예수의 인간다움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인간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귀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초로 쓰여진 마가복음=복음서 가운데 최초로 쓰여진 것은 마가복음이다. 나머지 공관 복음인 마태와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복음서를 연구하는 성서비평학자들은 먼저 마가복음에 눈을 돌리곤 한다. 마가복음의 기자는 나사렛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난 사건도, 수태고지로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그렇게 심각하게 주목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들은 예수의 신성을 논하기엔 덜 적절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대중의 눈에 포착된 인간 예수에 주목한다. 예컨대 예수가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들렸던 그 음성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인지 마귀의 음성인지를 분별하는 장면과 나아가 \'자신이 누구인가?\'를 연거푸 묻는 상황을 마가복음의 기자는 비중있게 서술하고 있다. 광야에서 돌아와 \"하나님 나라가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언한 그 시점부터 예수의 삶은 공생애로 접어든다. 공생애란 예수의 개인적인 생활과 반대되는 개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수는 공생애 3년의 기간 동안 갈릴리 일대를 누비면서 성서를 가르치고 병자를 치유하고 악귀 들린 자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새벽에는 깊이 기도하고 낮에는 가르치면서 주변에 모여든 제자들과 어울리는 데 시간을 보냈다. 대중의 혼을 깨운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공생애에 대한 소문은 갈릴리 일대를 순식간에 넘어 예루살렘과 유대, 사마리아와 헬라 지역, 시리아 지역까지 퍼져나갔다. 당시 예루살렘은 잘못된 신관과 거짓 종교의 본산지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30여㎞ 떨어진 가이사랴 빌립보는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던 로마 총독의 지휘부가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빌립보는 잘못된 신관이 자리잡고 있던 유대 종교의 뇌관이었다. 갈릴리에서 지지기반을 확충한 예수는 12제자를 이끌고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까지 북상한 것이다. 그 현장에서 예수는 공생애 전반기 사역을 마무리하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7) 구름처럼 따라다녔던 대중은 예수를 예언자라고 생각했다. 마치 비운의 생애를 걸었던 예레미야, 엘리야, 세례 요한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홀연히 나타나 질풍노도와 같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이던 목수 출신, \'방랑의 전도자\'가 대중들의 눈에 비친 초기 예수의 초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람은 예외였다. 제자 베드로의 고백은 그야말로 우주 저 끝을 관통하고도 남을 만한 영적 직관력을 보여줬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 자신의 정체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도를 테스트한 뒤 예수는 아주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한다. 마가복음의 기자는 이 순간을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당시 상황은 예수의 영적 권능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대중의 열기와 지지는 현실 정치의 기대로 이어졌다. 그 결과 예수는 유대 당국과 로마 제국에게 가장 위험하고 불온한 인물로 지목된다. 엄청난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권능과 카리스마를 발휘한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열정 때문에 당국자들의 중추인 예루살렘 성전을 혁파하고자 한다. 당시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으로 봉사돼야 할 성전이 종교 지도자들의 권력 아지트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택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유월절은 유대 민족의 해방절이다. 급기야 예수는 로마 제국에 항거한 정치적 음모자요 유대인의 왕으로 참칭하는 불온한 혁명아로 누명이 씌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부터 성서를 읽는 독자들은 긴장해야 한다. 마가복음을 포함, 공관 복음은 예수의 죽음 이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비겁하기 짝이 없었던 제자들은 용사가 돼 다시 뭉쳤고 전 세계로 파송되는 능력을 발휘한다. 무엇이 그들을 급진적인 변화로 몰고 갔을까? 지금까지 수많은 심리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들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그 어떤 가설도 마가복음의 단순한 설명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기자는 제자들의 급진적 변화에 대해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봤기 때문\"이라고 정곡을 찌르고 있다. ◇예수의 죽음 이후=예수의 죽음은 어쩌면 만인의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의 부활은 오직 제자들에게만 보여진 사건이다.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반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는 부활 후 40일 동안이나 지상에서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친 뒤 승천하셨다. 승천 후 10일은 오순절이다. 바로 이 오순절에 예수가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다. 나사렛 예수가 외친 하나님 나라는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 더욱 선명하게 역사 속에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나라를 세계 속에 확산시키는 통로였다. 구약성서에서 단편적이고 간헐적으로 실체화됐던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구체화된 것이다. ◇정경화 된 신약성서=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담고 있는 신약 성서가 정경화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세기가 마감되던 시기까지 초대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했던 기독교의 정경은 구약 성서뿐이었다. 2세기 중반, 파피아스와 폴리캅 시대에 이단자 마르시온의 도전으로 신약 성서의 정경화는 불가피해진다. 363년 역사상 최초로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기독교 정경 채택을 위한 회의가 열렸고, 367년 드디어 27권의 신약 성서가 채택되기에 이른다.
- 국민일보 남병곤 선임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