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속에서 치유기적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1) 초대교회 Irenaeus, Tertullian, Origen은,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미래를 예언했다. 많은 자들이 인간이나 귀신에 의해 치유될 수 없는 정신질환과 여러 가지 질병에서 놓임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라고 기록했다. Irenaeus, Tertullian 등도 실제로 병 고치는 사역을 했다고 한다. AD 313년에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교회는 제도화되고 형식화되면서 이런 영적 은사가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교회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서방교회와는 달리 동방교회에서는 Basil, Gregory of Nyssa 같은 대 감독들에 의해서 치유사역이 강조되고 계속되었다. Augustine -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Augustine은 그의 초기 저서에는 “병 고침의 은사는 오직 1세기만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기적적 치유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그의 말년 424년에 『신의 도성』의 마지막 부분을 저술하면서 그 당시 자신이 살던 히포에서만 70건의 기적적인 이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지지 않음으로써 후대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그 후 어거스틴은 죽기 3년 전에 그의 책에서 초기 견해를 수정했다. 2) 중세 교회와 종교 개혁 중세교회 때는 성령의 은사를 따라서 병 치유사역을 하기보다 오히려 치유사역을 제도권 안으로, 예식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성례전을 통한 치유사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치유 은혜는 예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수된다는 입장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로마가톨릭의 입장을 개혁했다. 성령의 은혜는 자유롭게 인격 안에서 말씀으로 역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런 전통은 성령의 은사를 너무 말씀의 사역에만 국한시키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기적적 은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예수의 구속사역이 진행될 동안, 성경의 정경이 기록될 때까지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가 개신교 안에 고정된 견해로 자리 잡았다. Martin Luther는, “참된 기적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지, 육체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루터도 어거스틴처럼 그의 생애 말년에 그의 제자 멜랑톤이 죽기 일보 직전에 자기의 기도로 고침 받는 것을 보고 입장을 바꾸었다. 그 후 5년 후 루터는 죽기 얼마 전에 야고보서에 근거해서 치유사역의 지침서를 남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새로운 발견을 통한 확신과 믿음을 신학화 하지는 못했다. John Calvin도 치유사역은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질병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것이 치유를 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질병을 하나님이 영적 유익을 위해 주시는 징계로 이해한 것이다. 이런 견해가 은사중지를 말한 워필드와 함께 개신교의 견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질병을 징계의 방편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에 더 영적이 되고 거룩해 지기 위해서는 꼭 질병이나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개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칼빈을 가리켜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 후예들도 그처럼 종합병원이 되어야 거룩해지는 방편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있다. 병은 죄와 사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사단이 창조의 정상적인 질서를 와해시키고 일그러뜨린 것이다. 죄와 사단에 의해 파괴된 것을 하나님은 바로 잡아주신다. 죄가 병을 주고 사단이 병을 가져온다면, 하나님은 치유해주신다. 3) 청교도 전통 청교도도 대체로 칼빈을 따라 치유기적이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스펄젼도 이런 입장을 취했다. 그의 목회와 사역을 통해 많은 교인들이 병의 치유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도, 그의 설교에도 그런 언급이 없고 치유사역에 대한 어떤 긍정적 견해를 피력한 말도 없다. 한편 스펄젼은 예수님의 치유기적을 완전히 영적으로만 해석했다. “열두 해 혈류병 앓은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진 것처럼, 우리도 그 여인처럼 예수께 나아가 옷깃을 잡으면 영혼이 즉시 구원 받는다”는 식으로 말했다. 조나단 에드워드도, 로이드 존스도 이 은사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 Holiness - Keswick - Pentecostal Movement 치유은사에 관심을 부각시킨 사람들은 오순절 계통의 사람들이다. 여기에 그들의 기여도가 있다. A. J. Gordon, A. B. Simpson, Andrew Murray - Keswick을 주도했던 A. J. Gordon, A. B. Simpson, Andrew Murray은 치유기적과 은사에 대한 책을 남겼고, 실제 그들의 사역에서 이런 치유를 강조하는 사역을 실천했다. 특히 20세기 오순절 운동에서 성령의 은사와 치유를 강조함으로 치유사역을 부흥시켰다. 이는 오순절의 공헌이다. 우리는 개혁주의자들에게서도 배우고,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드, 스펄젼에게서도 배우는데, 다 나름대로 아직도 보완되어야 할 점들을 안고 있다. 이들은 다 치유의 사역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강조하지 못했다. 우리는 개혁주의자들의 핵심 신앙과 신학을 배우지만, 더 나아가서 오순절 운동에서도 지금까지 우리가 바로 이해하고 강조하지 못한 부분을 바로 강조한 것을 배우고 도전받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오순절 운동의 여파로 치유사역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faith-healer Movement”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도 일어났으나, 유명한 Kathryn Kuhlman같은 여사도 등장했다. 각 교파에서 치유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성공회에서는 Agnes Sanford가 활발하게 사역하고, 가톨릭에서는 Francis MacNutt이 이 사역을 다이내믹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개혁교회가 도전을 받아야 한다. 빈야드 교회의 John Wimber, 풀러의 Peter Wagner, Charles Kraft, 정신과 의사 John White 등도 이 사역을 한다. |